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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n Jeon Jan 25. 2018

자유와 평화를 외친 히피 그리고
비틀즈의 의미

비틀즈와 히피의 정신이 함의된 “Across the Universe"





1960년대의 대중문화와 뮤지션

좌상 : 밥딜런 / 우상: 지미헨드릭스 / 하 : 비틀즈

우리 근현대사 변곡점 사이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 아이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화 아이콘들은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문화적 상징모델로써 자리매김해 왔었다. 예컨대 팝음악계에는 50년대 로큰롤의 상징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고, 60년대에는 밥딜런과 지미헨드릭스 그리고 비틀즈가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음악들은 단순히 자신들만의 음악 이야기가 아닌 세대와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로써 대중 메시지의 상징적 역할을 해왔다. 

베트남전을 반대한 반전운동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60년대 팝음악계는 밥딜런, 지미헨드릭스, 비틀즈가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써 대중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60년대의 시대상을 말하자면 전쟁(베트남전)은 장기화되고경제는 발전하며삶은 윤택해졌지만인종간의 극심한 갈등은 심화되어 갔다. 젊은 청년들은 그러한 시대의 암울함 속에서 날마다 자유와 평화를 외치고노래를 부르며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형성하게 되었다. 1969년의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에서 지미헨드릭스, 밥딜런 등은 청년들의 중심에서 평화, 반전 등과 같은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면서, 시대의 아이콘이자, 청년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이를테면, 포크록의 창시자인 밥딜런의 가사에서도 “계급장을 떼주세요. 엄마, 내 총들을 땅에 꽂아줘요. 길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내려오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라고,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에서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외침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에 새기게 만든다. 




 1960년대, 자유와 평화를 향한 운동 ; 히피

그렇다면 60년대 팝음악의 정신이 되었던 히피정신이란 무엇일까? 
히피란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LA 등지 청년층에서부터 시작된기성의 사회 통념제도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의1960-70년대 상황은 베트남 전쟁 발발과, 존 F. 케네디의 암살,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암살, 로스엔젤레스 흑인 폭동 등의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이때 미국의 풍경은 현 실정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이에 미국의 청년층은 현 상황에 대해 부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1950년대에 완성된 현대 대중사회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쳤고도덕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성이성보다는 자유로운 감성을 중시하고즐거움을 추구했다. 이들은 긴 머리에 맨발이나 샌들을 신고 다녔으며, 다양한 색깔의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또 마리화나나 LSD, 그 밖의 약물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상징이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히피문화는 틀에 박힌 가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와 의미에 따라 개성의 표현을 추구하고기성사회의 성적 억압과 관습적 도덕을 해체함으로써 개방적인 성의 표현을 통해 친밀성과 이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을 성취하려고 했다흔히 일어나는 반전운동이나 민권운동과는 달리 히피문화는 기존 질서 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기보다는 기성사회의 새로운 가치 질서를 만들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어떠한 문화의 가치는 대개 사회를 중요시하는데 비해 히피들은 자신, 자아를 중요시한다. 이성적 사고 보다는 감정이입에 가치를 두고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 
 



히피들의 상징 ; 비틀즈의 등장

그렇다면 히피들의 비틀즈는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1963년 존 F.케네디의 죽음으로 미국은 슬픔과 동시에 활력을 잃게 되었다. 이듬해인 64년 비틀즈는 팬암 비행기를 타고 뉴욕공항에 온 것으로 미국 젊은 층 사이에서는 어떠한 활력소로서 작용하는 시발점이었다. 사실 비틀즈가 집중 조명 받으며, 일약 전세계의 스타가 되기 시작한것도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부터이다. 

비틀즈가 미국 문화사회에서 주목을 받기시작한데에는 그들의 자유분방함에서 비롯되었다. 영국 비틀즈만의 젊고, 거침없는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그 시대 미국의 어두운 상황과 맞물려, 힘을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었다. 또한 기존 엄격한 청교도 문화와 강한 마초적인 남성상으로 비롯되는 미국인들의 기존 관념에서 그들의 행태와 외모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를테면 기존의 엘비스 프레슬리, 말론브란도, 제임스 딘과 같은 미국 남성상의 외모나 헤어스타일은 강한 외모, 귀가 훤히 드러나게 보이는 짧은 헤어스타일이었는데, 이와 반대로 비틀즈는 곱상한 외모와 장발을 하고 나와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에 미국사회는 문화충격을 받으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기존 미국사회의 남성상 ; 강한 마초적 이미지
꽃미남 같은 아이돌의 비틀즈

