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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실패한 나의 첫 번째 세컨하우스

러스틱라이프, 5도2촌, 그 원대한 꿈의 시작은 실패였습니다.

2011년 이른 봄, 강원도 양양 하조대 해수욕장 근처의 한 부동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보 이제 와서 마음을 바꾸면 어떻게 해? 그냥 팔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냐! 난 도저히 못 팔겠어!”

“팔아~”

“아냐! 너무 아까워!”

“여기까지 와서 이러면 어떡해? 그냥 팔아!”

“그래도 이건 아냐! 에이씨! 나 몰라! 안 팔아! 그냥 가! 휙~”     


팔자는 아내와 갑자기 마음이 변해 팔기 싫다는 남편이 제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습니다. 뭐 부부싸움이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넘길 수도 있지만 저에겐 너무 어이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평일 회사 휴가를 내고 장장 세 시간 반을 달려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러 왔는데, 이 중년의 부부는 계약 직전 갑자기 싸우더니 이내 남편이 냅다 뛰쳐나가 버리더군요. 

얼추 얘기를 들어보니 이 부부도 세컨하우스 용도로 바닷가에 아파트를 샀는데 통 쓰질 않아 팔려고 하니까 남편이 막판에 변심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아... 어제 설레서 밤 꼴딱 새고 먼 길을 왔는데... 이게 도대체 뭔 일이냐...


부동산 사장님도 난처했던지 저한테 짧게 사과하고 냉큼 그 남편을 설득하러 따라 나가더군요.

동해의 찬바람이 쌩쌩 불던 그날, 결국 저는 하조대 해수욕장의 어느 식당에서 성게 미역국 한 사발에 분한 마음을 삭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계약금을 너무 적게 걸었던 게 못내 아쉬워하며 말이죠.     


앞에는 동해의 해수욕장을 두고 7번 국도를 건너 언덕 위로 지어진 오래된 20평짜리 아파트가 그렇게 풍선 터지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방에 사라지더군요.

뭐 인연이 아니었던 거죠.

(글을 쓰는 지금 보니, 당시 5,400만 원 하던 매물이 지금은 시세가 최대 1억 3천만 원까지 하네요! 남편분 아직 안 팔았으면 나이쓰~!)     




당시 오랫동안 바닷가 세컨하우스를 열망했던 저에게 몇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회전율이 좋고 투자가치가 높은 소형(저렴한) 아파트일 것.

둘째, 바다를 전망으로 두고 걸어서 쉽게 접근이 가능할 것.

셋째, 속초, 양양, 고성에 있을 것.     


군 생활을 이곳 속초, 양양 해안에서 복무했었기에 막말로 이쪽 지역은 두 발로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익숙했습니다. 저 하조대 해수욕장도 훈련받으러 새벽에 걸어서 오갔던 곳이었죠.

그래서 거리가 멀어도 지리에 익숙한 동해 바다가 좋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아파트는 바다 조망이긴 한데, 사실 언덕을 내려가 저 멀리 떨어진 횡단보도를 통해 7번 국도를 건너야 했기에, 사실상 도보로 바다에 접근하기는 어려운 위치였습니다. 

그런데도 가격이 꽤 저렴해 눈이 뒤집혀 제가 세운 원칙도 무시한 채 덥석 물었던 거죠.

아마 그때 계약이 성사되었어도 금세 후회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후 계속 여기저기 부동산을 찔러보고 연락을 기다리던 중, 그해 여름이 다 되어서야 기다렸던 소식이 왔습니다.     

속초에 생활권을 둔 고성 소재의 작은 해변가 아파트인데, 어찌나 바다에 가깝고 전망이 좋던지. 층수도 놓고, 남동향에 주변이 관광지라 바로 앞에 마트와 식당도 있고, 또 작고 예쁜 항구를 끼고 있었습니다.

이 집도 역시 서울 사람이 세컨하우스로 쓰고 있었고 오랫동안 비어 있어 당장 내일이라도 사용이 가능하더군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매물을 보았던 첫날 바로 10% 계약금을 빵 쏘고, 최대한 빨리 잔금을 치뤘습니다.      

가격은 당시 8천만 원대라 예상보다 비쌌지만 아내의 퇴직금을 더하고 대출을 받으면 가능하였기에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 서둘러 계약을 성사시켰죠.     




그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참 많이도 다녔습니다.

차가 안 막히면 편도 3시간 30분 거리를 매주 가족들과 또는 지인들과 신나게 다녔습니다.

(차는 항상 막혔으니 양심상 1시간 추가하겠습니다. 4시간 30분...)

주변 관광도 다니고 옆에 항구에서 낚시도 하고, 자연산 해산물을 안주 삼아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다를 보며 술상을 차리면 뭐 말 다 한 것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꿈에 그리던 세컨하우스이고, 그것도 바다가 바로 눈앞에 쫙 펼쳐져 있으니 말이죠.     


