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혁 Sep 15. 2022

6 갈기갈기 찢어서 드리는 치킨

할머니는 이제 틀니도 못끼신다.

어차피 턱에 힘도 없는 것이다.


고기라면 부드러운 살코기 이어야지.

그걸 가장 잘 아는 건 엄마일테다.

엄마는 내가 대충 아는 것과 달리 더 자세히 알 고 있다

어느정도 질감까지 할머니가 씹으실 수 있고,

어느정도 두께까지 할머니가 소화할 수 있는지.

갈비는 못뜯지, 옥수수는 못뜯지, 이런 상식 차원에서 판단하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세밀한 분별력을 체득하고 계신것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닭다리는 드실 수 있을 거라 여기셨나보다.

내가 보아도 엄마의 추정이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컨디션이 좋으셨다.

오늘 4시간을 내내 앉아 계셨다. 평소에는 1시간 앉으면 허리가 아파 누우셔야하는데 말이다.

평소보다 2배는 말을 많이 하셨다. 작은 아빠가 들러 계속 말을 걸어주셔서 턱이 풀리셨을 게다.

오늘 소화에 문제가 없었다. 하물며 하루 4번 넘게 기저귀 갈아주시는 엄마다. 오늘이 할머니의 몇없는 '먹성도는 날' 이란걸 모르셨겠는가.

그렇다. 엄마는 할머니가 닭다리를 그냥 드실 수 있겠지! 특별한 의식 없이도 느낄 수 있으셨을 테다.

그래서 내놓은 닭다리.

아. 할머니는 안드셨다.


아버지가 말한다.

'이걸 이런식으로 두면 되느냐. 잘게 잘라서 드려야지. 그런식으로 툭 두면 드시겠느냐. 소화에도 안좋을 것이다. 하여튼.'

그래, 하여튼. 아빠의 잔소리.


방에 있던 엄마는 서둘러 튀어나온다. 가위를 들고와, 잘게 고르게 살코기를 잘라 그릇을 채운다.

옆에 있던 아버지는 먹던걸 마저 먹는다.

나 참. 할머니가 누구 엄마인지.


오래전부터 전자렌지 문이 잘 안열린다.

지난 주부터 냉장고에 불이 안들어온다.

장농문도. 행거도.

우리집은 망가진 것이 참 많다.

작가의 이전글 5 우르르 쏟아져나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