이는 어쩌면 당시 미국사회의 상황에 환멸을 느낀 젊은 청년들에게는 기존의 관습체계와 이미지를 뒤집어버리는 반항의 상징으로써 자리매김 하기 시작한것이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청년들도 너도나도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고, 비틀즈가 영국에서 가져온 새로운 록큰롤이야말로 자유롭고 싶은 자신들의 음악이라고 여겼다. 이렇게 비틀즈에 대한 사랑의 기저는 단순히 음악성으로 해석되기 보다는 여러 사회 문화 요소와도 결집되어 일종의 기존 것에서의 해소작용으로써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폴리테이너 비틀즈 그리고 히피의 정신을 담아낸
‘All you need is love’

비틀즈는 미국에 진출 후 밥딜런을 만나면서부터 히피들의 중심으로 오는 행보를 점차 시작하게 된다. 그 전의 비틀즈의 음악은 로큰롤 특유의 흥겹고 춤추기 좋은 가벼운 음악에서 철학과 본질에 대해 탐미하는 음악을 하기 시작한것이다특히나 조지해리슨과 존레논이 인도의 힌두교 수도승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와의 만남을 통해 비틀즈 음악은 철학이 되었다. 그리하여 존레논과 조지해리슨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캠페인을 이끄는 등 히피운동에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조지 해리슨은 미국 캘리포니아 일대에 집결한 여러 히피들 사이에서 어쿠스틱 기타 하나 메고 노래를 부르며 반전과 세계 평화, 그리고 조금 불법적이지만 마리화나 예찬을 하고, 존레논 또한 자신의 아내 오노 요코와 함께 벌였던 기상천외한 평화 사랑 캠페인을 펼치거나 반전과 사랑에 관한 음악을 활발히 해온 것이다.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와 비틀즈
오노요코와 존레논


이런 비틀즈가 사랑과 평화를 노래로 얘기하는 세계적 폴리테이너로써 되는 계기가 All you need is love를 발표할 때이다. 1967년 영국의 전세계 24개국에 위성으로 Our World BBC판이 생방송으로 송출됐는데, 비틀즈 멤버들은 All You Need Is Love를 신나게 부르며 세계 평화를 노래했다. 전 세계 인류는 그것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며 그 순간만큼은 모두 하나가 되었다. 당시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환멸 및 반전에 대한 주장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였다. 그러함에 비틀즈가 세계인을 아우르는 영향력을 가졌다고 얘기하며, 역대 주요 역사에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고, 세계 평화주의적 사상, 영향력, 그리고 나아가 근대 인류 문화의 약진에 일조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All you needs is love 를 발표한 비틀즈


또한 이 곡은 히피들의 대표 곡으로 불리는데, 존레논이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쉽도록 후렴구를 굉장히 단순하게 만들어서 히피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때나 반전운동을 할 때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일종의 운동세력들이 부르는 민중가요와 같은 맥락인것이다. 
 
저널리스트 제드라이트의 말에 의하면, 존레논은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선전 활동에 벗어나 예술 창작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구호의 힘에 사로잡혔다고 언급했다. 그가 71년 “Give Peace a Chance”, 나 “Power to the People”같은 곡이 선전용이 아닌지를 존레논에게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요. 그러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사랑 뿐이에요(All You Need Is Love). 전 혁명적 아티스트입니다. 제 예술은 변혁을 가져오기 위해 만들어졌어요."라고 말한바도 있다. 



비틀즈와 히피들의 정신이 함의되어 있는
영화 “Across the Universe”


위대한 아티스트는 시대를 통찰하고대중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에 동참한다이윽고 그 철학을 가지고 대중을 이끌고 다니며시대적 흐름의 상징적 모델로써 대중들 개개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여러 사건과 사고에는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들이 곁에 있었다. 음악으로 하나 되고 음악으로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굵직한 역사와 음악가는 한데 묶일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비틀즈와 같이 히피를 이끈 밥딜런이 최근 노벨평화상을 받지 않았겠는가? 이는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었지만, 밥딜런이 한 세계평화에 영향을 끼친일이라면 충분히 수긍할만한 일이었다. 이로써 그의 수상을 통해 우리는 평화에 대한 영향력은 비단 정치가나 사회운동가만의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고, 음악가가 시대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비틀즈의 존레논이 살아있었다면 밥딜런과 노벨평화상 수상을 놓고 저울질 되지 않았을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밥딜런
영화 "across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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