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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Dec 02. 2022

7. 밥알님들께

인생에서 걸음마는 두 번

뭐를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어!

예순 넘어서 대학에 가도 되고

칠순잔치 기점으로 해피버쓰데이를 어떻게 쓰는지 영어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다.


여든일곱은? 걷지도 못하는 나이다. 그럼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거야? 안된다. 걸을 능력이 없다.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서, 잠시 일어나 몇 스푼 뜨시다가 다시 누워서, 성경말씀 틀어놓고 잠 자신다. 내내 잔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그렇게 여든일곱의 한 해도 1달 남았다.


여든 살 즈음에는 내가 핸드폰 하는 법을 가르쳐드렸다. 문자 치는 법, 영상통화 거는 법.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으면 철자 틀린 문자가 왔고,

밤늦게 독서실에 있으면 뜬금없는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몇 년. 팔십 대의 퇴행 속도는 어린애가 성큼성큼 배우는 속도만큼 빠르다. 다 잊자 결심한 사람처럼 잊어댄다. 현재 남은 할 수 있는 일. 누워서 가만히 있기.


우리집 앞에는 생뚱맞은 카페가 하나 있다. 모차르트 미용실, 하이퍼마켙, 청풍 이발관, 한진 파이프, 태영 전기 뭐 이런 작은 동네 골목 주민을 위한 상점들 사이에서, 이른바 mz인스타감성카페의 등장이었다. 시골마을에 등장한 서울 처녀처럼 다. 내부는 내추럴 감성 우드 인테리어로, 생긋한 식물도 여럿 두고. 가죽 재질 오디오에서는 음표가 나와 떠다닐 것처럼 좋은 음질로 듣기 편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문제는 창문 밖이다.  큰 통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우리집 1층의 할머니들의 철문과 금가고 누리끼리한 더러운 외벽. 키만큼 쌓인 종이박스들. 폐지 줍는 할머니들은 가끔 나와서 돗자리 펴고 세 명이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시고 하는데, 영 카페와 어울리는 풍경이 아니다. 어떤 날은 카페에서 큰 창문을  분수처럼 퍼지는 모양의 큰 식물로 막았었다. 어유 뭐 저렇게까지,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는지 지금은 그냥 치웠다. 인스타에서 이런 말도 보았다. 이 카페 분위기 좋다. 근데 뷰는.... 색다르네-! 안 좋단 거다.

반면 할머니들은 재밌으시다. 이런 골목길에 한껏 꾸미고 분칠 한 젊은 여자애들이 와서 사진 찍고 가니 흥미로우신 게다.


카페와 할머니들의 관계성. 러나 카페 측은 모를 거다. 그 할머니들은 우리 할머니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란 거. 당신들도 귀한 분들 보시는 거란 거. 폐지 줍는 할머니 중 한 분은 96살이시니까. 그런데도 아침 7시면 이미 동네 여기저기 날래 날래 다니시면서 박스를 키보다 높게 쌓으신다.

"아랫집 할미들은 그렇게 잘 걷는데.." 할머니 그 할머니들이 이상한 거예요. 비교하지 말아요. 우리 삶이란. 끊임없이 남과 사회적 비교를 하다가, 모든 걸 초탈해도 될 나이가 되어서는, 잘 걷는 할머니와 당신을 비교해야 하는 거라니. 다.


어머님 자꾸 안 드시면 더 못 걸으세요.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드셔야죠.

할머니 이게 에너지원이에요. 드셔야 한다니까요.

입안에 밥알 하나라도 더 넣자. 밥알들아. 할머니 한 발 내딛는 데에 보탬이 되어라. 할머니도 걷는 법 좀 배우자. 밥알들아 부탁이다. 할머니 퇴행길에 작고 잩은 걸림돌이 되어줄 수 있겠니? 밥알들이 어제보단 더 잘 소화되길 바랄 뿐인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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