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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Apr 25. 2019

헤겔의 음악 미학

헤겔, 김미애 번역 및 해설 (느낌이 있는 책)



헤겔은 1823년에서 1826년 사이 베를린 대학에서 미학 강의를 했는데, 이 책은 그 중 음악에 대한 부분이다. 이전에도 헤겔의 음악미학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그때는 너무나 어려운 번역체를 ‘해독’하다 나가떨어진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책은 하루 만에 술술 읽을 수 있을 만큼 친절한 번역-거의 해설서에 가까운-이 돋보인다.


음악 전공자들이 흔히 쓰는 용어나 음악적 요소를 관념론자인 헤겔이 그 만의 언어로 풀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이 책의 독서 포인트이다. 지금이야 음악미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서 인정받지만, 1800년대는 음악미학이라는 용어가 생겨난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므로 당시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더욱 신선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헤겔은 음악에서의 음은 표현이자 외관이며, 이는 발생하여 귀에 들어오자마자 곧 사라진다는 점, 그러나 그 사라짐은 다시 하나의 인상으로 내면화된다는 것에 주목한다. 즉 듣는 이가 누구라도 그의 내면적인 주관성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음악이라는 예술이 관념론자인 헤겔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 그 자체는 구체적인 어떤 것도 현시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듣는 이의 주관적인 이념이 현상될 뿐이다. 물론, 가사가 없는 음악에 한해서 말이다.


헤겔은 예술로서의 음악이 조형예술보다는 건축과 좀 더 유사한 지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건축과 음악은 둘 다 자연의 어떤 것도 형상화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물은 그 외형이 지속되며,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음악과 다른 점이라고 말한다. 건축은 창작자의 설계가 끝나면 기술자들에게 공사를 맡겨야 하며, 음악은 창작자의 작곡이 끝나면 연주자들에게 연주를 맡겨야 한다. 기술자는 창작자가 아니나 연주자는 창작의 가능성을 갖는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시간을 분절하여 음을 배치한다. 헤겔은 외부적인 시간, 즉 시계의 바늘이 앞뒤로 나누고 있는, 공간의 개념이 스민 객관적 시간의 세계와 인간의 주관적 혹은 심리적 시간이 음악에서는 함께 존재한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얼마 전 읽었던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이 떠올랐다. 그의 순수지속과 혼합지속의 개념은 헤겔의 외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튼 헤겔은 이와 관련해 박과 박자와 리듬의 개념에 대해 매우 밀도있게 다루고 있다.


헤겔은 책의 전반에서 음악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형상이나 이미지를 갖지 않기 때문에 매우 자유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가지나, 이러한 자유는 엄격한 규칙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부분은 내 논문의 주제와도 관련 있는데, 이렇게 음악에서는 이원적 세계가 늘 공존한다. 주관적 시간과 객관적 시간이, 자유과 제약이, 과거와 현재가, 개별과 보편이.


아무튼, 음악미학에 대한 입문서로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감히 추천을 드려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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