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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Mar 29. 2018

레디 플레이어 원 - 우리 모두는 무언가의 '덕후'다

"감은 눈동자로 볼 수 있는 것,잊지 말고 계속 가지고 있어 줘요."

  드라마나 영화, 하다못해 예능을 보는 도중이라도 눈에, 귓가에 친숙한 뭔가가 지나가거나 들려오는 순간이 있다. 그걸 입 밖에 꺼내어 '어! 나 이 음악 뭔지 알아!', '저 장면 예전에 어디 어디에서 나온 장면의 패러디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본인의 서브컬쳐 지식을 뽐내며 덕밍아웃을 하고 싶지 않기에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생각해내고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다고? 그렇다면 당신도 오타쿠, 이른바 '덕후'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우리 덕후들한테 너네 이거 보면서 마음껏 아는 척 반가워하고 즐기라고 만들어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다.


※ 모든 이미지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예고편 영상을 캡쳐하였습니다.

※ 영화의 일부 대사 및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다가 느낌이 쎄하시면 언제든 휠을 확 내려주세요!

※ 영화 리뷰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그저 하나의 시선으로 봐 주세요:)


1. 뻔함을 뒤덮는 반가움


  배경은 가까운 미래인 2045년. 기술은 발달했으나 그 반작용으로 온 여러 현상 때문에 빈부격차가 상당해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웨이드 오웬 와츠(타이 쉐리던)는 빈부 중 '빈'을 맡고 있고, 부모님 모두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설정이다.


  현실은 이렇게 암담하지만 웨이드는 그 속에서 벗어나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는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 게임 속에서의 삶을 낙으로 하며 살고 있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웨이드뿐만이 아니다. 길거리의 빈민도, 대기업 직원도 똑같이 현실을 살지만 오아시스 속에서의 삶을 함께하고 있으며 오아시스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 사람들의 일상이 되었다. 현재 모바일 게임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든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기업 역시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즐기라고 만든 게임을 작업장 같은 곳을 만들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 작업을 시키는 것도 그렇고 더 쉽고 효율적인 과금 모델에 대해 설명하려는 장면도 -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이 방법들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조금 오싹하다. - 그렇고 지금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런저런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 스토리가 진행될 것이 뻔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뻔함을 부수는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뻔함 뒤에 다가올 반가움이다. 개봉 전 예고편에서, 광고에서 이미 다수의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함을 예고했기 때문일까.


  스토리야 어차피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한 뒤 이기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고, 스토리 속에 숨어서 영화를 이루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과거의 영화, 음악, 게임, 애니메이션들을 놓치지 않고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오아시스의 이스터 에그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예전 영화 속 배경을 그대로 묘사한 장면도 좋았고, Van Halen의 Jump 같은 70~80년대 음악들, 2D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3D 캐릭터가 되어 생생히 움직이는 장면도 좋았지만, 그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게임이었다. 가상 현실 게임이 영화의 배경인 것부터 해서 스타크래프트의 질럿&짐 레이너, 스트리트 파이터의 류&춘리, 오버워치의 트레이서&메르시 등 높은 비율로 등장하는 게임 캐릭터 카메오들, 아타리 게임기, 과거의 수많은 고전게임들까지...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한 번이라도 부모님께 등짝을 맞아본 경험이 있는 적게는 20대 중반, 많게는 40대 이상의 전&현직 게이머들은 꼭 이 영화를 만나보기를 권해 본다.


2. 게임, 그리고 현실


  영화의 배경인 오아시스도 일단은 게임이다 보니, 이에 대한 스필버그의 이야기가 영화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게임은 갑갑한 현실을 잊게 해주고, 현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겪기 힘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반면,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현실의 삶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속에서도 웨이드 이모의 남친 등을 통해  면을 이야기하고 있다.것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쁜 것은 게임인 걸까?


  세계보건기구 WHO에서는 오는 5월경 ICD-11(세계질병분류)에 게임 장애 진단 등재를 예고했다. 하지만 이것이 뚜렷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것인지는 많은 의문이 있다. 일반적으로 중독은 그것을 요구하는 갈망, 한 번 경험하면 다음번에는 이전보다 더 강한 것을 요구하게 되는 내성, 그리고 그것을 얻지 못하게 되었을 때 신체의 변화(손 떨림 등)가 일어나는 금단 증상의 세 가지 개념을 충족해야 한다. WHO의 ICD-11 등록 시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이러한 것에 대한 명확한 증명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질병 등록이 진행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지목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었다. 예전에는 광대들의 춤과 노래를 천하다고 멸시했고, 나의 학창 시절에는 만화책이, 지금은 게임이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는 그것들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사회 문제 때문에 이를 부정적 요소로 판단했고, 나이가 많든 어리든 그것들을 즐기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그것들일까? 그것을 이용하는 개인일까? 아니면 그것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든 우리의 사회나 주변 환경일까?

