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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보면 Nov 07. 2018

보헤미안 랩소디 - 노래는 불빛처럼 달린다

"아름다운 만큼 짧았던 그 날처럼"

  얼마 전, '토토가'를 필두로 한 복고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삶이 점점 팍팍해져 가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뒤를 돌아보고 싶어 했고, 영화든 드라마든 예능이든 각종 미디어에서 그렇게 돌아본 과거들은 언제나 그렇듯 꽤 괜찮게 미화되어 비춰졌다.


  그렇게 아련함을 소비하는 트렌드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었는지, 이번에는 수입산 아련함이 찾아왔다. 영화를 만들랬더니 다리에 힘이 풀리고 지려버리는 근육이완제 & 이뇨제를 만들어온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제작진,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번에 이야기할 이뇨제... 아니 영화는 그 많은 아련한 과거의 보물들 중에서도 '괜찮은' 수준을 넘어 전설이 되어버린, 을 소재로 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다.


※모든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 포토 및 예고편 영상을 캡쳐하였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굳이 언급을 안 해도 될 것 같고, 극 중 브라이언 역할을 맡은 귈림 리와 실제 퀸의 멤버 브라이언 메이가 만난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것, '보헤미안 랩소디'로 아메리칸 아이돌의 오디션을 치러 준우승을 차지한 아담 램버트가 카메오로 출연한 것(동성애자인 아담 램버트가 동성애자 역할로 등장했다!)  알고 가면 소소한 재미가 더해지는 이야기들이 많긴 하지만, 그런 건 다른 곳에 이미 쉽게 읽어볼 수 있으므로 이번에는 영화 자체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볼까 한다.


1.왜 '보헤미안 랩소디'인가?


  퀸의 명은 너무 많아서,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도 제각각이다. 문득 왜 영화 제목을 저 곡으로 정했을까 하는 별 시덥잖은 의문이 들었다. 그냥 '퀸'이라고 하면 밋밋해서? 랩소디라는 말이 멋있어서? 재생 시간이 길어서? 투자자가 좋아하는 곡이어서? 이런저런 말 같지도 않은 의문을 품으며 영화관에 들어선 지 두시간 후, The show must go on이 흘러나오며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영화의 제목은 꼭 보헤미안 랩소디여야만 했다고.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의 삶을 예견하고 가사를 쓰진 않았을 테지만, 실제 & 영화 속 그의 삶은 이 노래 가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그러니 가사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제목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보헤미안 랩소디의 노래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고 들어가기를 권해본다. 영화 중간중간 스쳐 지나가는 상황과 대사들을 가사와 함께 생각해 본다면 좀 더 영화에 몸을 맡기고 깊이 몰입할 수 있을 테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이 다를 테고 느끼는 게 다를 테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의 어떤 부분이 어떤 상황과 맞아떨어지는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고 또한 각자가 느끼게 될, 감정의 특성상 맞고 틀리고 하는 것도 없겠으나 하나만 예를 들면 이런 느낌이다.


  멤버들과 떨어져 폴과 함께 생활하던 프레디가 폴과 갈라서기로 하면서 자조 섞인 표정으로 '언제 내가 썩었다고 생각하는 줄 알아? 날파리가 꼬일 때'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중 후반부의 'Beelzebub has a devil put aside for me' 라는 가사가 머리속에 오버랩되었다. Beelzebub, 그러니까 베엘제붑은 파리의 형상으로 묘사되는 악마의 이름이다.



2. 밴드 '퀸'에 대한 이야기


  대개 밴드가 유명해지면 관심은 리드싱어에게 집중된다. 전문가가 아닌 대중들이 가장 집중해서 듣는 것은 결국 보컬, 리드싱어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자칫 퀸이 아닌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로 남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헤미안 랩소디어쩔 수 없이 전기 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긴 하지만 감독이 밀당을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인물의 개인사는 거의 나오지 않고 프레디 머큐리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그의 내면적 고뇌와 함께 퀸의 다른 멤버들, 메리, 프레디의 가족, 고양이 등 주변 인물들과의 상호작용이 적절한 비율로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 가성비 좋게 주변 인물들의 특징을 알려주었다고 할까. 간단한 예로, 드럼을 맡은 로저 테일러는 프레디 머큐리보다 더 높은 음역대를 소화했는데, 영화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 녹음 장면을 통해 그 특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다혈질이었던 면모도... 대체 갈릴레오가 누구야!!!


