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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Nov 06. 2022

달리기- 달리며 만나는 모습

달리며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

몇 년 전부터 달리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꾸준히 달리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그리고 가끔은 그것도 쉴 때도 있다.

나는 다른 이들이 말하는 저질체력이어서 3킬로 정도만 달려도 그날 내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두통약을 먹고 오후 내내 누워 있곤 했다.

 "여보. 나는 두통약 먹으려고 아프려고 운동하는 것 같아." 나는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그러니까 더 달려야지. 당신 체력이 그만큼 약한 거야."

남편의 말을 듣고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일 년을 달렸고 한 해가 지날 때쯤 나는 5킬로 미터까지 달릴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 물론 가끔 두통이 와 누워 있기도 하지만 전보다는 훨씬 건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달리기.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달리기를 하기 전 나는 작은 가방을 메고 그 안에 핸드폰을 넣는다. 그리고 무선 이어폰을 낀다. 달리는 동안 노래를 듣거나 때로는 좋은 강의들을 듣는다.

그리고 달리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어김없이 인사한다. "나마스테~"

알지 못하는 여자가 달리면서 인사를 하니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같이 미소를 띠며 웃어주거나 큰 소리로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받아주는 분들도 있다.

누군가는 내게 달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나는 사람들과 웃으며 안부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아침에 만나는 사람들은 다 특별한 동료애가 느껴졌으니까.


최근에는 달리기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취미가 생겼다. 인도 사람들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는 것은 꼭 나만 아는 보물을 보관하는 느낌이다.

이빨 닦는 아이들. 가게 문을 일찍 연 구멍가게 사장님. 물 길으러 온 여인네들. 일하러 가는 사람들. 다양하다. 하지만 아침에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새벽부터 잠이 깬 어르신들은 날이 밝자마자 길거리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거나 차를 마시곤 한다. 나는 그분들의 모습이 그렇게도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핸드폰을 들고 한다.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 그럼 기분 좋게 웃으시거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을 내 카메라를 보신다.

그러면 나는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며 너무 멋지시다고 이야기 해 드린다. 사실이었다. 그분들의 살아오신 인생이 얼굴에 고스란이 스며들어 있기에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마다 뭉클했다.

오늘 아침은 일요일이었고 전날 소화가 잘 안 되었던 터라 작정하고 아침 일찍 달리기를 했다. 오늘은 사람들과 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말고 달리겠노라 다짐하고 이어폰을 양쪽으로 끼었다. 하지만 달리다가도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어김없이 소리 질렀다. "나마스테~~" 모르는척 하고 달리는 것 보다 적어도 미소라도 보여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이었기에.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웃음을 보였다.

가끔 소박한 인도 사람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움직일 때면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분들의 사진을 찍었다.

하루 종일 마실 물을 길으러 온 아주머니. 공동 수돗물 앞에 앉아 숯으로 작은 양동이를 씻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정겹다 못해 뭉클하다. 원래는 6킬로만 뛸 거라 생각했었는데 중간중간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힘들지 않았기에 나는 내친김에 10킬로를 뛰기로 했다. 5킬로미터 지점은 달림뿌르라는 마을이었는데 그곳 가까이에는 들개들이 많이 있었다. 들개들은 평소에는 얌전히 있다가도 달리는 것은 무조건 따라간다.

오늘도 들개들은 내 옆을 슝~ 하고 지나간 승용차 한 대를 보며 화가난 듯 짖으며 따라갔다. 꼭 그 차를 물어버리고 말겠다는 모습으로.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뛰기를 멈추고 돌 하나를 주었다.(인도에서는 개들이 돌만 들면 겁을 먹고 도망간다.) 그리고 겸손히 걸어갔다. 달리기는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개 검문소(?)를 지나고 한참 후에야 다시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내 손에 있는 돌을 봤다. '어라? 하트 모양이잖아?' 나는 네 잎 클로버를 찾은 행운아처럼 혼자 웃어댔다.

돌아오는 길. 작은 가게에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이 모여 앉아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짜이(차)를 좋아하는데 아침 일찍 또 일하는 중간중간에도 차를 마시곤 했다. 이분들 역시 모닝 짜이를 마시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분들의 모습이 정겨워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할아버지 한 분이 말했다.

"잠깐 앉아서 짜이(차) 한잔 마시고 가."

"아네요. 괜찮아요. 그리고 저 돈 하나도 안 가지고 나왔어요." 그러자 앉아있던 할아버지들은 무슨 돈이 필요하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셨다. 그 사이 주인아주머니는 이미 차 한잔을 따라오셨다. 아주 작은 종이컵. 그 종이컵 안에 들어 있는 짙은 고동색의 고소 달콤한 짜이. 그분들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짜이가 내 몸의 피로를 녹여주는 것만 같았다. 동네분들 사이에 앉아 따뜻한 짜이를 마시고 있는 나. 어느새 나는 영화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아까 하트 모양의 돌 덕분인 건가?' 나는 괜스레 돌을 만지작거렸다.


달리기는 아침을 여는 사람들과 나를 연결시켜준다. 그리고 인도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다.

달리지 않았다면 언제 이 분들을 만나 함께 짜이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누군가 산을 타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침 일찍 달리기를 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한 손에 하트 모양 작은 돌을 만지작 거리면서 그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집을 향해 달린다. 아까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나눈 여학생들이 건너편 가게 앞에서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나도 한 손을 크게 흔들면서 달려간다.

한 번 본 사이지만 우리는 아침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기에 밝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아침이 다른 날 보다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웃으며 인사하며 달린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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