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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Sep 19. 2017

너는 나를

"넌 나조차도 처음 보는 나를 만들었지"

  스마트폰의 발달에 따라 폰에 설치하여 사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전화, 은행, 지하철, 카톡 외에 별다른 앱을 사용하지 않던 내게 '그 앱'을 알게 된 것은 내 세계가 확장되는 나름의 대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냥 내 성격이 그렇다. 늘 쓰던 것, 늘 먹던 것, 늘 가던 곳, 늘 보던 사람이 좋고 편하다. 새로 뭔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게 있어 그리 반길 만한 일은 아니다. 나도 사람이니 적응이란 걸 하겠지만 적응하기 전까지의,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싫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그리고 나 같은 동지가 꽤 많을 거라고 믿고 있는 편이다.


  아무튼, 그렇게 살아온 지도 수년이 지났고 중간중간 작은 파도가 쳤을지언정 크게 내 삶이 뒤흔들린 적은 없었기에 나는 내가 꽤 어른스럽게 내 삶을 잘 통제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랬던 나의 일상이 다른 것도 아닌, 고작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때문에 변해버렸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보는 공간에 짧은 글을 올린다. 동시에 올라오는 글이 많으므로 내 글에 반응이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닉네임을 설정하여 익명의 공간에서 자신을 정의 내리는 방법도 있겠으나 중복 닉네임이 가능한 시점에서 이미 그렇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혹은, 특별할 것 없는 이곳의 많은 이들이 쓰는 닉네임으로 설정한 뒤 군중 속에 파묻히는 방법도 있다. 말 못 할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은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주로 그렇게들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그 '흔한 닉네임'앞에 성별을 나타내는 접두사를 붙여서 본인을 나타내곤 했다.


  사람들은 이 앱을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그냥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 심심풀이, 프로 넋두리꾼, 답정너, 쉽게 말하지 못할 고민 상담, 좋은 글귀 공유, 그리고 이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까지.


  너를 처음 만난 곳도 그곳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올린 내 글에 네가 답글을 달고,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하다 말고 너는 통화를 하자고 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되냐고 묻자 'ㅋ'이 20개 정도 달린 답장이 왔다. 답장 말미에는 여기로 오라는 말과 함께 내가 안 쓰던 다른 메신저 앱의 ID가 적혀 있었고, 부랴부랴 그 메신저를 설치한 뒤 대화를 걸고 통화를 하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동안 이렇게나 달라져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공감대로 친해진 우리였고, 시간대도 새벽이었기에 자연스레 왜 잠이 안 오는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하기를 30여 분, 잠이 잘 오는 각종 민간요법을 인터넷으로 찾아가면서 이야기하던 중 유난히 네가 조용하길래 이야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니 희미하게 너의 숨소리가 들렸다. 매번 3시간 이상 잠들지 못하고 깨는 것이 고민이라던 너는 그렇게 잠든 지 12시간이 지난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어제 자기 어떻게 된 거냐며 연락이 왔다. 물론 나도 잘 모르겠다는 실없는 대답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그렇게 밤마다 우리의 통화는 계속되었고, 너의 코골이 소리를 신호로 종료되곤 했다. 덕분에 나는 너의 얼굴보다 코골이 패턴을 먼저 알게 되었다.


"오빠 목소리가 잠 오는 목소리인 것 같아."


"야 그거 나름 실례 아니냐. 지루하다는 소리잖아."


"음... 그렇다기보단, 잔잔해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


"칭찬을 하려면 칭찬만 하고 디스를 하려면 디스만 해라."


"오빠. 우리 만날까?"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지루하다는 게... 뭐?"


"만나자고. 우리."


"아니 그... 우리 아직 얼굴도 모르고 또 아직 얼마 안 됐고..."


"응? 그러고 보니 사진을 안 줬구나. 보면 만나고 싶어질 걸? 잠깐만."


  당돌하기 짝이 없는 멘트와 함께 곧바로 사진이 세 개 정도 왔다. 이뻐 봐야 얼마나 이쁘겠냐 하고 나는 사진을 확인했고 잠시 후, 만나는 날짜와 장소를 확정 지었다.


  이게 그 로또인가 뭔가 하는 그거인가 보다.

  많은 공감대를 나눴던 우리였기에 만나서도 대화는 물 흐르듯 계속되었다. 이렇게 만나는 것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불안했던 마음도 대화와 술잔, 웃음이 오고 가며 어느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문득 이런 비일상적인 일에 스스로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다 하루인걸...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너와의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막차 시간이 가까워져 왔다. 찢어지게 기지개를 한껏 켠 네가 말했다.


