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 문무대왕릉 근처에서 놀아서 그런가. 문득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의 이름은 김법민法敏이다. 법 법 자에 민첩할 민.
그 사람이 궁금해서 삼국유사, 삼국사기도 찾아 읽어보았다. 누구나 잘 알다시피, 그는 아버지 김춘추의 대업을 이어받아 삼국통일을 이룬 사람이다. 죽을 때 왜구를 막는 용이 되겠다며 동해에 묻어달라고 했다. (가 본 분은 알겠지만 경주 시내에서 엄청 먼 거리에 있다.)
지의법사智義法師가 물었다. 대왕은 존귀하신데, 어찌 다시 태어나 용과 같은 짐승이 되려 하십니까? 법민은 ‘나는 세상의 부귀에 집착함이 없는 사람이요. 내가 다시 돌아가 수많은 사람의 안위를 도모할 수 있다면 그만한 보답이 어디 있겠소.’
김춘추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대업을 이루겠다고 한 건, 지금의 합천 지역인 대야성을 백제에게 빼앗기고 성을 지키던 자기 사위와 딸이 죽고 나서부터다. 그때 죽은 김춘추의 딸은 김법민의 누이다. 통일 전쟁 중에는 정신적 지주였던 외삼촌 김유신도 죽었다.
법민의 유언이 있다.
‘나는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평생을 전쟁 속에 살았다.
배반하는 자는 정벌하고 협조하는 무리와는 손을 잡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모두 평안하게 하였다.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에게 공평하게 상을 주었고
칼과 창을 녹여 농기구를 만들며
세금은 가벼이 하여 어진 백성들의 근심을 거두어 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죽고 나면 이름만 남을 뿐
홀연히 죽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한들
어찌 여한을 품겠는가.’
심리 상담가도 없던 시절에 수많은 죽음과 시련을 보며 어떻게 멘털을 잘 잡았을까. 알면 알 수록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강한 의지와 쓰러지지 않는 생각은 참 힘이 세다. 어쩌면 내가 너무 나약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죽고 나면 이름만 남을 뿐이다.‘
‘역사의 순간이 문틈으로 지나갈 때가 있다. 그때 얼른 문을 열고 나아가 그걸 붙잡아야 한다.’ 고 누군가 말했었다. 진흥왕-선덕여왕-김춘추-김법민-신문왕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순간 덕분에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