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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l 15. 2020

의지력에 대하여

나는 스스로를 의지가 약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뭔가를 꾸준히 하기가 힘들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이 삼일 정도 샐러드를 먹었으나, 업무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피로가 몰리자 바로 삼겹살을 굽고 피자를 시킨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겠다고 헬스를 등록했으나 결국 몇 번 가지 않았다. 운동을 간다고 하더라도 트레트밀에서 30분 걷고 자전거 조금 타고 말 뿐이었으니 별로 운동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으나... (할말하않)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뭔가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순간적인 행동 몇 가지를 한다. 스스로의 결단력있는 행동에 만족감이 든다. 결심에 방해되는 요인 몇 가지가 발생한다. 바로 포기한다. 그리고 더 안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왜 나는 의지가 약할까 자책한다. 역시 나는 안되겠어, 하고 다시 도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까놓고 말해서, 이 세상에 돌처럼 단단한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본인의 결심과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위에서 예로 든 다이어트, 운동, 외국어의 경우를 보아도, 수많은 사람들이 해보겠다고 달려들었다가 실패하는 케이스가 주위에 비일비재하다. 금연한 사람은 독한 성격일테니 친구로 사귀지 말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나, 혼자가 아니었어. 의지가 약한 건 인간의 본성이야.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가 인간이 변하려면 세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던가.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건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다른 말은 모르겠고, 새로운 결심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니, 뼈가 아프다 못해 골절되려고 한다.


작년에 어떤 모바일 서비스를 알게 되어 시험삼아 사용해보았다. 챌린저스라는 동기부여 앱인데, 다른 동기부여 앱들하고 조금 달랐다. 모토가 특이하다. "의지를 돈으로 사세요." 이거다 싶은 느낌이 딱 왔다. 일단 목표를 정하고, 돈을 걸고, 달성하면 돈을 돌려 받는다. 플러스, 실패한 사람의 돈은 성공한 사람들이 1/n로 나눠 가진다. 내가 날 아는데, 나는 돈이 생기는 것보다 잃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다. 실패한 사람의 돈을 받게 될 거라는 것보다, 내가 못하면 돈을 잃게 될 거라는 게 거의 공포로까지 다가왔다. 그래, 해보자.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았다. 하루에 물 3컵 마시기. 마실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인증한다. 

성공. 쉬워서 그런지 대부분이 성공한다. 금액적으로는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똔똔이다. 다만 하루에 물 3컵씩 마셔서 건강해진 듯한 느낌, 그리고 성공했다는 쾌감. 


몇 가지를 더 시험해 보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매일 1킬로 이상 걷기, 매일 영어 한 문장 만들기, 주 3회 글쓰기 등등. 생각보다 꾸준히 잘 하게 된다. 계속 성공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돈으로 의지력을 컨트롤하는 게 예상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그리고 굳이 이 앱을 통해서만 내 의지를 지켜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내 의지를 강화시키는 요인은 추가하고 약화시키는 요인들은 제거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1:1 개인 레슨으로 등록했다. 강사님이 전반적인 내 상태를 확인하고 당일 컨디션을 고려하여 운동 및 자세교정을 진행해주신다. 1회 6만원이고(히익), 당일 취소는 불가능, 노쇼는 금액 차감된다. 한마디로 돈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고 의지를 사는 케이스다. 주 2회씩 꾸준히 한 게 벌써 6개월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비용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 초반에만 1:1로 하고 3~4개월 후에는 그룹으로 가려고 했는데, 앞으로도 그냥 계속 1:1 하려고 한다. 내 경우에는 3개월 30만원 헬스 등록이 1:1 필라테스 5회보다 못하다. 내 의지력은 회당 3만원 미만인 경우 위태로울 수 있을 것 같고, 1회 6만원은 되어야 안전하다.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사전 조사부터 업무 분장, 예산 책성, 외주사 선정 등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많이 하고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내 개인의 일도 다를 게 없는데 그렇게 "빡빡하게" 계획하고 하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즐겁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되는대로 한 것 같다. 실패하면 기분이 안좋아지는 건 바로 나인데, 별 것도 아닌 일에 실패해서 자꾸 의기소침해지는 걸 보는 것도 이젠 좀 지겹다. 회사 일이 아니니까 협업할 필요도 없고 코스트도 내 개인비용이니까 좀 더 자유롭게 여러 요인들을 통제해가며 성공의 케이스를 계속 늘려가고 싶다. 


어떤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관리하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의지력을 통제하게 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성공의 경험 외에도 추가적인 이점이 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내 성격과 취향, 건강상태, 인간관계, 특정 인풋에 대한 나의 반응과 아웃풋, 약점과 강점 등을 잘 알아야 그에 대해 대응할 수 있으니, 계획을 세워서 실행해볼수록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잘 알아가게 된다. 내가 기대했던 나와 실제의 나는 좀 달랐다. 아마 평생 달랐을 건데 잘 몰랐던 것 같고, 앞으로 더 많이 알아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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