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
연초에 코로나19로 여성의 돌봄 노동이 늘어났다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등교가 힘들어지면서 아이들의 점심도 문제가 됐다. 아이들의 점심을 챙겨주기 위해 회사 점심시간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한 엄마의 사연을 읽으며, 기억 저편에서 일고여덟 살 즈음에 보냈던 방과 후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종종 바퀴벌레나 쥐가 출몰하는 반지하였다. 아빠의 월급만으론 네 식구가 생활하기 빠듯했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것 또한 꿈꿀 수 없었기에 엄마도 돈을 벌러 밖으로 나갔다.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어린 나와 동생이 안전하게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그곳은 학원이 되었다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아이의 집이 되었다가, 겨울방학 특별활동 교실이 되기도 했다.
어린 나에게는 1년마다 바뀌던 방과 후의 풍경들일뿐이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 풍경에 엄마의 그림자가 묻어 있지 않은 곳은 없다는 것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나와 동생이 머물 수 있는 곳을 찾고,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원장님에게,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아이의 엄마에게, 특별활동 선생님에게 우리를 부탁했던 시간. 엄마의 숨 가쁜 시간과 아이들의 점심을 챙기기 위해 회사에서 집까지 서둘러 걷는 한 여성의 모습이 겹쳐지며 마음이 일렁였다.
이런 생각에 휩싸이다 보면, 엄마와 관련된 모든 것이 눈물 버튼이 된다. 매일 찜질기가 필요한 성치 않은 엄마의 허리도, 지금은 엄마의 잠옷이 된 내가 입다 버린 티셔츠도. 엄마가 우릴 키우느라, 엄마가 우리 때문에, 우리가 없었다면….
중학생이었던 내가, 아이들을 때려서 공부시키는 것으로 악명 높은 학원을 참고 다녔던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비밀이라면서 꺼낸 말 때문이었다. “아빠랑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냥 도망가버리려고 했어. 그런데 너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어.” 그 말은 나를 오랫동안 가해자의 자리에 있게 했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움직이게 했다.
가해자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 그러니까 서른이 되고 나서였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겨 심리상담을 받던 때였다. 어쩌다 보니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됐고, 그동안 꽁꽁 싸매 놨던 방과 후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을 마주했다.
초등학교 1학년, 학교가 끝나고 향하던 곳은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아이의 집. 동생이 있는 유치원으로 이동하기 전에,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그 아이의 엄마가 나와 그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나를 보며, 그 아이가 나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자기네 집에 가서 먹지.”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은 나이를 막론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모른 척을 했다. 반응이 없자 그 아이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네 집에 가서 먹지.”
또렷하게 떠오른 그날의 장면이 서러워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그 기억이 그토록 가슴에 박혔던 이유는, 여덟 살이었을 때도 20년이 지나고 나서도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삼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도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엄마의 희생을 눈치채는 건 누구보다 잘하면서, 나의 희생을 입 밖으로 내는 데엔 20년이 넘게 걸렸다.
엄마는 너를 위해서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가기 싫은 학원을 보낼 때에도, 대학 원서를 쓸 때에도, 내가 선생님이 되는 걸 포기하고 연극을 선택했을 때에도. 너를 위해서라는 말은 고장 난 나침반을 닮았다. 내 쪽을 향하던 바늘이 이따금 엄마 쪽을 향하고 있는 걸 보면. 엄마는 종종 고개를 돌려 자신이 가지 못했던 길을 보곤 했다. 할아버지가 대학에 보내줬더라면, 결혼 상대로 부유하거나 가정적인 사람을 만났더라면, 친할머니가 갓난아기였던 나를 잠시나마 맡아주었더라면. 엄마에게 허락된 세상은 너무 좁아서, 다른 사람 위에 올라타야만 자신이 가진 공간을 넓힐 수 있었다.
윈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잘되면 엄마가 잘되고, 그럼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의 존재가 엄마의 인생을 망가트린다고 느끼는 것처럼, 나 또한 엄마의 욕망이 나의 인생을 망가트린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생각한다. 나와 엄마는 무너지기 직전의 젠가와 같다고. 서로를 버겁다고 느끼면서도 무너질 수 없어 안간힘을 다해 버티는.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가 화가 났다가 또 미안하다가 다시 어이가 없다.
엄마에게 허락된 세상이 조금 넓었다면 어땠을까. 엄마가 지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엄마는 어린 딸의 등에 올라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 안에 엄마와 내가 아닌 다른 인물들이 등장했더라면, 엄마와 나는 지금처럼 서로에게 화내고 미워하고 미안해하는 관계가 아니라 다른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허락되지 않은 세상과 지지대의 행방을 떠올리며 종종 생각한다. 엄마와 내가 동시에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끼어있는 몸을 끄집어내 각자가 원하는 곳으로 낙하하는 날을. 그날이 오기를.
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지원에 선정, 지원을 통해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