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아름다운 구연동화
영화는 귀도와 조슈아를 통해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으면 간절히 원하고, 강력한 의지를 가지라고 얘기한다.
영화 도입, 귀도는 도시로 상경하면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도라를 만난다.
그녀의 외모에 반해 귀도는 로맨틱한 이벤트를 하며 그녀와의 일상을 즐겁게 만든다.
한편 오페라 극장안에서도 2층에 있던 도라를 1층의 귀도는 “여기를 보세요~”라고 게속 쇼펜하우어식 주문을 외우니 그녀가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데이트에서는 열쇠를 달라고 하니 마리아의 열쇠가 떨어지고, 비가 온 후 마른모자를 얻는 등의 상황은 우연과 필연의 교차속에서 영화적 허구로 쇼펜하우어식 주문이 통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그러한 귀도의 순수한 의지와 사랑이 쇼펜하우어식 주문으로 발현되어 결국 결혼하여 조슈아까지 얻게 되는 결실을 맺게 된다.
또한 전쟁의 참상속에서 귀도는 조슈아에게 전쟁이 아닌 놀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1000점을 얻는 사람에게는 탱크를 얻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 결말에서 실제 조슈아는 살아남으면서 실제 미군의 탱크를 보게 되고, 마치 귀도의 놀이게임에서 승리한 것처럼 결론이 나게 된다.
이는 귀도는 희생하지만, 귀도가 조슈아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던건 쇼펜하우어식 주문으로 간절히 원하면 얻을 수 있다는 진리 였을 것이다. 아마 아버지로써 그것만은 얘기해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이러한 상황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 과정의 논리적 규정은 중요치 않을 것이다.
귀도는 냉혹한 현실에서 귀도가 간절히 살기를 원했을 것이고 그것이 실현 된 것 뿐이다.
또 영화는 다른 설정으로도 얘기한다.
영화에서 귀도의 직업은 웨이터(waitor)이며, 영화적 설정으로 현실에서 그는 기다리라 얘기 하지만, 그는 기다리지 않는다.
운명은 항상 귀도를 외면하지만 귀도는 긍정적으로 이겨내기 위하여 달려간다.
도라의 순수한 사랑을 간절하게 원하여 구애하고, 수용소에 끌려갔을 지라도, 자신의 아들의 구원을 원하여, 온갖 노력을 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도라를 위해, 연애시절 들었던 음악을 그녀를 위해 틀어준다.
그리고 조슈아 또한 상자 안에 하루 종일 기다린 후에야 독일군이 철수하고 나서 나올 수 있었다. 오직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이뤄낸 목숨의 구원인 것이다. 만약 조슈아가 순수한 의지가 조금만 약해졌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모든지 이루고자 하여 간절히 원하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어떻게든 이뤄진다는 동화 같은 결론으로써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며,
현실이 힘들더라도 그래도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유쾌하고도, 절절하게 얘기해 주고 있다.
“With the will power, you can do anything
(강한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I am what I want to be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의 표상이다)
Arthur Schopenhauer
<아루투르 쇼펜하우어>
영화는 귀도와 도라가 결혼을 하여 귀여운 아들 조슈아를 낳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이루지만, 이미 거리는 독일군들로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고, 한 상점에 ‘유태인과 개는 출입금지’라고 쓰여있는걸 보고 조슈아는 왜 우리는 출입금지냐고 귀도에게 묻자, 귀도는 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쪽에 가면 스페인 사람과 캥거루가 금지고 윗동네엔 중국인이 출입금지라고 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거짓말을 한다. 이후, 귀도와 조슈아는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고, 불안해하는 아들 조슈아를 안심시키려 귀도는 이 모든게 미리 예약해놓은 여행이고, 하나의 '놀이'라고 말하며, 1000점을 다 얻으면 탱크를 얻는다고 착한 거짓말을 한다.
과연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 앞에서 암흑 같은 현실을 보여주고 싶을까? 그에게서 우리는 어릴적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수가 있을 것이다. 항상 우리네 아버지는 자식들에겐 동화 같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팍팍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한편, 이와 비슷하게 현실은 너무 냉혹하다고 가짜를 믿으라고, 안심시키려고 하는 또 다른 영화도 있다.
바로 영화 ‘트루먼쇼’이다.
영화 트루먼쇼는 트루먼을 태어난 순간부터 30세까지 24시간 리얼리티쇼에 출연시켜 모든 일상을 쇼의 세계로써 일치시켜 폭력적인 매스미디어와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영화이다.
이때, 극 중 트루먼과 리얼리티쇼의 기획자 크리스토프와의 관계에서 크리스토프가 트루먼에게 하는 대사는 흥미롭다. 쇼의 기획자이지만 일종의 트루먼의 아버지처럼 빙의하여 그에게 얘기한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가짜고, 속임수 뿐이지만 내가 만든 그곳은 다르다, 너는 진짜다. 두려워 할 것은 없다고 말이다.
이 둘은 실제 부자 관계는 아니지만, 현실상에서의 부자의 관계처럼 투영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속박하는 부모의 모습, 자신의 잣대대로 구속하고 한가지 길만을 강요하는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 등으로 투영 할 수 있을 것이다.
참상속에서 동화 같은 얘기로 아름다운것만 보여주려는 귀도와 같은 아버지상과 현실은 거짓뿐이라고 자신이 인도하는 길에서만 있으라고 얘기하는 크리스토프와 같은 아버지상은 둘다 아들을 위해 현실과 다른 거짓말을 하여,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 관점에 따라 비교할 만한 피사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자문자답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냉정한 현실을 아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서 진짜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진실된 사랑일까? 아니면 너무나 현실은 냉혹하니 안전하고 행복한 동화속에 있고, 위험한 현실에는 가지말라고 하는게 진실된 사랑일까? 하고 말이다. 어떤 것이 정답일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귀도같이 후자를 선택하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름다운 긍정의 힘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 귀도 같은 아버지라면 모든 자식들에게 끝까지 자신의 아픔은 참으면서 항상 웃는 얼굴로 그를 대할 것이다. 아들에게 상자안에 있으라고 하면서 아들이 볼까 걱정되어 죽는걸 알면서 마지막까지 병정놀이를 하는것처럼 하게 하여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감추는 것처럼 말이다. 자식에게 행복한 모습만을 기억해주고 싶은 어쩌면 아버지의 이기적이고 안쓰러운 모습인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언제나 슬픈것이니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