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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K Nov 05. 2019

함께 욕해주는 친구

우린 같은 편~


아침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이상한 건가?....'로 시작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친구의 딸 A가 수학 숙제를 하다가 엉엉~울기 시작했다. 이유는 선생님이 나한테만 엄하게 채점하고 숙제도 많이 내준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학습장애를 가진 친구와 함께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선생님께서 A에게 더 엄격하게 대하는 의도는 짐작이 갔다. 친구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불공평해서 수업을 받고 싶지 않다숙제를 거부하고 있기에  선생님께 상의를 드렸다고 했다.


우리의 짐작처럼 함께 수업받는 친구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의도가 맞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A가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제가 너무 많이 바랬나 봐요. 좀 실망스럽네요."라는 선생님의 반응만 아니었다면...


그러려니 짐작하며 무심히 듣던 나는 "실망"이라는 단어에 빈정이 상했다.

" 야 그 선생님 진짜 웃긴다. 배려를 바라면 미리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지. 그랬으면 불공평하다고 느끼면서 속상할 일도 없지. 오해하게 상황을 만든 것도 본인이고 그것 때문에 애가 상처 받고 울었다는데 어따대고 실망했네 어쩌네 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 안 해도 알아줄 줄 알았는데 아직 린 A에게  많이 바랬나 봐요. 지금은 기분이 좀 괜찮아졌어요? 다음 시간에 만나면 잘 이야기해서 풀어볼게요. '라고 하면 네가 뭐라고 하겠냐. 오히려  더 미안해서 니 딸 디스하겠지.  'A가 아직 철이 없어요. 저도 잘 얘기할게요.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해요.'라고 끝날 일 아니냐." (이게 친구의 성향이자 됨됨이이다.)


"사춘기 아이들  가르친다는 선생님이면 그 시기의 특성도 좀 파악하고 공부를 해야지.. 본인이 요령 없었던 걸 왜 애를 탓해. A가 어른이냐? 왜 어른처럼 느끼고 공감하라고 해.  지 앞가림도 못하고 아름다운 세상도 다 꼴 보기 싫다고 할 나이가 사춘기 아니냐? 미리 양해 못 구했는데  그 친구 배려해주고 싶었으면  들키지나 말고 몰래 맞게 해 주던가. 그 애는 그렇게 배려한다면서 왜 A는 배려 안 한데? 오히려  왜 내 마음처럼 안 굴고 속이 좁냐라고 애를 비난을  하는 건 뭔 경우야...."


A는 중학교 1학년이다.  추상적인 사고가  덜 발달했고  미루어 짐작해서 공감하는 기능도 이제 자라나고 있다. 그나마도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 이익이 있는 부분들에나 선택적으로 고민하 수준일 것이다. 아직은 눈에 보이는 사실 더 중하고 공평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본인을 납득시키라며 목을 매고 싸우는 시기이다.  내가 아는 것이 틀렸다고 해도 지기 싫어서  우기는등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때이다. 가뜩이나 하기도 싫은 공부 (요게 핵심이지. ㅋ) 하는 것도 힘든데 누구는 틀린 것도 맞게 해 주면서 봐주고 나만 얄짤없이 틀린 것 다시 다 써오라고 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당연히 짜증이 나고 부당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난 그녀석이 참으로 이해가 간다.



"어째... 우리 애들 다니는 학원 괜찮은데 알아봐 줄까?"

"아니야. 시작한 게 있는데 지금 선생님이랑 잘 수업해야지. 내가 이런 섭섭함을 느끼는 게 잘못된 건지... 나랑 우리 애가 진짜 그렇게 속이 좁은 건지...  생각이 많아서. 같이 화내 주고 내가 틀리지 않다고 말해주고 편들어줘서 고맙다."



이럴 줄 알았다. ㅋㅋ  이제 상황 종료이다.







내가 친구에게 했던 말들은 감정적이고 논리적 혹은 이론적으로 어긋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진심으로 친구와 어릴 적부터 보아 성향을 잘 아는 이모로써  공감했다.  조심성 없는 선생님의 태도와 수습하는 방식에 화가 났고 그만큼 표현해 주었다. 친구의 마음은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고 우리의 관심사는 다른곳으로 옮겨갔다.




친구가 나에게 걱정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서이다. 고민을 들으면 내가 뭔가 해결해주어야 할 것 같지만 자신의 고민의 털어놓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해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약간의 자문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어쭙잖게 원치도 않는 해결책이나 충고를 제시하는 것은 가뜩이나 심난한 친구의 마음을 더 어지럽게 만들 수 있다.  진심으로 한 조언을 듣지 않고 결국 본인의 뜻대로 하는 모습에 내 기분이 상하는 일도 생긴다. 친구는 나에게 해결사가 되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분석하며 상대와 나의 잘잘못을 따져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화난 이유를 공감해주며 내 편을 들어달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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