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화 작품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2000년대 들어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은 픽사, 드림웍스, 디즈니의 경쟁구도 속에 2D 애니메이션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어갔지만,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은 그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채 ‘원피스’, ‘도라에몽’, ‘크레용 신짱’, ‘명탐정 코난’ 등 자국 내 화제작들의 TV 시리즈와 극장판을 재생산해가는 것에 그치고 있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내세울 만한 작가가 없었다는 점으로써 큰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 일상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춘 감성적인 판타지물을 만드는 3세대 재패니메이션 감독 호소다 마모루(대표작:[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와 신카이 마코토(대표작 : [너의 이름은.], [초속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가 등장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2007년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제목으로 한 [초속5센티미터]를 통해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감독이다.
이제 3세대 재패니메이션 감독 중 빛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비주얼리티와 내러티브의 철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모네와의 비교를 통한 빛의 감성적 표현)
신카이 마코토 비주얼리티의 첫 번째 특징은 디테일하면서 감성적인 배경의 묘사이다. 리얼리즘적 성격을 지님과 동시에 인상파 화가인 모네의 화풍을 닮은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아래 비교 자료에서 보듯 그의 애니메이션 비주얼이 실제 대상이 되는 장소와 매우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시작점이 反 리얼리즘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쉽게 스쳐 지났던 일상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때 일상의 사물들과 그것을 비추는 빛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서정적 느낌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신카이 감독은 좀 더 사실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을 갖는 배경을 묘사하기 위해 스스로 로케이션 헌팅을 하며, 한 작품 당 1만 장 이상의 사진을 촬영할 만큼 배경 묘사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특히 [초속 5센티미터] 제작 당시에는 한 달간 제작팀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지역을 돌며 2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는데 이러한 작업 특성과 관련해 신카이마코토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전차에서 책을 읽다가 바깥 풍경을 놓치는 게 아까워 등·하굣길엔 내내 창밖만 바라봤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하늘도 나무도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변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그때 눈과 마음에 담아놓은 풍경과 감성이 지금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자산이 됐다.”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너의 이름은] 개봉 후 배경으로 등장했던 지역을 찾아가 작품과 비교하는 ‘성지순례’가 선풍적인 유행도 있었으며, 특히 그가 배경 중에서도 특히 집착하는 것은 하늘과 구름으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편 이러한 비주얼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 ‘에버필터 무단 도용 사건’이 있었다. 에버필터는 사진의 배경을 애니메이션풍으로 바꿔주는 앱인데, 출시 이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초속 5센티미터]의 배경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져 서비스를 중단되기도 했다. 아무리 칙칙한 사진이라도 신카이 마코토의 배경을 얹으면 화사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되는 것인데, 이를 통해 그의 배경과 색채가 지닌 마술적인 힘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였다.
또 하나 매우 인상적인 특징은 아래와 같이 인상파 주의 화가인 모네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는 점이다. 세밀한 묘사를 넘어서 독특한 감성적 표현의 특징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고, 연작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탐색했던 모네의 화풍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은 신카이 마코토가 색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빛에 의해서 자신의 눈에 감성적으로 반영된 그 감정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함이 의도로 추론된다.
다시 말하면 앞서 얘기한 그의 말에서 보듯 '계절과 시간에 따라 하늘도 나무도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것', '그때 눈과 마음에 담아놓은 풍경과 감성' 이 두 가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클로드 모네 작품]
[신카이 마코토 작품]
이 같은 배경의 빛에 대한 묘사는 최근 작품 [언어의 정원]에서 극에 달한다. 이렇게 그는 비가 오는 배경에 주인공이 느끼는 그 감정을 오롯이 그 색감에 담아내기 위해 빛에 따라 아름답게 변하는 모네의 색감처럼 담은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것을 보고 느끼는 관객의 감정은 신카이마코토가 사춘기 시절 느꼈던 감성이기도 하다.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그리고 키아로스쿠로)
신카이 마코토 비주얼리티의 두 번째 특징은 빛을 반영한 명암 대비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그래서 보통 신카이 감독을 칭할 때, 평단에서는 애니메이션계의 렘브란트라고 부르곤 한다.
참고로,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화가로써 바로크 시대의 빛의 마술사라고 불리며, 서양미술사조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특히 그를 최고의 화가로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남긴 키아로스쿠로(Chairobsucure)라고 불리는 명암 효과를 발전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키아로 스쿠로 란 빛과 어두움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하여, 그림에서는 강한 대조를 사용하여 그 무드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아래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보듯 키아로스쿠로의 사용은 밝은 부분이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그 주위와 배경에 어두운 부분이 넓게 배치되어, 마치 어둠 속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것처럼 하여 시선을 집중시켜 그림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배가 시킨다.
Rembrandt Lighting
[렘브란트의 작품]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이렇게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이렇게 키아로 스쿠로의 특징을 그대로 계승하는데, 위의 장면에서 보듯이 얼굴의 반쯤을 그림자로 드리우거나 역광에 가깝게 표현한 모습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신카이 감독을 애니메이션계의 렘브란트라고 입을 모으는 것이다.
참고로 서두에 언급한 같은 3세대 애니메이션의 다른 감독인 호소다 마모루는 신카이 감독과는 다른 인물의 표현법을 갖고 있다. 호소다 감독은 명암 표현이 절제된 인물 이미지를 그리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호소다 감독은 “캐릭터의 얼굴이나 몸에 그림자가 없는 편이 인물의 표정이나 성격을 더 생생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설명 한 바 있다. 이를 볼 때, 같은 3세대 애니메이션의 감독이 같은 목적을 두고서 관객에게 다른 관점과 표현으로 소구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앞서 얘기한 두 가지가 신카이 마코토 비주얼리티의 특징이라면 이번엔 그의 내러티브 철학을 살펴보자.
그의 작품 내러티브 소재는 사춘기의 풋풋함으로써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이러한 점 때문에 혹자는 여백 넘치는 애잔함에 매혹된다고 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중2병스럽다”며 사춘기 감수성에 녹아들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비주얼에서는 호불호가 없지만 스토리에 있어서는 평단의 호불호가 엇갈리곤 한다)
그래서 작품 내러티브의 흐름은 현재에서 떠올리면 유치하지만, 당시엔 더없이 아프고 강렬했던 그 감정 속으로 관객들을 몰아넣고자 함이 드러난다. 이러한 사춘기 소년, 소녀를 다루는 것을 두고 신카이마코토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이를 먹으면서 감정이 많이 무뎌지고 있지만 작품을 만들 때만은 많은 것이 눈부시고 신선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로 돌아가려 한다"라고 하고, 또한 주인공들이 서로 좋아하지만 대체로 맺어지지 않는 것을 두고서는 "나 자신이 소극적이고 인기가 없는 소년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두고, 김세준 애니메이션 평론가는 “신카이 감독이 그간의 작품에서 꾸준히 보여준 감수성과 ‘관계’라는 주제가 이번에는 탄탄한 서사에 힘입어 많은 사람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간 것이 ‘너의 이름은.’의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 바 있다.
이렇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비주얼리티적 특징과 그가 내러티브를 풀어내는 철학을 살펴보았다. 과거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낸 재패니메이션의 예술적 가치를 이제 신카이 마코토와 호소다 마모루가 이어받고 있다. 이에 신카이마코토가 자신의 사춘기적 감수성을 비주얼에 고스란히 담아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이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정지 이미지를 초당 24 프레임 이상으로 연속시켜서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작화(作画)일 뿐인데, 그럼에도 리얼리즘과 反리얼리즘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철학이 곧 만화를 예술로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