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국토대장정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도란도란 걷는 것이었다.
첫날 행진을 하며 내가 가진 환상은 깨졌다. 끝이 없는 아스팔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는 그 당시 km에 대한 단위 개념이 없었다. 하루에 30km를 걷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국토대장정을 하며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여름에도 따뜻한 물로만 샤워를 했던 나는 경악했다. 행진이 끝나고 스텝의 통제에 따라 샤워를 조별로 나누어 들어가게 되는데 얼음장 같은 물로 빨래를 포함하여 5분 안에 샤워를 해야 했다.
'설마 그렇게 빡빡하게 하겠어?'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몇 없는 물바가지를 서로 양보하며 여유롭게 씻었다. 그 결과, 모두 시간 안에 샤워하지 못했고 발가벗은 채로 나와 옷을 입어야 했다. (다행히 간이 샤워실이 숙소와 많이 떨어진 수풀 속에 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했던가?
나는 그 속담을 무시하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돈이 있지만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먹을 수 없고 물의 양마저 제한받는 이 환경이 너무 불편했다. 중도포기를 상상했지만 내가 지불한 돈들이 머릿속에 아른아른거렸고 불편하다고 회피하기 싫었다. 로망에서 벗어나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가방은 내가 들기에 너무 무거웠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가방 부피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침낭 속 솜까지 다 뜯어서 버렸다. 한마디로 소시지 없는 핫도그였다. 다들 놀렸지만 나는 홀가분했고 행복했다. 그때부터 대장정을 제대로 즐겼던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환상과는 달랐지만 많은 것을 몸으로 터득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힘내라고 말할 때는 손도 함께 건네야 합니다. 넘어져 있다면 일으켜 세우고, 지쳐 있다면 짐을 나눠 들면서 함께 힘내자고 해야 하죠."
이 구절을 읽자마자 국토대장정 조원들이 생각났다. 생리통으로 고생했을 때 내 속도에 맞춰준 동갑내기 D친구, 열사병으로 쓰러졌을 때 내 옆에 있어준 조장, 제일 포기하고 싶었던 날 내 손을 잡아주었던 Y동생. 무릎 보호대를 내게 주고 간 조원, 힘들 텐데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우려 애쓴 동생들.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완주할 수 있었다. 다른 이의 노력을 함부로 평가하고 힘내라는 말을 쉽게 꺼내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2016년 여름 그때를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