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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킴이K Jun 28. 2016

중2병만큼 무서운 초2병?

결국은 내가 원인이다. 내가 마음이 건강해져야 한다.

요즘 우리 딸은 초2병을 앓고 있다. 너무 사랑스럽고 엄마밖에 모르던 그 아이가 이젠 엄마를 괴물이라 칭한다. 안다. 내가 이 아이를 많이 잡는 것을... 9년 차 엄마는 아직도 미성숙하여 화도 많고 짜증도 많은 것을... 그리고 그러한 엄마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아가는 초2 딸내미를 도무지 참아주질 못하고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날 보고 자라 꼭 나처럼 행동하는 그 아이의 모습이 미치게 싫고 화가 난다.





그렇게 딸내미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마구 해대고 화나면 화내고, 이거 하라 저거 하라 빨리하라 닦달해 댔으면서 딸내미 문제집을 채점하며 '엄마'를 연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 '괴물'에 괜스레 화가 나고 섭섭해진다. 분명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고 겨우 한 시간 남짓 친구와 놀다 와 피곤해하는 딸내미에게 잔소리 한 바가지 안겨주고 억지로 책상에 앉혀놓은 결과물로 '괴물처럼 무서운 엄마'를 연상시켰을 텐데 그게 또 못내 서운하다. 엄마가 무슨 짓을 해도 늘 사랑스럽고 최고인 엄마가 되고 싶은 이건 도대체 어떤 이기심이지?



오지랖 넓게 남들에겐 늘 친절하고 사람 좋은 나는 정작 내 가족에게는 친절하지 못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약한 내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아이들은 늘 나를 사랑하고 공경하라 우긴다. 조금만 불경하게 대하고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몇 날 며칠 섭섭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지금도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 키우는데...' 불끈불끈 억울하다. 부모로서 성인이 되려면 아직도 까마득한 어린 자식을 돌보고 책임지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공치사는 차고 넘친다.



물론 자녀를 양육하며 겪게 되는 힘든 일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너무 많은 인내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다만 내가 낳은 아이, 성인이 되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라 자신의 몫을 다 할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운다는 것은 생색 낼 일이 아니라 당연한 책임이며 의무라는 것이다. 저 아이가 나처럼 화가 많고 가족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으로 자란다면 그 짐은 결국 고스란히 내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힘없고 기력 달리고 서글퍼지는 나이에...



더 늦기 전에 나를 고쳐보려 한다. 이 아이들이 지금 힘이 없다고 내가 막 대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소중한 만큼 더 귀하게 대해주고 사랑해주고 감사하자. 내 옆에 이렇게 건강하게 웃으며 있어주는 것을...

싸우지 말자... 얘들은 나의 싸움의 상대가 아니다. 아니 상대도 안 된다. 서글프게도 너무도 연약하고 아직은 세상의 반 이상은 엄마뿐인 이 아이들은 내가 지켜주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이고 우주였던 나이는 어느새 지나버렸음에도  ㅠㅠ 아직은 이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이 아이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훗날 나 역시 그 공격을 고스란히 돌려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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