그리고 2년 반 후에 이 아파트는 샀던 금액 그대로 팔았습니다.

각종 세금에 새로 산 에어컨, 세탁기, 각종 집기류를 옵션으로 포함시켜 팔았으니 오히려 손해를 보았군요. 뭐 이것도 다 경험이었으니 그 정도 손해는 나름 수업료로 생각해야죠.




완전 대 실패였고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고 철수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 동해의 그 바닷가 아파트는 딱 1년짜리 세컨하우스였습니다.


1년이 지나고 나니 정말 할 게 없더군요.     


주변 관광지도 이미 여러 번 다녀와서 더 이상 감흥이 없습니다. 처음 가는 지인들이야 좋아하지만 언젠가부터 저는 늘 가이드 역할만 합니다. 정말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하는 일이라곤 운전밖에 없더군요.       

아들을 데리고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그면 물이 어찌나 차던지. 한여름 해수욕장을 찾아도 바다는 너무 차갑고, 모래는 또 너무 뜨겁습니다. 늘 아차~ 아뜨~를 몇 번 반복하다 이내 질려 집에 들어오기 일쑤입니다.     


신선한 해산물은 또 왜 그리 비싸던지.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자연산은 너무 비싸 어쩌다 한 번이고, 똑같은 양식 광어고 양식 우럭인데 어떻게 도시보다 더 비쌀까요?

도시에서 먹으면 더 싸고 푸짐한데 여기까지 와서 매번 이래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또 바로 옆 항구의 횟집을 단골 삼아 눈도장을 찍으려 매주 갔건만, 사장님은 늘 저를 못 알아보시네요. 

    

“사장님~ 저 요 옆에 아파트에 살아서 매주 오는데 못 알아보시겠어요?”

“몰라요~”

“아 네...”     


역시 관광지라 뜨내기손님이 주를 이루다 보니 눈도장 필살기도 통하질 않습니다.     


돈 내고 배를 타지 않는 이상 낚시도 쉽지 않습니다.  

먼 길을 달려 오후에 도착하는데 배 타기가 어디 쉽나요? 그냥 항구에서 해야지요.

처음에 항구 내만에서 바람을 피해 두어 시간에 한 마리씩 잡히는 놀래미로 즐거워했지만, 날이 추워지면 낚시는 무슨! 고기도 없거니와 살을 에는 찬바람에 바닷가는 얼씬도 못 합니다.

놀래미도 한두 마리 잡아서는 입에 풀칠도 못합니다. 항상 사 먹게 되더군요.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항구 어귀에 돗자리를 펴고 바비큐 그릴에 숯불을 올려 고기도 구워 먹었는데, 그런 날이 어디 흔한가요? 대부분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방파제 벽에 등지고 자리를 잡는데, 왜 항상 이런 명당에는 취객이 오줌을 싸 놓는지... 지린내가 진동을 합니다. 


바람이냐? 지린내냐? 당신의 선택은? 


여기까지 와서 도대체 이런 걱정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이 작은 아파트는 중간에 부도가 나서 몇 년 방치되다가 공사가 재개되어 완공되었다는데, 방음이 역대급 최악이었습니다.

그냥 옆집에 상주하시는 아저씨가 TV로 무얼 보고 전화로 무슨 얘길 하는지 다 들립니다. 벽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이 말이죠.

층간 소음은 어찌나 심하던지 윗집 남자의 소변 떨구는 소리가 참 맑고 선명하게 들리더군요. 

층간 소음으로 아랫집 피해를 줄까봐 한창 뛰어다닐 우리 아들이 행여 쿵쾅쿵쾅 뛰면 말리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아니 왜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아들한테 조용히 하라고 교육해야 하지?”     


아내랑 심각하게 이 집의 부실한 방음에 대해 올 때마다 불평했습니다. 

절대 잔소리는 안 하기로 했는데 이 바닷가 세컨하우스에만 오면 유독 아들에게 잔소리가 심해지는 것을 보니 무언가 잘못되긴 확실히 잘못되었습니다.  

   

‘이럴라고 그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온 게 아닌데...’

‘거참... 난감하네~’     




딱 1년이 지나니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지인들을 데려와 도착해서 짐을 풀고, 회를 사다가 잘 보이지도 않는 밤바다를 보며 술 먹고 뻗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해장은 늘 가던 미시령 옛길 순두부 집이고 말이죠.     


가족들은 멀고 비좁아 답답한 숙소에서 옆집 눈치 보며 불편하게 주말을 보내느니, 넓고 편한 도시 아파트에서 편하게 있기를 더 좋아합니다.     


자주 안 가 비워 놓느니 차라리 지인들에게 빌려주자 해서 그냥 쓰라고 빌려줬습니다.

