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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May 08. 2019

나의 고백록


어제는 이상하게 한 시간 먼저 눈이 떠졌다. 장안대에 가는 날, 좀 더 이른 셔틀을 타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다. 10시 반 수업인데 6시 반 출발, 역시 난 부지런하다. 거기까지는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셔틀 정차지점인 사당역 공영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도 장안대 학생들의 줄이 없었고(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했다), 빨간버스(장안대 셔틀 색상)가 원래 지점과 조금 다른 데에 서 있었다. 내 옆으로 책가방을 맨 학생들이 그 버스를 향해 달리기에 나도 덩달아 달렸다. (이건 자랑은 아니고 가끔 학생과 착각해주시는 감사한 기사님이 계셔서) 교직원증을 보여드리고 탑승했다.

처음 가는 길은 평소와 같았다. 물론 그렇겠지. 3,40분 쯤 지났을 무렵, 난 생전 처음 보는 길을 달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사님의 길 취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낯선 불안이 엄습했다. 네이버 지도를 켰다. 차는 이미 수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래, 난 아마도 다른 학교의 셔틀을 탄 것이었다! 옆에 곤히 자는 학생을 깨워 나의 당황스러움을 나누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기사님께 고속도로에서 내려달라고 해봤자 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왜 기사님은 내 교직원증을 보고도 별 말씀이 없으셨던가. 침착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학교 셔틀인가? 평택대인가? 조금 더 가니 아니란 걸 알았다. 여주대인가? 여주인터체인지에 들어섰을때 여주대임을 확신하고 수원행 교통편을 검색했다. 그러나 어느새 여주대에서도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모든 걸 체념했다. 이런게 해탈인가. 논밭을 지나 도착한 곳은 강동대학교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고추가 유명한 고장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며 드디어 기사님께 고백을 한다. 여기에 있으면 안되는 내가 여기에 있게 되었음을. 친절한 기사님은 원래 정차지점도 아닌 장호원터미널에 내려주시며 초등학생에게 길을 알려주듯(아마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수원가는 법을 설명해주셨다. 감사합니다. 6시 반에 출발한 내가 12시가 되어 드디어 장안대에 도착했다. 학교 나가기 시작한 지 11년 만의 첫 지각이었지만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아, 익숙한 벽돌건물, 평안과 안정.

이 비보를 접한 엄마는 나의 과거를 들먹였다. “고등학교 때도 학원 셔틀 잘못타서 기사님한테 버스비를 빌려서 집에 오고, 대학교 때는 버스에서 자다가 내릴 곳을 지나쳐서 ‘엄마 여기 어디야, 나 학교 어떻게 가야 돼?’라고 맨날 전화를 그렇게 해대더니.” 아빠는 단 한 마디로 나를 묘사했다. “바보”

그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변한 척 살아갈 뿐이다.

p.s. 이 불의의 사고로 수업시간이 오후로 밀린 전공실기 학생 두 분께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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