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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Jun 24. 2018

바이올렛 에버가든-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어느새 난 그대 손을 놓쳤던 그날이죠.'

언제였더라...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같은 반의 여자아이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자 그 아이는 '좋아한다는 게 뭔데?', '사귀면 뭘 하는 거야?'라고 내게 되물었다. 주변에서 누구랑 누구랑 사귄대! 같은 이야기만 들어왔을 뿐 누구도 그런 걸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런 것에 대한 나름의 개념 정립이 잘 되어있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결국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건 뭘까?

사랑한다는 건 뭘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에 기반해서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정답이라고는 못 할 것 같다.


오늘의 이야기는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 이다.


※초반부를 제외한 내용 누설은 최소화하였습니다.

※모든 이미지는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PV 영상을 캡쳐하였습니다.

마음을 글로 적습니다. 사랑을 알기 위해서.

『자동 수기 인형』


그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

올랑드 박사가 사람의 목소리를 받아적는 기계를 만들었다.

처음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만들었던 기계였지만

언제부턴가 세계에 보급되고 그것을 대출·제공하는 기관도 생겼다.


「고객님이 원하신다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자동 수기 인형 서비스, 바이올렛 에버가든입니다.」


이야기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에

금발 벽안을 가진 여자는

무기질의 아름다움 그대로 영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교토 애니메이션(이하 쿄애니)에서 제작, 2018년 1분기에 방영한 애니메이션이다. 아카츠키 카나가 쓴 동명의 원작 라이트 노벨은 2014년 교토 애니메이션 제5회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해 그동안은 계속 대상 수상작이 나오지 않다가 발표된 첫 대상 수상작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큰 화제는 몰고 오지 못했으며,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쿄애니 특유의 화려하고 사실적인 그림체가 영상 내내 펼쳐졌던 2016년의 홍보 영상 공개 이후였다.


2018년 1월부터 4월까지 방영되었으며, 넷플릭스에서 2018년 6월 1일부터 볼 수 있게 되었다.


https://youtu.be/0CJeDetA45Q

바이올렛 에버가든 CM 영상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살아왔던 그녀는 길베르트 소령에게 거두어져 제비꽃이라는 의미의 '바이올렛'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이후 임무와 관련된 부분에 한정되긴 하지만 조금씩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도 있게 되고, 궁금한 건 물어보기도 하는 등 무감정한 존재였던 초기에 비해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두 팔을 잃게 되고 자신이 지켜야 하는 길베르트 소령마저 생사가 불분명해진다.


마지막 전투가 승리로 끝나고 전장에 나설 일이 없어진 바이올렛은 길베르트의 친구이자 전직 군인이었던 하진스에게 거두어진다. 깨어나자마자 길베르트의 안부를 묻는 바이올렛의 물음에 하진스는 '소령이 날 보냈으니까'라는 말로 바이올렛을 일단 안심시킨다.


소령의 다음 명령을 요구하며 자신이 필요 없어졌다면 폐기해달라는 바이올렛에게 하진스는 길베르트가 바이올렛을 자신에게 맡겼으니 대신 명령하겠다고, 자신의 회사에서 일할 것을 명령한다. 하진스의 회사는 자동 수기 인형 서비스 회사로서 작품 내 세계관에서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기에 퇴역 후 하진스는 이쪽으로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는 설정.


달아나서 자유롭게 살라는 길베르트 소령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고, 편지를 대필해주는 다른 자동 수기 인형의 모습을 본 바이올렛은 길베르트 소령이 함께 남긴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처음으로 스스로 주장을 펼쳐 자동 수기 인형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자동 수기 인형은 쉽게 풀어 말하자면 편지를 대필해 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전화나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세계관 속에서 자동 수기 인형들이 편지를 대필해 줌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전달해 주는 것. 작중에서의 표현과 같이 말이란 건 앞면과 뒷면이 있고, 모든 사람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인 모습이 있으므로 자동 수기 인형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바이올렛의 과거는 자세하게 묘사되진 않았으나 어린 시절부터 군인으로서 오랜 시간 전장에서 살아왔기에 임무를 받고, 그것을 수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는 익숙하나 이렇게 감정의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는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처음에는 계속해서 사고를 쳐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바이올렛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차 타인의 감정,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이다. 우리들에겐 당연한 것이 감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바이올렛에게는 당연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겪는 갈등, 새롭게 알게 된 감정들과 과거의 기억들이 이어지며 과거 길베르트 소령이 자신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바이올렛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전쟁에서 잃은 양 팔은 아다만티움 의수로 대체되었다.

크게 시끄럽거나 정신없지 않고 차분하게 잔잔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호쾌한 액션 신이나 충격적인 결말 등의 자극적인 내용을 원한다면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이올렛의 성장 과정을 차분하게 지켜보며 길베르트 소령이 바이올렛에게 했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소중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바이올렛이 그것을 어떻게 배워가고 받아들이는지, 그 말을 되돌려 전해줄 수 없다는 상실감을 어떻게 이겨낼지, 알게 된 여러 감정들과 과거의 일들이 어떻게 충돌할지를 지켜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총 13화로 그렇게 긴 분량은 아니기에 가능하다면 주말처럼 여유로운 날 한 번에 몰아 보는 것이 바이올렛과 다른 사람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보는 내내 최고 수준의 작화 퀄리티가 유지되고 특히 바이올렛의 모습은 주인공 보정이라도 되었는지 더 아름답게 그려진다.

각자의 소중한 마음

반복해서 나오는 장면들이 몇 가지 있다. 바이올렛과 길베르트 소령이 등장하는 몇 가지 장면들인데, 바이올렛의 회상 신에서 등장한다. 처음엔 단순히 길베르트 소령이 선물해준 브로치를 보거나 하면서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데에 그쳤던 바이올렛은 어느 순간 과거의 그 순간들을 추억하게 되고 그리워하게 된다.

사랑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영화 리뷰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렛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계속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어 그 노래와 함께 이번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이 노래의 제목처럼 나는 단 한 순간도

그 모습을,

그 말을,

그 나날들을,

너를 잊은 적 없다.




https://youtu.be/Rtfh-G1Mzk4


[그네 -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Vocal by 한수연)]


시간은 또 소리 없이 계절을 데려와

어느새 난 그대 손을 놓쳤던 그 날이죠


아름다운 봄날에 핀 한송이 벚꽃처럼

아름답던 그대와 나 이제는 사라지고


혹여 우리 만남들이 꿈은 아니었는지

그대 함께 있던 순간이 너무나 아득해요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바람이 머물던 그곳에서 여전히 서성인다



그날 그곳 그 시간에 그대 그 고운 손을

잡았다면 붙잡았다면 아픔은 없었을까


혹여 그대 돌아오는 길 헤맬지도 몰라서

한걸음도 떼지 못했죠 아직 그대로예요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바람이 머물던 그곳에서 여전히 서성인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바람이 머물던 그곳에서 여전히 서성인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을 지나 겨울을 만나도 내 맘은 변함없다


내 맘은 변함없다 

내 맘은 변함없다



시간은 또 소리 없이 계절을 데려와

어느새 난 그대 손을 놓쳤던 그 날이죠

 

그네 두 번째 앨범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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