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제13호 태풍 링링이 지나간 자리

5도2촌이 이렇게 어려워요. 러스틱라이프 환상 깨기 제3탄.

“제13호 태풍 링링이 북상함에 따라 모레까지 남해안과 서해안을 중심으로 순간풍속 45m/s의 강한 바람이 불겠고 시간당 50mm의 많은 비가 내리겠으니 침수와 산사태, 축대붕괴 등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매우 강한 태풍으로 성장한 링링은 2010년 태풍 곤파스보다 강하게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2개의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고 그렇게 2019년의 여름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9월에 들어서자마자 온통 제13호 태풍 링링의 북상 소식으로 시끄럽습니다.

보통은 일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빠져나가던 놈이 하필 이번에는 한반도 전체를 오른쪽에 두고 서해안을 따라 그대로 치고 올라오는데 느낌이 영 불안 불안합니다.     


“어라? 이놈 봐라? 방향을 보니 우리 서천 집을 그냥 때리게 생겼는데? 가만있어 보자... 지난주에 올 때 창문 제대로 닫았고, 밖에 물건들 다 창고에 넣어 놨고, 빠뜨린 것은 없겠지? 이거 잘 못 맞으면 피해가 크겠는 걸...”     


행여 지난주 돌아올 때 창문이라도 열어놓은 것은 없나... 혹시 태풍에 날아갈 만한 것은 없는지 계속 머릿속에 곱씹으며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서천 집은 산 밑을 깎아 부지를 다져 집을 올렸기 때문에 이렇게 산사태 주의보가 떨어지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부지를 다지는 토목공사를 하던 당시, 포클레인 사장님께서 땅이 찰흙이라 워낙에 단단해서 포클레인 삽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소연할 정도여서, 딱히 물을 머금고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라 내심 위안을 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내 걱정을 접으려 할 때 드디어 생각이 났습니다.

아차! 이런 젠장!

갑자기 뒤통수를 여러 대 갈겨 맞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보!!! 큰일 났어! 창고 창문을 다 열어놓고 왔어!! 


서천 집의 창고는 집의 그늘에 가려 낮에도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상시로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곰팡이가 쉽게 피기 때문에, 웬만하면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다녔습니다. (습도가 높은 바닷가는 정말 항상 환기가 중요하거든요.)

근데 이때는 끈적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건조한 바람이 불 때라 내부가 뽀송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필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던 것이죠.    

 

“헐! 우짜지? 창문을 열어놨으니 거기로 강풍이 몰아치면 창고 지붕 날아가는 거 아냐? 흐미...”


때마침 뉴스에서는 순간 최대 속도가 40m/s가 넘을 거라 예보하며 컨테이너가 하늘로 공중 부양하는 영상을 예시로 보여줍니다. 창문을 열어놓은 창고의 운명도 아마 그리될 것이라는 경고로 말이지요.     

뭐 어쩌겠습니까? 가야지요. 그 먼 길을... 창문 닫으러...     

사실 이웃집 할머니나 마을 이장님, 또는 슈퍼집 사장님께 부탁을 드릴까 했었는데, 열쇠가 없어 높은 펜스를 타고 넘어 들어가야 하기에 위험하기도 하고 큰 민폐라 생각되어 바로 접었습니다.     




이미 전국적으로 바람이 거세졌지만 태풍이 관통하는 시간은 내일 아침이라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서둘러 짐을 싸고 바람이 더 불기 전에 서천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이제야 말하지만 편도 173km, 쉬지 않고 열심히 달리면 두 시간 거리입니다.

평소에도 먼 길인데 마음이 급하니 더 멀게만 느껴지더군요.

이 바람을 뚫고 위험천만한 길을 갔다 와야 한다는 부담감에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기 싫던지...     

마침 뉴스에서는 서해대교에 25m/s의 바람이 불면 다리 전체를 통제할 예정이라고 친절하게 겁을 줍니다. 


‘통제되기 전에 어서 다리를 건너야 해!’


하며 열심히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참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고생 고생 완전 개고생의 날이었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창고의 창문을 닫고 돌아올 때까지 서해대교는 통제되지 않았고, 나름 한 번 더 꼼꼼하게 확인하고 돌아와서 마음은 그나마 편안했습니다.

(2층 화장실 창문도 열어 놓았더군요... 가길 정말 잘했습니다. 안 갔으면... 휴...)     