"아 이 시간만 되면 피곤하네."


"뭐? 나랑 있는데 졸리다고?"


"조금 달라. 피곤한데 잠이 오진 않네."


"슬슬 자러 가야겠다 그럼. 벌써 시간도 이렇게 됐고."


"오빠."


"응? 왜?"


"나 재워주라 오늘도."


"당연하지. 집에 가서 전화해."


  내 말에 너는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더니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와 속삭였다.


"아니. 오늘은 옆에서 재워줘."


  그래. 아무래도 이게 그 로또인가 뭔가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널 알게 된 뒤 조용하던 나의 세계는 계속해서 넓어지고 변해갔다. 비슷한 일상을 살며 그곳에 안주하던 내게 너는 그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계속해서 내 일상을 뒤흔들었다. 그렇게나 지키려고 애썼던 나의 일상들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잠시 느꼈던 것에서 이어져 지금은 그냥 이렇게 네가 내 삶에 녹아든 채로 변해가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너는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졌다. 한순간에 다가와 내게 녹아들었던 것이 하룻밤 꿈처럼 느껴질 만큼 무색하게. 이렇게 그때를 돌아보는 지금조차도 연락은커녕 왜 떠나갔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내가 뭔가 실수했던 거라도 있었을까? 난 너에게 뭐였을까? 잠깐 데리고 놀던 장난감? 수면유도제? 잘 모르겠다. 그냥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만이 최선일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예전의 일상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그때로는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짧지만 달달하고 따뜻했던 그 모든 순간이,

그 순간 곁에 있던 네가,

지금 이 순간도 미치도록 그리우니까.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류시화 - 소금인형



[김진표 - 너는 나를(Feat.조현아 of 어반자카파)]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모든 게 멈추어 버린듯해

주위에 들리던 TV도 소리도 모두 꺼진듯해

오랜 정적 끝에 너가 웃은듯해

구태의연하게 말한들 너는 이 기분 이해를 못해

나는 잘 웃지도 나는 말 많지도

여기에 저기에 섞여 누구든 아무랑 잘 어울리지도

내 맘을 쉽게 열지도 않던 난데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난데


너는 나를 웃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춤을 추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수다 떨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다시 한번 꿈을 꾸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영화 주인공으로 만들었지

너는 나를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지

너는 나를 거울 앞에 서게 만들었지

넌 나조차도 처음 보는 나를 만들었지


나를 다시 웃게 만든 사람 그대죠

그런 날 또 울게 만든 것도 그대죠

이제 외면해도 그댄 나의 전부죠

나 이렇게 아파도 널 다신 볼 수 없어도



우리 처음 싸운 그날이 나는 또 기억나

사소한 말다툼에 너무 속상했던 나

그때부터 엇나가다 상처는 계속 덧나 난 겁나

우리 설마 이렇게 쉽게 모든 믿음이 무너졌나

고작 이거뿐 이였나 돌릴 순 없나

대체 문젠 뭔가 이렇게 끝난 건가

수많은 위기도 기회도 날아가고

딱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수없이 외쳐보고


너는 나를 화나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하염없이 눈물 흘리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소릴 지르게도 만들었지

너는 나를 먹지 못하게도 만들었지

넌 날 3류 영화 주인공으로 만들었지

넌 나조차도 몰랐던 날 계속 만들었지


나를 다시 웃게 만든 사람 그대죠

그런 날 또 울게 만든 것도 그대죠

이제 외면해도 그댄 나의 전부죠

나 이렇게 아파도 널 다신 볼 수 없어도



그래 어젠 너무 슬퍼 난 울었지

너가 나를 정신 나간 놈처럼 만들었지

그날 이후 하염없이 난 술만 늘었지

넌 내가 널 죽도록 보고 싶게 만들었지

노랠 만들었지 널 위해 난 불렀지

아무리 불러도 너는 절대 나의 옆엔 없지

넌 나를 너 없이는 안되게 만들어 버렸고

몇만 번 네 이름만 부르게 만들었지


나를 다시 숨 쉬게 한 사람 그대죠

그런 날 또 괴롭히는 것도 그대죠

이런 날 그대만 바보같이 모르죠

난 너 없이는 안돼 아직도 난 널 사랑해

나를 다시 웃게 만든 사람 그대죠

이제 외면해도 그댄 나의 전부죠


너는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말이 없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혼자 있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술에 취해 운전하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추억 속에 살게 만들었지

너는 나를 숨 쉴 수 없게도 만들었지

넌 날 사랑 따윈 못하게도 만들었지


너는 나를

너는 나를

김진표 '5 Break-Up Stories'(201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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