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물어보니까 가방끈 꽤나 굵고 길어도 이 베트남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 이거 왜 이런지 알면 베트남 언어 역사에 대한 키워드를 대체로 알 수 있다.
1. 원래 쭉 한자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나름의 혼합 문자도 사용했다.
일단 지명 자체가 월남을 쭉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국가명이 동이국 뭐 이런 셈인데.. 여하튼 크게 보면 원래 엘리트 계급이 한자로 문자를 삼고, 보통의 사람들이 쓰는 구어와는 분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한반도 사정이랑 별반 다를 것 없었다.
2. 현재 베트남 문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도입된 로마자 표기법을 따른다.
로마자 표기법이라는 이 국적불명의 표현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베트남 문자의 기원이라 하면 훈민정음 반포 마냥 명확한 출판물이 있다. 프랑스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가 1651년에 라틴 문자로 된 베트남어 사전과 문법서를 출판한 게 기본 세팅이다. 사전이면 말 다했다(이거 뭐랄까 처음 들었을 때 아이폰 뒷면에 흔히 쓰여 있듯이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Made in China'랑 대충 비슷한 느낌 같았다). 근데 한 번 더 꼬인 것이 원래 먼저 와 있던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만들어 놓은 표기법을 프랑스인이 집대성한 거라서 막상 포르투갈어에 더 가깝다.
사전 표지
3. 그래서 그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베트남인들은 본인들 나라를 'Việt Nam'이라고 쓴다.
"Việt"는 "越"(월)이고, "Nam"은 "南"(남)이다. 그래서 발음은? 아무리 들어도 베트남이다. 저기 붙은 i를 아주 스쳐 지나가서 잘 안 들린다. 사실상 한국인 귀에는 'vetnam'처럼 들린다. 영어는? 그냥 쓰인 대로 읽을 뿐이다. 로컬의 발음 따위 알 바냐.
4. 결론은, 사실 한국어 표기가 원음에 더 가깝고 영어 표기는 원래 발음이랑 멀다!
대략 베트남과 Vietnam은 고려랑 Korea와 비슷하게 서양어권에서 그냥 자기들 편한 대로 불러준다는 의미에서 비슷한 처지의 짝이다. 훈민정음이 얼마나 남의 나라 아무 말 발음을 표기하기에 유리한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세종대왕 만세!)
물론, 이렇게 열심히 썼지만 나는 베트남어 할 줄 모른다. 역사를 아는 거니 오해 말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