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얼굴 살며시 스치고 내일로 사라지는 꿈을 꿨어."
나나츠키 타카후미의 소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를 원작으로 한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가 지난 10월 12일에 개봉했다. 포스터를 보지 않고 영화 제목만 들었음에도 일본 영화인 것을 알았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일본의 라이트노벨들도 그렇고 저런 식으로 다들 제목이 긴데, 그쪽 업계만의 유행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타임루프물을 좋아한다.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날 리 없는 그런 신기한 일들은 '판타지'라는 이름표를 달고 소설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영화 속에서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며 이렇게 말한다. '알아 우리도 말도 안 되는 거 아는데 이건 그냥 판타지잖아. 그러니까 고려해서 봐 줘.'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판타지 로맨스는 꽤 잘 먹히는 모양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일본발 로맨스가 그랬고, 이쪽 영화의 대표 격인 이프 온리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그랬고, 저 멀리 프랑스에서 온 기욤 뮈소의 소설들이 그랬다. 타임루프 혹은 타임슬립 등의 시간 여행은 그 속의 단골 메뉴이기에, 이번에 개봉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역시 기존의 판타지 로맨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영화관에 들어섰다.
스무 살의 미대생 미나미야마 타카토시(후쿠시 소우타 분)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쿠쥬 에미(고마츠 나나 분)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만날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라며 타카토시는 에미에게 말을 걸기로 마음먹게 되고, 상남자처럼 마음먹은 것과 달리 어수룩한 숙맥인 타카토시는 에미에게 어리버리함을 잔뜩 묻혀 말을 걸고,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개봉일이 10월 12일(일본은 2016년 개봉)인데 사랑니를 뽑고 얼얼함을 느끼며 리뷰를 쓰는 지금은 10월 31일이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라도 봐서 정말 다행이었다. 눈이 새빨개질 정도로 펑펑 운 걸 과연 다행이라고 말해도 좋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모습들이 큼지막한 덩치의 서른 살 남자를 영화관에서 질질 짜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더불어 아래부터는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가능하면 영화를 본 뒤 읽어주셨으면 한다.
타카토시의 능청스러운 절친 우에야마(히가시데 마사히로 분)와의 장면, 에미 앞에서 쭈굴쭈굴하는 타카토시의 장면 등 초반부의 화자인 타카토시의 연애 경험 없는 어수룩한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보는동안 '아이고 인간아...' 를 몇 번이나 속으로 말했지만, 조금 답답했을지언정 입가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봤다. 우리의 스무살에서 안 어설펐고 안 찌질했던 부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설정을 조금은 알고 있었기에 중간중간 작은 일들에 대한 '처음'을 이야기하는 타카토시의 말에 눈물짓는 에미의 모습은 '이제 곧 타카토시에게 진실을 말하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때부터였다. 마냥 이들의 로맨스를 아빠미소 지으며 볼 수만은 없게 된 것은.
그래. 사실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뻔한 슬픔이라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즐거운 건 즐거운 거라는, 즐거울 것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겪었을 때 안 즐겁지는 않을 거라는 영화 속 에미의 말처럼.
과거로부터 미래로, 우리가 아는 시간의 흐름대로 살아가는 타카토시와 달리 에미는 타카토시의 세계와 비교했을 때 정반대인, 미래로부터 과거로 돌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5년에 단 한 번, 달이 차고 기우는 30일 동안만 둘의 세계가 함께 흘러가게 된다고? 아무리 판타지라지만 니네 너무한 거 아니냐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영화를 주도하는 화자는 여전히 타카토시였기에 이런 생각들을 깊게 하진 못하고 타카토시의 생각과 시선으로 영화를 따라갔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에미의 슬픔을 타카토시가 진정으로 알게 되는 순간, 영화 설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주르륵 쏟아져 나왔고 타카토시의 시점에서, 에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설렘에서 행복으로 슬픔으로, 흐뭇함에서 안타까움으로, 다시 아련함으로... 감정을 추스를 틈을 주질 않고 쉴 새 없이 나를 몰아쳤다. 더 짜증 나는 건 작은 몸짓이나 대사 한마디, 소품 하나에도 감정이 복받쳐 오르게 되어버렸다는 거다. 감독 이 나쁜 놈아.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들은 어느 것 하나 타카토시&에미와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들은 대체로 극 초중반에 등장해 평화로운 분위기에 묻혀 그냥 조용히 지나갔다가 나중에 이야기가 진행되고 타카토시의 시점과 함께 에미의 시점이 추가되어 내막을 알게 되는 순간 정체를 드러내어 여러 관객을 오열하게 했다. 한 장면에 몇 개씩 들어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부분이 꽤 많으므로, 그게 어떤 부분들일지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싶은데 나도 놓친 부분이 있을 테니까 이후에 영화를 한 번 더 보면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또 그거 보면서 '어떡해' 하고 울겠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장치들을 살펴보고 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이야기에 영향에 미치는지를 음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 : 음미는 무슨 우느라 바쁘겠지.
