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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Mar 29. 2022

길 위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 유럽

성직자의 마을 아씨시(Assisi) - 수녀님이 차려주신 저녁식사

유럽 여행을 시작하면서 영국-프랑스-스페인을 거쳐 네 번째 여행을 했던 나라는 이탈리아였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험난한 일들을 겪으며 설렘은 점차 줄어들고 여행에 대한 의지마저 조금은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이탈리아에 도착했었다.

이탈리아 역시 워낙 유명한 관광지가 많은 만큼 도심 곳곳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처음에는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로 이탈리아의 첫 여행지였던 로마에 도착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생각해 보니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고 여행을 즐기게 된 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부터 였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성직자 마을로 잘 알려진 ‘아씨시(Assisi)’는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 가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것도 아닌 내가 ‘아씨시(Assisi)’를 여행하기로 했던 이유는 수녀원에서의 숙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수녀원에서의 숙박이라..’


여자만 가능한 수녀원에서의 하룻밤 머무름은 고민할 여지도 없이 ‘아씨시(Assisi)’를 방문하게 만드는 이유가 됐다.

처음엔 아주 단순한 이유와 호기심으로 선택한 곳이었으나 여행 후에는 언젠가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여행지로 바뀌기도 했었다. 그만큼 아씨시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충분히 매력 있는 도시였다.




                                         프란체스코 성당의 낮과 




'아씨시' 하면 단연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설립한 성인 프란체스코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며 건축학적으로도 명성이 높아, 순례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우아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이 들게 하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아씨시의 입구와도 같은 곳이다. 마을 진입로에 위치해 있어 아씨시에 들어서면 곧바로 마주할 수 있다.

시작부터 보이는  프란체스코 성당의 웅장한 풍경에 감탄을 하는 것도 잠시, 여행 가방을 끌고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살짝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모든 풍경이 고요하고 우아한 듯한 그곳에서  혼자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올라가다가 사제복을 입고 지나는 수도승을 만나기도 했다.

주민의 80%가 성직자인 이 마을에서 지나다니는 수도승과 수녀님들을 자주 마주 하게 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만난 수도승들은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델질리오 수녀원



겨울임에도 등에 한줄기 땀이 흐를 정도로 힘겹게 언덕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수녀원에 다다랐다.

1층에서 벨을 누르 수녀님 한분이 나오셔서 안내를 해주셨다.

수녀님이라고 하면 왠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내를 해주신 수녀님은 30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아주 젊고 예쁘신 분이었다. 문이 열린 틈으로도 느껴지는 고요함과 내가 생각하던 수녀님과 다른 모습에 잠시 머뭇 거리자 들어와도 된다는 손짓을 하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왠지 말도 행동도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움직임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는데, 수녀님이 그런 내 모습을 느끼셨는지 주의사항만 지키면 편하게 지내도 되니 걱정 말라며 다시 한번 웃어 보이셨다.

하룻밤 숙박을 위한 비용을 지불하고 간단한 안내 사항을 전달받은 뒤 곧바로 수녀님을 따라 방으로 이동했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방은 지하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입구에서는 지하층이지만 방에서 이어지는 테라스에서는 움브리아주 평야가 훤히 내다 보이기 때문에 지하의 답답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의 안개가 있기는 했지만 고층건물 하나 없이 펼쳐진 평야를 바라보고 있자니,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봐 왔던 도심에서 느끼는 유럽과는 또 다른 느낌의 유럽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씨시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더 늦기 전에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조금은 이른 시간에 도착을 했었기 때문에 마을 한 바퀴 정도는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을 둘러보러 나가려는데 방 입구에 식사 안내문이 있었다.

저녁식사를 원하는 경우 미리 신청을 하면 수녀원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수녀님께 여쭤보니 수녀님들이 드시는 식사를 똑같이 먹어볼 수 있다고 했다.

'마치 템플스테이에 가면 스님들 식사를 똑같이 먹어보는 것과 같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곧바로 저녁식사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크리스천도 아니면서 수녀원에서의 숙박과 수녀님이 주시는 저녁 식사에 왜 그렇게 기대를 하고 신이 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나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종교인이 아니기에 더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라 생각해서 그랬던 듯하다.





수녀원에서의 저녁식사



아씨시 구경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로마에서 만났던 언니들이 도착해 있었다.

로마에서 같은 숙소에 머물던 언니들도 나와 같은 일정으로 아씨시를 여행하고 숙소 역시 똑같이 수녀원에 머문다고 했었다. 다만 기차 시간이 달라서 나는 먼저 아씨시에 도착했고 언니들은 늦은 오후가 돼서야 수녀원에 들어왔다.

