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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Oct 06. 2020

자아를 찾아 떠나는 소비

그 헛된 소망에 대하여.

   

    내가 입사할 무렵 IT 회사에서는 비전공자를 뽑아 교육시키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랬던 것 같다.)

IT 기술을 통해 (더 많은, 더 편리한 소비를 촉진하여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 쿨럭.. 아니 아니)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비효율을 제거하고 새로운 사업의 포인트를 찾아낸다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술자만으로는 2% 부족했다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IT 전공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도 하나의 택 가능한 방법이었을 테지만, 회사는 비전공자를  뽑아 IT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선택했다. 물론  아쉬운 것은 정말로 IT 관련 일을 시키려면 최소한 컴맹을 뽑지는 말았어야 했다는 점.... 아니다. 내가 면접을 잘 봤던 것일 수도 있다.


의 컴맹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학교 때 학교 컴퓨터 실에서 리포트를 쓰고 파일을 닫고, 비명을 질렀던 일이 있다.  바탕 화면에 나의 소중한 10장짜리 리포트가 사라져서!!!!!  옆자리에 있던 선배가 내 문서 폴더에서 유유히 찾아주었을 때도 나는 '와 오빠 멋지다'라고 했지 ' 아 이것도 모르다니'라고 생각한 적 없는 컴맹이었다. 한마디로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컴맹.

(그 오빠에게 반해  따라다니고 결국 사귀었는데 술 먹고 진상 피우다가 두 달만에 차인 것은 나의 흑역사.)


그런 내가 입사해서 3개월 동안 자바를 배웠다. 4~5명이 한 팀이 되어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만들었던 사이트의 콘셉트는 '인맥관리' 사이트였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명함, 특징, 만난 일자, 함께 했던 것들을 기록하는 기능을 가진. 지금 생각해봐도 아이디어는 좋았다. 물론 사이트의 퀄리티는 형편없었지만 개발의 신기함은 배웠었다. 신기할 뿐 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게 아쉬운 지점이지만 뭐 상관없었다. 나는 3개월의 교육만 버티면  다시는 코딩을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컴맹에게 왜 이걸 또 시키겠어. 사가 바보가 아닌데 하하하하하하...........


부서 배치를 받았다.  

ERP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는 팀이란다.  

인사 담당자와 상담을 했지만 올해는 스텝부서에 TO가 없단다.  퇴사를 고민했다.  해야 하는 일은 하기 싫었지만 돈은 벌고 싶었다. 운동복이 아닌 옷을 사 입기 시작했고 집에 생활비를 보태며 사람 노릇을 하고 있었다.  복학한 동생에게 용돈을 주고  5년 넘게 내 핸드폰 요금을 내주고 옷을 사주던 언니에게 보은 할 수 있었다.  나도 람답게 사는 았다.  돈 버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관두고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사실 그건 대학교 때 찾았어야 했다. 최소한 방향이라도.  지금 와 생각해보면 대학은 특히 학부는  무엇을 배우는 곳이라기 보단 시간을 버는 곳이었다. 시도해봐도 되고 실패해도 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엄한 곳에 에너지와 시간을 보냈다.  대학 와서 만난 아비투스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고 신세한탄을 합리화했다.  러다 택한 공무원 시험은 (당시엔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나를 불쌍히 여기는 도구로 사용했지만) 수순 같은 선택이었다. 자라는 내내 거지 같은 환경 ( 생각해보면 배를 곯을 만큼 가난했던 건 아닌데,  부모님은 지긋지긋하게 싸우고  먹는 것 외에 따로 쓸 돈은 없는 환경이었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허기가 있는 상황 정도)에게  자존감을 지탱해주는 것은 성적밖에 없는 내가 SKY 에  갔다.   다 비슷한 성적으로 들어온 동기들 틈바구니에서  남은 것은 결핍과 열등감 밖에 없었다. 이 지점에서 내가 좀 더 성숙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있는데  사회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을 성취하고 싶은 내 안의 욕망이 있었다.  그때 차라리 욕망에 솔직하고 욕망 덩어리가 되었다면 오히려 좋았을까.  그때의 나는 또 고고한 척 피해자인 척하는데 한참 재미가 들려있었다.  그리하여 고시생의 신분으로 나에게 주어졌던 유예기간을 다 써버렸고,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어리석은 이야기.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맡은 시스템에 맞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새로  배웠는데 다행히 자바보다 쉬웠다. 대학 때 배웠던 재무제표를 시스템으로 만드는 일이라 업무 내용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하다 보니 못할 일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나에게 요구한 것은 성실성과 책임감이었고 나는 그 부분은 잘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두구두구두구 기든스가 말한 " 자아의 성찰적 기획"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박미라 선생님이 하는 "치유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나를 설명할 언어를 찾았다.  그리고 나니  혼자서 낯선 곳에 가고 싶었다.  박미라 선생님은 나에게 독립을 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대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때까지 제주도도 가본 적 없었다. 당연히 비행기 타 본 적도 없었다.  그때까지 인생에 여행이라고 할만한 것은  5번은  될까? 여유라곤 1도 없는 부모 밑에서  "소모"는 사치였다.  부모님에게 근면 상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외의 욕망은 나쁜 것이었고 부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을 하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여행을 가는 것은 내 팔자에 누리기 힘든 호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혹은 상황이 내 일상에 그리고 미래에 그어놓은 바운더리 밖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가 보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 흔한 유럽여행 한 번 가는데  웬 호들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랬다.  휴가를 끌어모으고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샀다. 밀란 쿤데라를 좋아한다는 이유였다. 글루미 선데이 음악에 빠졌던 적이 있다는 이유로 부다페스트에 가기로 했다.  숙소를 예약하고 프라하 시내의 지도를 다 외울 지경이 되었을 때쯤  갑작스럽게 사수가 회사를 관두었다. 그리고 파트장은 나에게 휴가를 취소하라고 했다.  고작 2년 차 사원이 일주일 자리를 비운다고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파트장이 고객사에 특정업무 담당자가 회사를 관두고 바로 후임은 일주일 동안 휴가를 간다고 말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울면서 예약들을 하나씩 취소했다.  지금의 나라면... 웃기는 소리라고 무시하며 비행기에 올라탔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서른이 넘어  혼자 가는 해외여행(라오스)도 해보고 궁금했던 유럽 (뜬금없이 영국)에 다녀왔다. 라오스의  블루라군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은 매력적이었지만,. 내가 여행에서  느끼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낯선 나"는 없었다.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었고,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다 이해가 되는 상황들 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해외여행과 수많은 국내여행을 했지만 스물둘 인도,  스물일곱 프라하에  대한 미련은 꽤 오래 남았었다.  세상에 대해 더 알기 전의 내가 만날 새로움은 서른이 넘어 마주치는 새로움과 달랐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다.  어쩌면 다녀왔어도 역시 똑같았을 수도 있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와 같은 것들을 여행을 떠나야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이십 대의 끝자락에 나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것들을 경험을 하는데 주력했다.

드럼을 배우고, 뮤지컬과 콘서트를 찾아다니고, 국내여행을  수없이 다녔다. 물론 술도 대학 때보다  훨~~ 씬 더 마시고!!


시스템 유지보수하는 일은 한 달 일 년을 주기로 패턴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할만해졌다. 그 일을 하고 받는 대가로 나는 그렇게  자아를 찾기 위한 경험으로 포장한 소비행위에 익숙해졌다. 마음 한구석에 언젠가는 이런 시시한(?) 직장생활이 아닌 진정한 자아를 실현할 그런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 누가 그런 기회 준대?)

철이 꽉 든 척했지만 파랑새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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