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재즈의 즉흥성이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집단성’을 띤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즈를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 중의 하나인 즉흥연주가 실은 재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특성은 아닙니다. 바로크 음악에서 즉흥연주는 연주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였다고 합니다. 특히 바흐가 남긴 <올바른 건반악기 연주를 위한 시론서>라는 책에는 즉흥연주기법을 설명하는 부분이 따로 있었을 정도입니다. 바로크 시대 이후로 즉흥연주의 비중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카덴차(cadenza)’라고 하는 양식으로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고, 재즈를 비롯한 현대음악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즉흥연주들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재즈의 즉흥연주는 바로크 시대의 즉흥연주와는 달리 일정한 규범 안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공동체의 구조와 비슷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있기 때문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지켜야 할 규범이 존재하며, 자신의 이익을 취하면서도 공동의 선(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권리와 의무, 자유와 관용 사이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재즈의 즉흥연주는 개인적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지점입니다. 연주자의 의식과 무의식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다양한 음악적 정보가 변형되고 재조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과정이 됩니다.
연주에 참여하고 있는 연주자들은 누구라도 자신이 주도하여 즉흥연주를 펼칠 수가 있는데, 이를 연주자의 ‘솔로’ 연주라고도 부릅니다.
그렇다면 한 연주자가 솔로를 하는 동안 다른 연주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여기서 바로 재즈 즉흥연주의 집단성이 발현됩니다.
솔로 주자 이외의 연주자들은 솔로 주자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며 즉흥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는 보통 ‘반주’라고 부르는 연주자의 역할과는 다릅니다. 반주가 솔로 연주자의 의도에 맞게 고정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재즈 연주자들은 솔로 주자가 연주하는 인상적인 선율이나 리듬 패턴을 모방하거나 변형하여 연주할 수도 있고, 선율에 맞춰 화성에 변화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상호 간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일단 시작된 음악은 완전한 엔딩을 맞이하기 전에는 멈출 수 없는 흐름이 됩니다.
연주자들은 이 흐름에 함께 몸을 맡긴 운명적 공동체가 되는 셈이지요.
재즈에는 즉흥연주 이외에도 연주자들이 함께 이루어내야만 할 하나의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윙(swing)’인데요, 이 스윙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흔히 우리가 ‘스윙재즈’ 혹은 ‘스윙댄스’라고 말할 때의 의미인 리듬의 한 종류로서의 ‘스윙’이고, 다른 하나는 연주자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적 ‘흐름’으로써의 ‘스윙’입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스윙은 후자의 의미입니다.
연주자들이 ‘스윙’하기 위해서는 우선 연주자 모두가 공유하는 일정한 박자가 필요합니다. 연주가 시작되면 그 공통의 박자를 중심으로 밀고 당기거나, 혹은 제자리를 찾기도 하며 연주자들은 계속해서 리듬적인 긴장과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하나의 일정한 흐름이 생기게 되는데요, 우리가 흔히 ‘이 음악에는 그루브(groove)가 있어“라고 이야기할 때의 그 ‘그루브’와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루브가 만들어졌음을 가장 손쉽게 알 수 있는 증거는 ‘움직임’입니다. 연주자와 음악을 감상하는 관객들까지 그 일정한 흐름에 맞춰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목을 아래위로 혹은 어깨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며, 관객들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기도 합니다.
딱히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생겨날 때, 그 밴드는 멋지게 ‘스윙’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스윙하는 연주자들은 마찬가지로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가 됩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그 흐름에서 벗어나더라도 누군가는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그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반대로 흐름을 지켜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합니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재즈에서도 모두 운명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양상이 조금씩 다릅니다. 클래식 음악의 연주 형태가 대체적으로 군주제의 모습을 띤다면 재즈의 연주 형태는 시민사회의 모습이 강합니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작곡가나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 클래식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리더십에 따라 음악의 완성도가 결정되기도 하지요.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기 전, 지휘자의 엄숙한 입장에서부터 우리는 그 상징적 지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는 구성원의 음악적 지위가 평등하지 않습니다. 작곡가가 만들어 낸 고정된 의미로서의 ‘작품’과 지휘자의 해석, 연주자의 연주가 차등적 역할을 맡게 됩니다. 연주자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작곡가의 의도나 지휘자의 해석에 최대한 순응하며 협력합니다. 연주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치기보다는 정해진 역할에 충실할 때 더욱 완성도 있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클래식 오케스트라에서도 최근에는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일단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전통적인 재즈밴드를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반면 재즈에서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구성원들의 역할이 비교적 평등합니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누구라도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가 있고, 작곡가의 의도를 얼마든지 위반하고 전복할 수 있습니다. 지휘자는 재즈 빅밴드를 제외하고는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클래식 음악에서의 지휘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프로듀서가 있다 하더라도 연주자들의 즉흥연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에서 음악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연주에 참여하고 있는 연주자는 누구든지 ‘원한다면’ 즉흥 솔로 연주의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순서를 갖지 않는다고 하여 즉흥성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솔로 연주 중에도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솔로 주자의 연주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지요.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재즈밴드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 여느 공동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균형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기도 하지만, 관용의 자세를 취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나의 주장이 중요하지만, 타인의 주장도 존재할 수 있고, 각자의 주장이 다른 방향을 향할 수 있음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지만 ‘같은’ 목표를 갖고 함께 나아갈 수도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상호 간의 신뢰를 필요로 하며, 때로는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의 균형은 어느 한 사람이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한 배를 탄 이상, 음악을 침몰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