수녀원에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예약해 두었다고 하니 언니들 역시 수녀님이 차려주신 저녁 식사를 해보고 싶다고 해서 부랴부랴 시간에 맞춰 예약을 하고 식당으로 함께 이동했다.

수녀원은 일반 호스텔이 아니기에 저녁식사 또한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 수녀님들이 업무를 분담해 시간에 맞추어 일을 보시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담당하시는 수녀님이 준비를 해주시는 것이다.

숙박을 하는 사람들은 몇몇 더 있었지만 저녁 식사를 신청한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는지 식당은 조용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나이가 지긋하신 수녀님 한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듯이 반가운 미소로 맞이해 주셨다. 나이가 많은 분께 실례되는 말인 줄은 알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동그란 안경을 쓴 채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우리를 반겨 주시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우신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의 미소에 식사를 하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서 한껏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식전 빵과 과일은 이미 테이블에 세팅이 되어 있었고 음식은 아직 차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빵을 먼저 먹어도 되나 싶은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자 수녀님이 다가와 뭐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이탈리아어였다.

우리 셋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수녀님 역시 눈이 커진 채로 우리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 하셨다. 약 3초 정도의 정적이 흐르자 서로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수녀님 역시 크게 웃으시다가 다시 한번 또박또박 천천히 말씀을 해주셨지만, 단어의 뜻은커녕 발음조차 못 알아듣는 우리로서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수녀님 영어를 하실  아냐고 물어봤지만, 수녀님의 말에 아무   하던 우리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계신  보고 다소 어려운 저녁식사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시대라면 그 자리에서 번역기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했겠지만, 일명 2G 폰을 사용하던 그때에는 같이 있던 언니의 '여행용 이탈리아어' 책을 빌어 '맛있어요.', '감사합니다'만 연신 내뱉으면 저녁 식사를 해야 했다.

나름 대화를 해보겠다고 몇 가지 문장을 찾아 읽어 봤지만 한국어로 된 발음을 따라 읽으니 우리의 발음이 이상했던 건지 반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셨고, 반은 알아들으시고는 환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이탈리아어로 우리에게 대답을 해주셨다. 그러면 수녀님이 대답해 주시는 건 또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의 침묵이 이어지는 것이 반복되며 서로 두 마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만국 공통어 '바디 랭귀지'가 있었다.

어색한 침묵을 뒤로하고 수녀님이 준비하신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기 시작했고, 음식을 하나씩 맛보면서 온몸을 이용해 맛을 표현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수녀님이 차려주신 음식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식당의 음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지만 굉장히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이었고, 한 번씩 먹을 때마다 '우와'를 연발하며 미소를 짓는 우리를 보며 수녀님도 굉장히 흡족해하셨다.

메인 요리를 맛보면서는 엄지를 치켜세우고 음식을 가리키며 최대한 맛있다는 표현을 하려고 애썼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수녀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다 우리가 한 번씩 "부오노(Buono)"라고 외치면 수녀님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우리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 보기도 하셨다.

처음에는 말 한마디에도 서로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지만, 음식을 맛보며 느끼는 감정과 즐거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다 보니 굳이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맛있게 먹는 우리를 보며 음식을 계속 더 가져다주시는 수녀님의 마음과 충분히 맛있게 먹고 있다는 우리의 마음은 서로 말이 통해야만 전달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꽤나 긴 시간 동안 우리의 식사를 챙겨 주시기만 하던 수녀님에게 식사를 하신 건지, 우리와 같이 드시면 안 되는 건지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마음도 수녀님에게 전달이 되었다. 수녀님 역시 우리의 마음을 아셨는지 본인은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이시고는 과일도 챙겨 가라며 다시 한번 신경 써주셨다.

그렇게 서로 표현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모두 다 생략하고 서로의 마음만 표현하고 전달하면서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녀님에게 가장 확실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라찌에!(Grazie)"를 외치고는 다시 한번 우리를 재미있게 바라보는 수녀님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아씨시를 여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녀원에서의 저녁 식사가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긴장을 늦춘 채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며 보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혼자라는 불안감과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긴장감을 모두 내려놓고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하며 새로운 경험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진짜 여행'의 시작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물론 그 뒤에 작은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다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간이 이어지긴 했지만, 아씨시부터 시작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를 지나며 느꼈던 평온함 덕분에 처음만큼의 긴장과 두려움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아씨시는 나의 유럽여행에서 잊히지 않는 여행지로 남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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