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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Mar 20. 2018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너무 살고 싶고 너와 웃고 싶어

"좋았던 그때가 다시 돌아올 수는 있나요."

  사랑한다는 말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전해진다. 그것은 눈빛이나 행동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직접적인 것은 이 아닐까 한다. '사랑해'라고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전해지는 그 은,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더라도,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영화 속 두 사람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슴 충만해지는 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다.

  일본의 신인 작가 스미노 요루가 2014년 웹사이트에 투고한 원고가 원작으로, 이후 소설로 정식 출간하여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17년 7월에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한국에는 2017년 10월 말에 개봉하였다.


  전형적인 일본 멜로물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필수요소처럼 들어가 있는 각종 우연의 겹침, 다소 요망하지만 미워할수 없는 사랑스러운 여자,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보다 혼자를 선택한 외톨이 남자... 심지어 여자는 죽을병에 걸렸단다. 그동안의 독서 및 드라마&영화 시청 결과를 바탕으로 대충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대충대충인 이유는 겉모습과 그 속의 사실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지만.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10대 남녀의 요망하지만 풋풋한 에피소드들의 나열은 좋았으나, 원작 소설의 내용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내 경우 보통 '원작은 원작이고 영화는 영화' 라는 입장이긴 하지만, 번에는 똑같이 갔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 부분이 있다.


  원작 소설에서 '나'의 이름은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딱 한 번 나오는데, 일본의 소설가 시가 나오야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을 합친 '시가 하루키'가 나의 이름이다.


  사쿠라의 입에서 그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것은 나 역시 사쿠라의 이름을 단 한 번도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병문고에 이름을 적지 말아달라고도 했는데, 이에 대해 사쿠라는 공병문고 속에서 '곧 사라질 자신을 친구나 연인 같은 흔해빠진 위치에 놓는 것이 싫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으며, 영화 내에서도 '친한 사이 소년' 등으로 나를 호칭하고 있다.


  초반에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면 영화 후반부에 공병문고를 읽으면서 관객이 느끼는 슬픔을 배가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시한부 인생의 결말이 그렇듯 끝은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죽음의 원인이 '그 병'이 아니었다는 것과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 사건이 벌어진 시점이 공교롭게도 사쿠라가 공병문고를 통해 나에게, 내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쿠라에게 같은 말로 마음을 전한 때였다는 것.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지만 그렇기에 자에겐 없는 서로의 모습을 동경했고, 그 감정은 점점 사랑으로 변해갔다. 사랑을 자각하기 어려울 수 있는 10대였기에 온전한 사랑의 감정과 함께 우정, 동경, 호기심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둘을 묶어갔고, 사랑이라고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사랑해 라는 말보다 더 솔직하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했다. 사랑해 라는 말보다 더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단순한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소중한 그 마음을 표현하는 순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슬픔과 안타까움은 더 크게 느껴졌다.


  그 슬픔과 안타까움, 놀라움을 추스를 새도 없이 내가 공병문고의 내용을 확인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항상 밝게 웃던 사쿠라는 사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소녀였다. 그렇기에 더욱 다른 사람들과 밝은 모습으로 있어야 했고, '내 인생은 항상 주위의 누군가가 있어 준다는 것이 전제였다'는 것을 말하며 그런 자신에 비해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서 매력을 만들어내는' 나를 동경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내가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타인을 대하며 다가가는 사쿠라의 모습을 동경하게 된 것처럼.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 마음을 전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준 일본발 웰메이드 멜로 영화였다. 책으로 원작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져 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는데, 분위기를 바꿔 다음번에는 이것저것 다 때려 부수는 호쾌한 액션 영화 리뷰라도 작성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췌장을 먹는다는 것, 서로의 영혼을 육신에 깃들게 한다는 것, 너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고 싶다는 흔해빠진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까운 것. 죽음을 앞두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삶의 의미를 찾고 소중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는데 목적 없는 악의에 의해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서로의 마음이 똑같았음을 알게 된 가장 행복한 순간 예상치 못하게, 허무하게 찾아온 자신의 종말 앞에서 사쿠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일랜드시티 - 2012]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끝나버릴 수 있나요
좋았던 그때가 다시 돌아올 수는 있나요
너무 살고 싶고 너와 웃고 싶어
곁에 있을 거라 말해줄 거야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너와


사랑하겠어 나의 마음 다해서
안아주겠어 너를 잃지 않도록
다시 태어난다면 나의 마음 속이지 않고
언제까지나 너만 바라보겠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끝나버릴 수 있나요
좋았던 그때가 다시 돌아올 수는 있나요
너무 살고 싶고 너와 웃고 싶어
곁에 있을 거라 말해줄 거야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너와


사랑하겠어 나의 마음 다해서

안아주겠어 너를 잃지 않도록
다시 태어난다면 나의 마음 속이지 않고
언제까지나 너만 바라보겠어


사랑하겠어 나의 마음 다해서
안아주겠어 너를 잃지 않도록
다시 태어난다면 나의 마음 속이지 않고
언제까지나 너만 바라보겠어

아일랜드 시티 1집 '아일랜드 시티'(201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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