그렇게 몇 번 빌려주니, 이불에는 국물 자국이 생기고, 베개에는 낯선 남자의 꿉꿉한 뒤통수 냄새가 나더군요. 

종종 집기도 망가지고 생활용품은 떨어져 있고... 역시 집은 빌려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 1년간 다니고 그다음 해 뜸하다가 3년째 들어서니 정리하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아마 이 집의 전 주인도, 그리고 앞서 매수에 실패한 하조대 해수욕장의 그 아파트 주인도 저와 같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처음에는 좋아라 하고 다니다가, 몇 번 와보니 할 게 없고 더 이상 감흥이 없으니 판매를 결심한 거죠.      


저는 정말 바닷가 근처만 가면 할 게 무궁무진할 줄 알았습니다. 


심심할 틈이 없이 매 순간이 흥미로울 줄 알았죠.

하지만 막상 가보니 딱 1년 만에 더 이상 흥미로울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새로 방문한 지인들만 신이 났죠. 

늦게 도착해서 일찍 출발해야 하니 할 만한 것이 정말 없더군요.     


투자용이었다면 그렇게 팔지 않았겠지만 5도2촌의 라이프를 지향한 저에게 흥미를 잃은 그 집은 더 이상 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원가에라도 팔면 다행이다 하고 팔았습니다.

손 넘김을 한 그다음 매수자도 세컨하우스 용도로 구매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주 최고라고 잘 얘기를 했죠.

이후 아내랑 술 먹다가 가끔 그 아파트의 시세를 확인해 보는데 이후 쭉쭉 오르더군요. 뭐 괜찮아요. 딱히 그런 운을 바라며 살지는 않는 스타일이랍니다.

(지금 보니 8천만 원대 아파트가 2억 1천만 원까지 뛰었네요. 하하하~ feat. 리쌍,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때 크게 깨달은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단 나만의 넓은 마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다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공간, 우리 가족들이 자유롭게 눈치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야 하는 그런 곳 말이죠.

마당에서 캠핑도 하고, 텃밭도 일구고, 바비큐도 만들고, 꼭 주변 관광을 하지 않더라도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면 먼 길을 달려와도 충분한 보상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냥 내가 그곳에서 빨가벗고 미친놈처럼 뛰어다녀도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곳 말이죠.    

 

“그래! 아파트가 아니라 전원주택으로 가야 하고, 무조건 마당은 넓은 곳을 찾자!”
“여름에 빨가벗고 뛰어다닐 거야!”     


둘째는 눈으로 보는 바다가 아닌, 몸으로 즐길 수 있는 바닷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해의 그 바다는 수심도 깊고, 무엇보다도 물이 차가워서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파도는 또 어찌나 세던지. 바다는 늘 눈앞에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또 낚시를 해도 1년 내내 잡히는 고기는 똑같고, 배를 예약해 타지 않는 이상 안주거리도 마련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바다는 내가 생각했던 바다가 아냐.”

“서해로 가자!”     




서해는 할 게 많은 바다입니다.

하루에 두 번씩 물이 빠지면 갯벌에 나가 다양한 해산물을 잡을 수가 있고,

물이 차면 다양한 어종의 물고기를 낚시로 잡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계절마다 잡히는 어종이 달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낚시를 해도 철마다 다른 물고기를 만날 수 있죠.

게다가 일단 잡으러 나가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먹을 만치 잡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안주삼아 막걸리 한 잔 때리면 세상 그리 맛난 음식이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눈에 보이는 바다가 아니라 몸으로 즐기는 바다는 바로 서해인 거죠.     

보통 사람들은 얘기합니다. 


“서해바다는 똥색이라 별로야. 바다는 역시 깊고 푸른 동해지!”     


하지만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물살이 빠른 보름달 전후로 뻘이 뒤집혀 물이 탁해질 뿐, 물살이 약한 물때에는 뻘이 뒤집히지 않아 남해의 그 어느 바다 못지않게 에메랄드 빛을 발합니다.

제가 있는 동네의 바다가 그렇거든요.

옥색의 투명한 물을 보면 지인들도 많이 놀라죠.     


“서해바다가 이렇게 푸른 것은 처음 봐~!”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물때와 날씨에 따라 달라요~ ^^     


“그럴 거면 차라리 남해로 가지?”


하고 지금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죠?

물론 남해가 가장 이상적이긴 합니다.

근데 너무 멀잖아요? 주말주택이 아니라 1년에 5번도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운전하다 지쳐 죽어요.     

비록 저의 첫 번째 세컨하우스가 대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렇게 깨달은 두 가지를 바탕으로 지금의 바닷가 전원주택을 지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공부였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며 그 아파트의 가격이 엄청나게 폭등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뭔가 진한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아~ 괜히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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