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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뉴 Jan 09. 2022

가방 안들고 다니는 여자

어릴 적 욕심이 많아서 가방에 책, 공책, 펜을 한 가득 들고 다니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께서 자주 말씀하셨다. 어차피 다 못볼거 왜 그렇게 다 들고 다니냐고. 키 안 크겠다고도 하셨는데 그래서 키가 작은가 싶기도 하고...


나는 어른이 되서도 항상 가방을 꽉꽉 채워 다니곤 했는데, 막상 그 짐들이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나선 종종 외출 전 짐 줄이는 연습을 한다. 

나처럼 짐이 항상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은 대강 이러하다:

1. 혹시나 모르는 뜨는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책이나 패드를 꼭 들고 다녀야지

2. 혹시나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밴드랑 빗이랑 충전기랑 키보드랑 간식이랑 전부 다 들고 나가야지

3. 카페에 갈 땐 책도 읽고 인강도 듣고 일기도 쓰고 사진도 정리하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빼먹지 말고 다 들고 가야겠다.


그런데 막상 외출 시간에 그 많은 걸 다 해내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특히 흥미로운 가게나 서점이 보이면 구경한다고 샛길로 빠지는 일도 잦아서 막상 뜨는 시간도 없다. 


유튜브에서 2차 전지에 관한 영상을 보다가, 

조승연 작가가 '영화 속 멋진 사람들 (007 제임스 본드나 아이언맨 등) 은 짐이 많지 않아서 더 멋지다. 바리바리 양쪽에 큰 배터리를 들고 다니면 얼마나 멋이 없겠나.' 와 비슷한 말을 했다. (정확한 멘트는 아니지만 내 머리속에는 이렇게 남아있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회사에서 가방을 안 들고 다니는 선배가 있는데 굉장히 우아하고 멋져보인다. 여자들 중에 가방없이 출퇴근 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미니백이라도 들고 다니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생각해보면 나도 핸드폰이랑 사원증을 담기 위한 지갑, 블루투스 이어폰 외에는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요즘에야 재택근무 때문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긴 하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번 있는 일이라서 평소엔 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증명사진 찍으러 사진관을 가는데 오랜만에 짐꾼 본성이 튀어나왔다. 가방에 일기장, 공부중인 자격증 책, 인강 들을 아이패드, 필통, 읽고 있는 책을 넣고 집을 나서려고 신발을 신었다. 사진 찍고 인화 기다리는 시간에 카페에 가서 공부 좀 하다가 저녁 약속으로 갈 생각이었다. 동시에 운동도 할겸 사진관에 걸어서 다녀올 계획까지 알차게 세웠다. (참고로 집부터 사진관까지 걸어서 30분이다.) 


집에서 나와 5분 정도 걸었을까. 가방이 너무 무겁고 거슬렸다. 사진관에 걸어갈건데 가방이 무거우니 슬며시 짜증이 났다. 인화 기다리는 시간이 짧으면 어차피 사진관에 잠시 앉아있어야 해서 공부하기 어렵고, 인화 시간이 길면 저녁약속 때문에 내일 다시 사진관에 가는게 나을텐데. 공부랑 독서는 집에 있는 시간에 집중해서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공부가 하고 싶으면 핸드폰으로도 인강은 들을 수 있을테니 굳이 저 짐들을 바리바리 들고 갈 필요가 없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 현관 앞에 가방을 내려두고 핸드폰, 지갑, 블루투스 이어폰만 들고 나왔다. 수정 화장품고 사진관에 있을테니 그냥 맨몸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우니 확실히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역시 가방 없는게 가볍고 편하다."




2021년엔 이런저런 생각도 많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하다보니 집안에 어지러워졌다. 생각이 정리가 안되면 집도 정리가 안된다고 한다. 생각을 간소화하고, 시간과 공간을 정갈하게 하면 삶에 군더더기가 없어지겠지. 2022년 새해를 맞아 다시 집안에 쓸모없는 잡동사니를 버리면서 생각이 나 글을 쓴다. 이번엔 연초에 바짝 다짐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심플한 집 상태 1년만 유지해보자. 


올 10월에 이사를 가야하는데 그때까지 짐을 최소화 하려고 한다. 오늘 무거운 가방을 들고 외출했을때의 그 답답남을 이사할 때 느끼고 싶지 않다. 짐의 무게를 최소화 하고자 하자. 최고의 반찬은 '시장(hunger)' 이며 최고의 인테리어는 '여백(empty space)' 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멋진 여자는 가방을 들고다니지 않는다는 것도. 

몸도 마음도 가벼워 보이는 스타벅스 피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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