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깊은 데, 마음 우물물을 길어
어릴 때 책을 좋아했다.
겨울 방학이면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귤을 까먹으며 계몽사의 '소년소녀 세계 문학 전집 (전 50권)'을 수없이 반복하여 읽었다. 귤의 실을 발라 책갈피에 끼워놓으면 은행잎보다 선명한 자국을 남기며 말라붙었다. '소년소녀 세계 문학 전집 (전 50권)'은 붉은색 하드 커버의 양장으로 되어있었다. 가보지 못한 다른 나라의 동화가 재밌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책은 내게 도피처였다.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었는데, 감성적이고 내성적인 어린아이가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동화 속 상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실성 없는 이야기가 좋았다. 우유가 흐르는 강가의 나무에서는 빵이 열리고 그 빵이 떨어져서 우유에 적셔지는 꿈꾸는 이야기들. 지금도 SF 영화를 좋아하는데 어쩌면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상상하며 불안과 우울감을 잠재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어린 친구가 애를 참 많이도 썼다.
청소년기는 불안한 정서만큼 객기와 치기가 만발이었다. 종횡무진 장르도 알 수 없는 삼류 소설이었으나, 때로는 여린 풀잎이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나이만 더 먹은 Ctrl+C Ctrl+V였을 뿐. 감정에 정직했던 탓인지 아름다운 수필이 되긴 틀린 시기였다. 평생의 이불킥이면 모를까.
그렇게 두서없는 내용과 길이의 소설을 지나 개똥철학도 안 되는 수필을 거쳐 이제는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시가 되어야 할 나이이지만 부끄럽게도 정제되지 못한 나는 평생 시가 될 수 없다.
한없이 과거로만 타임슬립하는 질척거리는 시간여행자는 삼류로서, 삼류답게 당당한 것이 차라리 덜 쪽팔리니까. 그래도 가끔은 마음 우물 속으로 돌 하나 던지고 기다릴 수는 있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뒤 광광 울려오는 익사의 소리를 듣고도 울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순간 잠시 시가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