태풍이 지나가고 그다음 주말, 서천 집에는 역시 피해가 꽤 있었습니다. 

이미 cctv를 통해 봤지만 생각보다 정원이 더 엉망이 되어 있었죠. 몇 년 전 심어놓은 매실나무는 모두 쓰러져 있었고, 뽕나무의 큰 가지가 부러져 볼품없이 덜렁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커다란 밤나무 두 그루 모두 잎이 떨어져 있어 마치 겨울철 앙상한 나무처럼 보였습니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는 자기들끼리 서로 부딪혀 잎이 노랗게 타들어갔고, 마당 전체가 떨어진 나뭇가지와 낙엽, 부딪혀 갈변한 대나무까지 전반적으로 노랗게 변해있었습니다.     

참고로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진 매실나무들은 바로 세워 흙을 덮어줘야 하지만, 세컨하우스다 보니 1주일 늦게 조치를 취했더니 결국 모두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나름 정들은 나무들이었는데 많이 안타깝더군요. 한 그루에 5만 원씩 6그루가 그렇게 비명횡사했습니다.     


집도 강풍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붕의 외장재중, 가장 무겁고 견고한 기와를 사용하였음에도 곳곳의 기와가 떨어지거나 이탈돼 있더군요. 기와 하나하나가 피스로 고정되어 있는데 강풍에는 소용없었나 봅니다.

다행히 집을 짓고 남은 기와는 모두 보관하고 있던 터라, 사다리를 타고 올라 기와를 새 걸로 교체를 하였는데, 문제는 초강력 태풍을 한번 맞고 나니 이듬해 또 다른 태풍에도 기와가 떨어지더군요. 바람이 그렇게 세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아마 태풍 링링에 기와의 결속이 전체적으로 다소 느슨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죠.     


창고 창문을 열어놨다면 아마 피해가 엄청났을 것입니다. 강풍에 지붕이 뜯겨 날아가는 장면은 TV에서 왜 그리 많이 보여주던지... 딱 그 꼴 날 뻔했었죠. 정말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비도 많이 내렸지만 역시 땅이 단단하고 물을 머금는 토질이 아니라 전혀 흘러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초강력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전국적으로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해안가 강풍 피해도 많았지만 역시 산사태도 곳곳에서 일어났죠.     


여기서 한 가지 꼭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산을 절개해 전원주택 단지를 만들어 분양하고 있는데,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조성된 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산을 깎아 급하게 조성된 부지는 반드시 토질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 대부분의 산이 마사토 지형인데, 이 마사토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아주 미세하게 부서진 돌가루인데, 공극이 커서 물을 많이 머금으며, 그렇게 물을 머금게 되면 쉽게 흘러내려 산사태를 유발하거나 축대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특히 산을 절개하고 덮지 않은 채로 그대로 강한 폭우에 노출되면 흙이 빗물을 머금다가 죽처럼 흘러내려 다음날 지형이 많이 변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태풍 피해 보도를 통해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양업자들은 축대만 튼튼하게 쌓고 지반에 파일(쇠파이프)을 깊숙이 박으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마사토 지형의 축대붕괴 사고는 정말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겠죠? 

심지어 어떤 유튜버는 집이 기울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죠. 마사토 토질인데 업자가 파일을 박지 않아 집이 기울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사토 토질의 산을 깎아, 조성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부지에 축대를 쌓고 세컨하우스를 짓는다면 특히나 태풍 소식에 잠 못 이루실 것입니다. 

태풍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긴 장마 기간에도 편하게 잠들지는 못하겠군요.

그러니 땅을 보실 때 산을 깎고 축대를 쌓아 만든 부지이고, 땅이 물을 머금고 있는 마사토라면 여름철 숙면을 위해 조심 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에이~ 설마~ 요즘 세상에 무슨~ 하신다면, 검색창에 ‘마사토 축대 붕괴’를 입력해 보시길 바랍니다. 검색된 이미지를 먼저 보세요.)


2019년 제13호 태풍 링링 덕분에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따로 있습니다.     

첫째, 대문 열쇠는 번호키로 바꾸자. 그래야 이웃에게 부탁을 하지.

둘째, 이웃과 잘 지내자. 그래야 위급할 때 부탁을 하지.     

결론은 5도2촌 편하게 하려면 이웃들과 좋은 유대를 맺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에서 지네가 내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