  물론 영화 속에서 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것도 있고 편집으로 잘려나간 부분도 있기에 매끄럽지 않거나 썩 공감이 안 가는 상황도 사람에 따라 더러 있었을 것이고, 개연성 여부도 그렇고, 퀸의 팬이라면 '이 이야기도 다뤄줬으면' 하고 아쉬움을 느낄 만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것쯤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왜냐면...



3.라이브 에이드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의 퀸 공연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7천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일요일날 처음 영화를 봤을 때랑 지금이랑 조금 더 차이가 있긴 한데, 영상이 올라온 지 4년이 조금 안 되었다는 점, 단순 뮤직비디오나 음원 등이 아닌데다가 옛날 콘서트 라이브 영상인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수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유튜브 화면 속에서만 보면 퀸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 영상을 커다란 스크린 화면 안에서 풍부한 사운드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것.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아까 개연성이 뭐? 고증이 뭐? 짐 허튼 비중이 뭐? 라이브 에이드 공연장면에서 뭐? 프레디 머큐리가 보헤미안 랩소디 부르기 시작할 때 피아노 위 맥주컵 개수도 다르고 맥주컵 기준으로 좌우 펩시 종이컵 개수가 다르다고? 펩시는 이단이고 콜라는 역시 코카콜라 아니냐고? 그건 동의하는데 그래서 어쩌라구요? 프레디가 죽고 싶지 않다잖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I don't wanna die


  물론 이건 개인적인 리뷰니까 저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사실 달랑 콘서트 영상만 스크린에서 본다고 해서 막 없던 감동이 폭풍처럼 밀려들 거라고 하기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20분간의 공연 장면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쏟고,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다는 간증(?)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것은 영화의 지난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감정선, 나아가서는 퀸의 삶과 감정에 성공적으로 몰입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위에서 다른 멤버들의 비중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다 담았다간 오히려 이야기의 집중도가 흐트러져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했을 것이다.


  1회차 관람 때는 넋 놓고 지켜보느라 주변을 못 살펴봤는데, 2회차 관람 때는 열광하는 영화 속 팬들만큼이나 영화관 관객석의 사람들도 다리로 박자를 타거나, 넋을 놓고 화면을 바라보거나, 조그만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하는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감동과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작품성이 어떻고 배우 연기가 어떻고 그런 걸 설명하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어떤 형태로든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스크린 속 장면들을 보며 울고 웃고 요동치는 감정을 느끼는 것, 이게 영화지.


4.마무리


  퀸의 팬이라면 구석구석에 꽤 꼼꼼하게 준비된 디테일함을 자기가 아는 만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퀸의 팬이 아니더라도 불꽃 같았던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퀸의 음악을 접하고 빠져들게 될 수 있을 만한 '잘 만든' 전기 영화라고 평해본다. 만약 당신이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꼭 기저귀를 차고 갈 것을 진.지.하.게. 권한다.


  영화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지만 실제로는 공연 이후에도 프레디 머큐리는, 퀸은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갔으며 이후 여러 가지 음악적 실험들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퀸의 음악들은 전 세계의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당시 영국에는 두 명의 여왕이 있었다는 말은 아마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빛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빛나며 한밤의 불빛처럼 사방을 밝히며 어둠 속의 우리에게 빛을 뿌린 뒤 이내 손이 닿지 않는 저 너머 아득한 곳으로 달려나간다. 지금은 닿을 수가 없기에 더 아련하고 그리운, 과거의 주옥같은 보물들과 함께한 134분은 적어도 내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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