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 유명 미술 전시를 모두 본 소감
이번 겨울은
큰 규모의 미술 전시가 3건이나 열리면서
참 즐거웠다.
나는 지난 2주간 세 전시 모두를 다녀왔다.
각 전시마다 즐거웠던 포인트를 꼭 짚어보고 싶어서 글을 남긴다.
우선 나는 각 화가들이 활동했던 시기 순인
카라바조(1571-1610) -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 에곤 실레(1890-1918)
와 똑같은 순서로 전시를 관람했다.
아래는 전시 정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고흐의 전시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1, 2 전시실에서 2025년 03월 16일까지.
(10:00~19:00, 매주 월요일 휴관, 성인 기준 24,000원)
빛의 거장이라 불리는 카라바조의 전시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 4 전시실에서 2025년 3월 27일까지.
(10:00~19:00, 매주 월요일 휴관, 22,000원)
자유로운 예술을 꿈꿨던 에곤 실레의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 전시실 1에서 3월 3일까지.
(10:00~18:00, 18,500원)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
아래층 고흐 전의 인기에 비해 관람객의 수가 적었다.
하지만 작품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어느 블로그에서 작품을 비추는 천장의 조명 개수와 방향을 유의해서 관람하면
좋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 그에 따라 보았더니 더 재미있었다.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화가다.)
미술사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예수의 수난이나 예수를 향한 조롱, 성인들의 고난 등이다.
카라바조는
특히 현대 영화나 연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희, 고뇌 같은 극적 표정을 화폭 속에 그려냈는데
그것이 참 흥미로웠다.
<예수를 향한 조롱>의 화폭에서는
그야말로 '현타'가 온 예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었고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에서는
사랑에 데인 청년기 카라바조의 얼굴을,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서는
젊은 날 철없는 행동을 한 스스로를 꾸짖는 늙은 카라바조의 얼굴을 골리앗의 머리에서 발견한다.
카라바조는 평생
칼부림, 매춘, 살인 등을 저지르며
범죄자이자 예술가로서 쫓기듯 산 인물이다.
기도하듯 그림을 그렸다는 그의 그림은
험난한 인생 속 자서전같이 느껴졌다.
두 번째로 본 고흐 회고전.
카라바조 전의 여유 있는 분위기와 달리 전투적인 관람 무드다.
전시된 76점 모두 오리지널이고 총평가액 1조 원에 달한다는 기사를 읽었지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 고흐라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을 거라곤 예상 못했다.
돌이 될까 싶은 아기를 들쳐 맨 신혼부부부터
데이트하러 나온 커플까지.
관람객의 나이대나 관람 목적도 각양각색.
한국인의 미술 사랑이 이렇게 깊은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고흐의 초상화와 자화상에는 영혼이 실려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조셉 미쉘 지누의 초상> 앞에서 나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거만하고 똑똑한 사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연둣빛 배경 안에서 튀어나와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그에게 말을 걸면 곧바로 응답할 것만 같은,
아우라가 남다른 작품이었다.
붓 터치 하나하나에 혼을 실으면 이런 느낌이 날까.
이 작품은 사실 거의 주목받지 못한 <식당 내부>라는 작품인데
고흐가 점묘법에 흥미를 가지며 그렸다는,
한낮의 식당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
햇빛을 받아 빛나는 식당 속 타일, 테이블 위의 화병, 은식기, 조명 그리고
은은히 반짝이는 실크 벽지까지
가히 자태가 압도적이다.
사진으로 보면 이 투명하고 빛나는 느낌이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실제로 봐야만 그 아름다움이 와닿는 작품이었다.
내가 고흐의 자화상을 본 것은 이번으로 2번째인데
이번에도.. 당했다.
고흐의 자화상은 화려한 작품이 가득한 전시실에서
단연 빛나는 작품이었고
100미터 전방에서 보아도 독야청청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그 앞에 멍히 서있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저 청록빛 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가 느꼈던 우울과 외로움, 슬픔이 휘몰아치고
붉은 기운이 감도는 피부결을 살피다 보면
고흐의 사랑스러움, 따뜻함이 느껴진다.
가난한 자의 옆에서 가난한 이로서 붓을 들었고
사람을 사랑했으나 가장 외로웠던,
아름다웠던 그의 영혼이 그림에 모두 녹아있다.
옆에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은,
나의 화가.
참, 관람 기념사진은 밖에 걸린 포스터 앞에서 찍는 게 좋다.
안쪽은 사람도 많고
굳이 안에서 찍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전(에곤 실레 전).
이 전시는 사실 12월 말에 보려고 아껴둔 것인데
당일 예매가 가능하다는 친구의 말에
함께 관람해 버렸다.
친구의 예술인 패스 덕을 조금 보고
즐겁게 관람..!
19세기말 비엔나에서 변화를 꿈꿨던 클림트, 에곤 실레 등이
어떻게 모더니즘적 미술로 진화하는지 보여준 전시.
이때 미술과 산업이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포스터, 유리잔, 가구 등 공예에 관련한 작품이 많아서 신기했다.
출퇴근 길에 이 작품이 버스 광고에서 보일 때마다 미쳐버리는 줄.
저 여인의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얼른 나를 보러 오세요!'라고 외치는 것만 같아서.
마침내 마주한 이 작품에선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한 인간의 고고함이 엿보였다.
단호하고 영민한 여성의 눈동자.
아픔과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진지한 영혼.
이렇듯
사진에서 잡아내지 못하는
초상화만의 빛나는 순간이 있다.
콜로만 모저라는 화가의 <마리골드>라는 작품은
근래에 본 꽃그림 중에 최고였던 것 같다.
붉고 노란 꽃들이 세상 이곳저곳을 바라보며 피었는데
그 자태가 각각이 아름답고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후에 굿즈샵에 가서 동전지갑에 전사되어 판매되길래
사서 어머니께 선물해 드렸더니 참 좋아하셨다.
꽃 그림은 중년 여성을 웃게 하는 매력이 있다.
에곤 실레의 가장 유명한 이 작품은 전시장 복도 중간에 떡하니 있던데
관람에는 좀 당혹스러운 위치에 있어서 물음표가 떴던 기억이 난다.
저 작품은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듯한 한 남성의 다소 비대한 자아를 보여주다 보니
첫 느낌은 다소 우악스럽지만
얼굴 위의 보라와 자주로 얽힌 피부빛 묘사와 걸친 옷의 질감이 상당히 독특해서
'대체 저걸 어떻게 그린거지'라는 생각을 오래 했다.
파격적이고 선정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에곤 실레는
죽기 전 만났던 가장 평범했던 아내에게서 지극한 행복을 느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그가 좀 더 행복했었다면
작품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다.
나는 청각에 대단히 예민한 사람이라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헤드폰으로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으며
위의 세 전시를 관람했다.
그래서 다행히 많은 인파 속에서도
집중하며 작품들과 소통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특히 고흐 전의 흐름은 라흐마니노프의 선율과 아주 잘 어울려서
초반의 음울하고 슬픈 고흐의 세계가
프랑스 파리에서 인상주의로 꽃 피우는 느낌을 제대로 살려주었다.
세 전시 중 가장 좋았던 건
역시 고흐 전.
왜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럴듯한 그림 화풍을 따라 그리며 유명해지길 바랐던 화가가 아니라
본능에 충실했던,
착하고 순수한 영혼의 작품들이라서.
내 삶에, 내 고통과 가난에 대해
134년 전 한 사람이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슬퍼했다는 점이 좋아서.
그래서 제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