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때. 선릉역에서 1차 마시고, 택시 타고 강남역에서 2차까지 마셨다. 내가 다 돈을 냈는데. 다음날 보면 통장 잔고는 내가 알고 있는 금액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내가 돈을 썼는데, 돈이 더 들어와 있었다. 내 인생 이렇게 피는구나. 했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모든 게 잘못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4년 전 나는 보따리장수였다. 판매가 될 법한 제품이라면 서울 도매업체에서 사서 서남아시아에 보내는 사람이었다. 커피는 여러 품목 중 하나였다. 개인기를 발휘해 먹고살고는 있었지만 31살 때부터 그때까지 항상 생각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정체성이 모호했었고, ‘저는 뭐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35살이 넘도록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
현지에 갔다. 조금 일찍 깼다. 누워 있어 봐야 잠들겠나 싶어 밖으로 나갔다. 새벽 5시였는데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유로 귀신인가 싶었다. 이미 잠에서 깨 산을 돌아다니며 커피 열매를 캐어 머리에 잔뜩 진 소녀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를 보자 환하게 웃었다. 커피를 내 생업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한동안 현지 소녀의 얼굴을 티모르테이블 상징으로 썼었다. 주변 사람들은 바꾸라고 했지만 나는 2년간 바꾸지 않았다. 내가 봤던 그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을 보며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주 먼 곳에서 추석 선물을 보내주었다. 동티모르 커피와 코냑을 함께 발효한 커피와 딸기를 침용 marceration 한 커피를 받았다. 남겨두었다가 추석 때 가족들과 함께 먹어봐야겠다.
새로운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내가 좀 더 창의적(?)이면, 더욱더 성실하면 현지 사람들이 약간 더 안심하고 살게 된다. 내 정체성을 찾으려 한 일이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되는 것 같아 자부심도 생긴다. 한번 사는 인생이다. 죽고 나면 이름만 남을 뿐이다. #인생은여름방학처럼 더 잘해야겠다. 한번 쓴 글인데, 다시 쑥스러운 이야기를 첨언하여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