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 앞 마트에 갔다가 와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바로 아이들 키 높이에 맞는 아기자기한 카트 덕분이었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앙증맞은 사이즈의 폼나는 깃발을 비롯 아이들의 취향까지 저격하는 아기자기한 풍선이 꽂혀있는 카트였다.
그깟 어린이 카트 장난감으로도 많다. 키자니아나 혹은 그 비스무리한 각종 역할 경험과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최근 매우 많아졌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린이 고객이 주체적으로 소비를 경험하게 해 줄 실물과 똑같은 카트는 매우 신선하게만 느껴진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장을 보러 가면 주로 카트 위에 앉혔다. 엄마가 장을 보는 동안 아이는 그 카트에서 멍하니 담기는 짐을 구경하거나 엄마가 편안하게 장 볼 수 있도록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주기도 한다. 그나마 개념 있는 엄마는 아이에게 장보는 물건들에 대한 용도와 쓰임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지만 이 역시 아이에겐 건성 수동적인 일일 뿐이다.
배려가 좀 있다는 마트에서 자동차형의 탈 것 위에 장바구니가 놓여있는 어린이를 위한 카트를 가끔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쇼핑의 주도권, 주체를 따지자면 조금 선호도가 있을만한 공간에 앉았을 뿐 아이는 여전히 갇혀있다. 심지어 엄마가 장보는 내용물은 지붕위에 얹혀지고 아이는 소비와 철저하게 분리되어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일 년에 한두 번 하게 되는 시장 체험도 현실성 있는 소비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은 장바구니에 천 원씩 들고 선생님의 인솔과 통제하에 장을 보러 나선다. 현실 속의 천원은 과자는커녕 껌 한 통, 젤리 한 봉지 사기도 어려운 금액이다. 그나마도 살 수 있는 품목도 한정되어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저희들도 자랐고 힘도 있다며 카트를 끌어보겠다고 한다. 맡겨보지만 저희 몸집보다 더 큰 카트는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힘도 달리고 운전 미숙으로 앞사람과 부딪히다가 결국 엄마에게 핀잔 듣고 손잡이를 넘기게 된다. 카트와 실랑이를 하다 힘을 소진한 아이들은 엄마가 장보는 동안 장난감이나 문구류를 구경하다가 장보기 끝나는 시점에 연락해서 만나기로 합의를 보고 헤어진다.
이런 패턴으로 아이들과 장보기를 하던 나에게 어린이를 위한 작은 사이즈의 진짜 카트. 획기적이기만 하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상의하고 즐기며 합리적인 소비를 배우기에 최적화된 도구로 보인다. 누구 한 명 힘을 빼거나 지루하지 않게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함께 장을 보는 재미, 요즘 어린아이 엄마들은 톡톡하게 느낄 수 있을 듯하여 부럽기만 하다.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하여 쓰는 글은 절대 아니다. 실물을 축소해놓은 이 작고 아기자기한 카트 조차 마케팅 수단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저출산, 인구절벽에 대한 심각성을 논하기 전에 그 귀한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보기에 좋다.
예쁜 걸음으로 엄마를 따라다니며 함께 물건을 고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아이들이 자라 합리적인 소비와 돈 귀한 것, 잘 쓰는 법을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많이 자라 쓸 일은 없을 것이 안타깝다. 엄마는 늘 언저리에 머무는데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있는 것이 가끔씩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