  예전에는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웠는데, 요즘에는 게임에서 알게 된 사람과 연락을 하고 심지어는 만나기도 하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TV에서는 게임을 취미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연예인, 게임 스트리밍 방송을 하는 연예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게임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수준이다. 게임이 단순히 즐거움만을 얻기 위한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힌트로 언급되는 대다수의 게임은 현재의 우리들이 쉽게 떠올리는 멀티플레이 게임이 아니라 멀티플레이를 지원하지 않는 과거의 게임들이지만, 그 게임 역시 게이머와 개발자 간의 소통의 장이다. 게이머가 게임을 통해 개발자가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게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그 둘은 연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게임 오아시스도 마찬가지다. 웨이드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H(리나 웨이스), 다이토(모리사키 윈), 쇼(필립 자오)와 우정을 나누고 아르테미스(올리비아 쿡)와 가까워지며 사랑을 느끼고 소통한다. 실제 어떤 모습인지 모른다고 해서 그런 감정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 잘못된 걸까? 누구도 그에 대한 잘잘못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이 현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를 통해 현실은 두려움과 공포가 있지만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현실만이 유일한 '진짜'이지. 게임은 질병이나 중독 물질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통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3. 누군가의 대중문화, 누군가의 서브컬쳐


  사실 서브컬쳐라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라고 한다. 대중문화가 특정한 어떤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뮤직 역시 한때는 서브컬쳐였다. 반대로 예전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나 음악이었을지라도 현재 그것을 뒤덮는 주류 문화가 존재한다면 그 역시 '주류에서 떨어진' 서브컬쳐라고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지나간 음악,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가 주류였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도, 그중 일부인 비교적 최근의 것들만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알아보는 것도, 떠올리는 추억거리의 많고 적음도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함께 했던 흘러간 많은 것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E.T, 죠스,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등의 전설적인 오락 영화를 만들어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훌륭한 오락 영화라고 감히 평가한다. 개인적으로는 트레이서와 퍼스트건담이 등장했을 때 정말 반가워서 마음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각박한 세상에 지쳐 잠시 쉬고 싶은 우리에게, 그때의 우리를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스필버그 감독이 주는 선물 같은 영화였다. 제목에서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희 모든 Player 1, 즐길 준비 되었느냐고.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지표 역시 존재한다. 그것은 그 시절 좋아했던 이성일 수도, 연예인이나 음악, 사진, 게임, 심지어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속 할리데이 역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순간을 게임 속에 이스터 에그로 남겨 두었듯이. 어른이 되고 삶에 치여 살면서 점차 그 지표들을 다른 곳에 치워두고 살게 되지만, 다른 곳에 놓고 덮어두되 내치지 말고 꼭 꼭 꼭 간직해 두도록 하자.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언제든 눈을 감고 그것들과 함께했던 우리의 즐거웠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Hysteric Blue - Reset me]

※원곡은 일본어입니다. 의역이 난무하니 현실과 혼동하시면 매우 재미납니다.


언제나 사람은 익숙해지기도 잊어버리기도 해요.
똑같은 기분으로 있을 수도 없거니와
때때로 사람은 솔직해질 수 없어서
진짜 마음조차도 말할 수가 없죠.


그 시절과 다른 풍경과 같은 것만이 반복되는 세상에서
나도 변해 버렸어요.


예를 들어 눈앞을 높은 벽이 가로막더라도
앞만 보고 있기에 괴로운 거예요.
예를 들어 귓가에 이런 저런 얘기가 들려와도
나쁜 말만 신경 쓰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내가 웃으면 모두 웃어주기에
뒤돌아서 여기로 돌아와요.


즐거운 꿈을 꿀 수 없게 되기 전에
멋있는 이곳에 표시해 두고
START 해요. 잊지 않도록.


Reset me 제로로 돌아간다면
다시 다음의 하나를 찾아요.
감은 눈동자로 볼 수 있는 것,
잊지 말고 계속 가지고 있어 줘요.



누구라도 불완전해요.
누구라도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래도 열심히 애쓰고 있어요.


내가 달라지면 모두 달라질 테니
멈추지 않아요. 한 걸음씩 나아가요.


어른이 되더라도 잊지 않도록
멋있는 이곳에 표시해 두고
START 해요. 다시 만날 수 있도록.


Reset me 제로로 되돌려줘요.
녹슬어 버릴 것 같은 마음으로부터
노래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조금만 더 나아가면 돼요.


Reset me 무엇 하나 꾸미지 않고
눈물 흘려 씻어내면
맑아진 눈동자가 비추는 것
모든 것이 빛나는 보물이에요.

Hysteric Blue 'Hystoric Blue'(200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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