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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아궁이를 부숴버렸습니다.

러스틱라이프, 5도2촌, 부수고 다시 만들고, 그것이 전원생활이더군요.

어릴 적 외갓집에 들어서면 대문 오른쪽에는 소 외양간이 있었고, 왼쪽에는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사랑방 아궁이에 걸려있는 가마솥에는 늘 소 여물죽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는데, 그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쬐며 멍 때리던 시간이 저는 그렇게 좋았습니다. 콩깍지와 볏짚을 끓여 만든 여물죽의 구수한 냄새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제가 지금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전원주택을 짓고 직접 만든 것이 요리용 화덕이었습니다.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면서 만들고 부수고를 반복했죠.

그렇게 네 개의 화덕을 부수고 마침내 다섯 번째 만든 것이 가마솥을 걸 수 있는 아궁이식 화덕이었는데, 이 가마솥에서 참 많은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가마솥을 걸면 찌고 삶는 용도로, 가마솥을 빼면 직화 구이용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였습니다.

돼지고기도 삶고, 닭고기, 오리고기, 각종 해산물에, 겨울이면 물메기, 석화 등, 끓이고, 찌고, 삶고, 이 화덕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연신 들이키며 먹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죠.     

이렇게 만든 음식이 맛있는 것은 당연하고, 장작도 패고, 불을 지피려 연신 부채질을 하며 후후 불기도 하는 등, 추억을 끄집어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처음 하는 모든 것이 신이 났던 시기였죠.     

그렇게 몇 년이 흘렀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장작을 패고,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불을 지피고, 무거운 가마솥을 들며 요리를 하는 것이 힘들고 지치더군요.

솔직히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닭백숙 먹자고 하루 종일 장작을 패고 연기를 뒤집어쓰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


또 이미 많이 먹어본 맛이기에, 맛은 있었지만 이전과 같은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은 좋아라 하죠. 서천집에 오자마자 너도나도 서로 먼저 장작을 패보겠다고 난리입니다.

굵은 장작을 세워놓고 헛스윙을 날릴 때마다 자기들끼리 재밌다고 아주 낄낄대고 뒤집어 집니다. 그렇게 날린 도끼자루도 여러 개지요.

그때마다 대인배인 저는 잘했다 말하고 속으로 욕을 합니다.


‘아오 씨! 내 도끼자루 물어내!'     


날이 더운 여름에는 그냥 방치 상태입니다.

처음에야 한여름에도 장작에 불을 지펴 요리를 했는데,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요? 요리하다 탈수증상으로 죽을 뻔했습니다.

복날에 백숙 먹자고 불 때다가 제가 오히려 그 백숙이 될 뻔했다니까요.

아마 전원생활 이제 막 시작하시는 분들은 저와 똑같은 경험 다들 한 번씩은 해보셨을 것입니다.

여름에 절대 불 때지 마세요.

더워 죽어요...


아무튼 이듬해부터는 절대 여름에 불을 때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겨울 한 철 두어 번 쓰는 아궁이 화덕이 되어 버렸고, 나머지 계절엔 잡초가 무성하게 덮고 있으니, 때론 흉물스럽게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좀 더 유용하고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화덕을 만들기로...   

유튜브를 뒤지고 자재를 사 모으고 지웠다 썼다 설계를 반복하다 봄이 끝나갈 무렵 만들기 시작하여 여름이 한창일 때 드디어 새로운 화덕을 완성하였습니다.

두 달간 매주 주말이면 점심도 굶고 이 화덕을 만들었죠... 그게 2018년이니 벌써 4년이 지났군요... 미쳤지 내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서양식 화덕이죠.


그런데 이 화덕으로 요리하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아궁이 화덕은 더욱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딱히 사용할 일이 없더군요.   

그래서 부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천막을 둘러 포장마차를 만들었지요.     

아쉽냐고요? 아뇨.

가마솥은 어떻게 하냐고요? 계속 사용하면 됩니다.

작은 부탄가스를 넣는 휴대용 가스버너 말고, LPG통에 직접 연결해서 쓰는 대형 가스버너를 구입했는데, 이 버너의 화력이 장난 아닙니다.

장작불만큼 열이 올라가고, 무엇보다도 화력 조절이 쉬우니 가마솥 요리에 오히려 좋네요.     

다만 이 LPG가스통을 충전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보통 단독주택 주방용으로 사용하는 대형 LPG 가스통은 업체에 주문하면 충전한 가스통을 가져와 맞교환하는 식으로 교체하는데, 워낙에 대형이라 이런 가스통은 이동이 어렵죠.

그래서 저는 캠핑용 3kg짜리 가스통을 구매했는데 이 가스통은 반드시 전용 가스 충전소에 가서 직접 충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소형 LPG 가스통을 충전해주는 가스충전소가 찾기 어렵더군요. 찾아도 바로 해주지 않고 다음 날 찾으러 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전하기가 매우 귀찮다는 얘기지요.

뭐 그래도 한번 충전하면 한 2년은 무난하게 사용하니 그 정도 번거로움은 견뎌야겠지요?


전원주택을 짓고 만 8년을 보내고 나니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또 무얼 부수고 새로 만들까....?'


이미 머릿속으로는 집 뒤의 창고앞 공간을 여러번 부수고 뒤집어 엎고 있습니다.


전원생활, 뭐 별거 있나요? 부수고 만들고, 또 부수고 새로 만들고...

그게 재미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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