특정 장면 이후의 대다수 장면은 초반부의 평화로운 장면들과 대칭성을 이루고, 이때 앞서 말한 소품들은 이 장면들이 주는 감정의 파도를 극대화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고, 네티즌 리뷰 창에 쓰여 있던 '1번 보면 마지막에 울고, 2번 보면 처음부터 운다'는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감독 이 나쁜 놈아.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0일뿐이다. 엄밀히 따지면 영화 속에서도 이야기했듯 5년에 한 번은 만날 수 있지만, 그들 모두가 온전히 서로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인식하게 되는 시간은 두 사람 모두가 스무살이 된 그때 뿐이다. 그 시간이 끝나버리면 한쪽은 다른 쪽을 기억하며 다른 쪽이 스무살이 됐을 때를 준비하고, 다른 쪽은 한쪽이 가지고 있는 추억이나 함께 한 기억 같은 것들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0일을 위해 에미는 평생을 살았고, 타카토시는 35살까지의 남은 날들을 살아야 한다. 그냥 30일 후에 먼 나라로 유학을 간다, 불치병에 걸려 30일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정도로는 분명 이렇게까지 관객들의 감정을 뒤흔들지 못할 것이다.
그 찰나를 위해 한참을 견딘 끝에 만났는데, 나의 첫날이 상대방의 마지막 날이 되고, 갈수록 공유할 수 없는 혼자만의 추억이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첫눈에 반한 사람이 알고 보니 어릴 적부터 나를 알고 있던 사람이고 다음날 본 그녀는 어제로부터 온 그녀이며 앞으로 올 '그녀들'은 오늘 있었던 나와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긴 인고의 시간이 아닌 고작 두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그들을 보는 우리는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저런 상황 속에서 그런 모습의 사랑도 사랑이라며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을까?
시간이 이토록 잔인하다. 흘러가는 걸 바라만 볼 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모래를 쥐어 봤자 다 빠져나가 버리고 손바닥만 반짝거리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가고 남는 건 추억뿐이다. 그 추억만 가지고 살아도 좋을 정도의 사랑을 한다는 건 행복한 일일까? 아니면 안타까운 운명 속에서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나름의 제동장치일까? 아 몰라 감독 이 나쁜 놈아.
그렇게 30일을 함께 한 뒤 - 여담이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열흘을 더해 40일간 머문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맞추기 위해 30일로 줄인 것 같다. - 떠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다르게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우선, 35살 이후의 타카토시와 에미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하루' 처럼 '반복되는 35년'을 끝없이 살고 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기억이 보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그래도 사실은 반복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극 중에서 에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타카토시가 한밤중에 에미를 불러내 몰라줘서,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에미는 '들은 적 없어 이런 건...' 이라고 이야기한다. 미래의 타카토시가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타임루프물에서 사건이 급 진전되는 원인인 '변수'가 생겼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부디 몇 번의 반복 후에는 조금 더 다른 미래가 그들 앞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
마지막 장면 역시 그렇다. 5살의 에미를 35살의 타카토시가 구해주는 장면 이후 '또 만날 수 있어?'라는 5살 에미의 물음에 '또 만날 거야'라고 대답하고 돌아서는 타카토시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20살이 된 에미가 타카토시를 만나는 날 그 지하철 안에서 '그의 곁으로, 끝내 다다랐다'라는 독백과 함께 영화가 끝나는데, 영화 후반부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 문득 떠올랐고, 그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루프를 반복한 이후의 장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야. 끝에서 끝으로 이어가고 있어.'라는 말인데 그들의 이어짐이 몇 번이고 계속 반복되든, 작은 변수들이 모여 루프를 끝낸 뒤 마침내 같은 시간 속을 살아가게 되어 에미가 타카토시를 만나러 가게 되든 여러 가지 의미로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꼭 그렇게 되었기를 바란다.
30일이라는 시간제한이 없는, 거꾸로 가는 시간 역행의 세계에서 사는 것도 아닌 우리들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지금'의 소중함을 되새겨볼 수 있게 해준 영화인 것 같다. 개연성에 대해서는 뭐... 사실 타임루프물이란 게, 파고 파고 파다 보면 설정상의 허점 같은 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 판타지 '로맨스' 아닌가? 하나 하나 그렇게 따지고 드니까 지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 아직도 당신이 애인이 없는 거다. 난 하나도 안 따졌는데 왜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함께 10월 극장가에서 잔잔한 화제를 몰았던 작품이니만큼 여건이 허락한다면 한 번쯤 찾아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 것 같다. 타카토시 역을 맡았던 배우 후쿠시 소우타는 방금 언급했던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영화도 조만간 볼 생각인데, 거기서는 날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타임루프물을 좋아한다. 타임루프물 속 주인공처럼 시간을 이동할 수는 없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볼 때면 늘 떠오르는 사람은 이 장르를 좋아하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사람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늘 떠오르는 사람과 기억 속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타임루프물을 좋아한다.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날 리 없는 그런 신기한 일들이 내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일이 일어나 너를 다시 보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게 단 며칠뿐이라고 해도,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엔
내 마음 설레였고
구름에 실려 온 내일로
그 목소리 향해
거울에 흔들리는 달에 비친
내 마음 함께 떨리고
별들은 흐르는 눈물 속에
고이 다 흘러버렸어
얼마나 좋을까
둘이서 손을 잡고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어
당신이 있는 곳
당신의 품속
거기 안겨 몸을 맡기고
어둠에 감싸여
꿈을 꾸네
바람은 멈추고 목소리는
아득하게 속삭이겠지
구름이 흩어져 내일은
아득한 환상일 뿐
달빛이 스미는 거울 속
내 마음은 흐르고
별들이 떨리다 멈춰 흐를 때
눈물은 감출 수 없어
얼마나 좋을까
둘이서 손을 잡고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어
당신이 있는 곳
당신의 품 속
그대 얼굴 살며시 스치고
내일로 사라지는
꿈을 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