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즈는 21세기의 <빽 투더 퓨쳐>라고 부를만 하다. 순수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어른들, 그리고 모험과 사랑이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예술 영화에서 쓰레기 C급 영화까지 보지만, 결국 내가 가장 편한함을 느끼는 영화는 바로 이런 영화다. 소년과 소녀가 모험을 통해서 한 층 성장하는. 어슐러 르귄 여사는 "아이를 죽이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맥락상 다소 무서운 생각도 들지만, '모험'의 존재 의의가 바로 살아남아 더 강한, 더 넓은 시야를 갖춘 아이를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한국나이로 11살 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배우 데뷔를 했다. 이젠 더 이상 아역배우의 존재는 신기한 것이 아니지만, 이 나이를 가치관이 형성된 시기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이후 10년간 같은 시리즈의 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나로선 그 스트레스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해리포터'로 안다. 그 캐릭터와 나는 다른데, 나는 지워지고 세상엔 해리포터만 남았다.
그는 시리즈를 끝낸 이후,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몇 편의 공포영화와, 몇 편의 청춘 영화를 찍었다. 그 때마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행보를 이어갔다. 심지어 영화 내내 시체를 연기하는 작품(<스위스 아미 맨>.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폴 다노의 작품)까지 찍었다.
<건즈 아킴보>는 <스위스 아미 맨>보다는 덜하지만 어쨌든 B급 감성을 듬뿍 머금은 영화다. (<스위스 아미 맨>의 경우는 맛간 정도가 너무 심해서 오히려 아트 하우스 영화로 보일 정도다.) 사람들의 살인 게임을 중계하는 Skism이라는 인터넷 채널이 있는데, 이른바 '씹선비'인 마일스(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이딴 천박한 걸 보는 쓰레기들이 다 있다며 악플을 단다. 어떤 어그로 종자와 실컷 싸우고 있으니, 관리자가 개입을 했고 마일스는 바보같이 그 관리자에게도 욕을 해버린다. 그러자 집으로 찾아온 관리자들이 마일스의 손에 총을 못으로 박아 고정시키고 억지로 살인 게임에 참여시킨다는 내용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극장에 가기가 참 힘들다. 개인적으로 영화도 좋지만 극장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요즘은 많이 힘들다. 재개봉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극장에 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웬만큼 좋아서는 2번 안보는 성격이다. 최근 재개봉되는 영화들은 최다 애니 아니면 마블이기 때문에.) 그래서 <건즈 아킴보>의 개봉이 꽤 반가웠다. 요즘의 답답한 기분을 날려줄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극장을 갈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 생각 안해도 되는 영화다. 복선이고 지랄이고 다 필요 없고, 총으로 빵빵 사람 쏴죽이는 걸 즐기면 된다. 이런 작품에 현실을 대입해서 생각하는 건 바보짓이다. 그냥 이런 세계가 있고,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 발생되다가, 뒤로 가면서 살짝 이야기가 꼬이는 뭐 그정도다.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정의는 다 다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진다. 하지만 자신이 처해있는 어떤 상황에 대해 환기 시켜 주는 것. 나로선 언제나 영화의 이런 쓸모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제시장>은 바람직하지 못한 프로파간다였지만, 울고 싶은 사람 펑펑 울게 만들기에는 그 역할에 충실했다. <극한직업>은 한심한 이야기지만 웃고자 하는 사람을 웃기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작품들의 단점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 작품이 의도한 바를 충실히 해내고 있다면, 그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건즈 아킴보>도 마찬가지다. 아주아주 나쁜 놈들이 있고, 그 아주아주 나쁜 놈들을 총으로 도륙을 낸다. 기분 좋은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의인화해서 우리가 막 죽일 수 있다면 기분이 아주 좋겠지? 약간 그런 느낌이다. 대단한 작품도, 잘 만든 작품도, 뛰어난 작품도 아니지만, 약 100분 가량 깔깔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나는 지금 이런 시국에서는, 인간사의 비극보단 이런 유희가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웃음이 많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