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신뢰를 갖는 사이
큰 아이 성민이가 어렸을 적 한국에 나온 적이 있었다. 어머님 댁은 작은 동네인데 그곳의 작은 미용실에서 아이의 이발을 했다. 남성 헤어 전문이라고 적혀 있었고 간판도 푸른 바다 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 안에는 시골에서는 만나기 힘들 것 같은 세련된 남자 헤어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리고 나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발을 하러 왔다.
성민이 차례가 되었다.
"어떤 머리 스타일을 해 줄까?"
부끄러워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던 헤어디자이너는 자기가 알아서 잘라 주겠다며 아이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며 상고머리 옆쪽으로 영어 Z (제트)를 새겨줬다. 캬~ 머리에 영어가 새겨져 있다니. 아이도 나도 남편도 신기하게 쳐다봤다. 만족 그 자체였다.
성민이가 사춘기에 들어가기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거의 3년 전.
역시 우리는 어머님 댁 근처에 미용실에 갔다. 그곳은 아파트 상가에 있는 지인의 미용실로 한국에 나오면 가끔 내 머리를 맡기는 곳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줌마 아저씨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방문하는 동네 미용실. 그래도 인도보다는 낫겠지 하며 아이들의 이발을 부탁했다. 지인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아이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음. 어떻게 잘라 줄까요? 요즘 한국 고등학생들처럼 잘라주면 되죠?"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잘 부탁드려요."
나는 약간의 불안함은 있었으나 지인의 실력을 믿으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짧게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사춘기. 머리와 얼굴과 옷들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그 예민한 아이에게 짧은 상고머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짧아도 너무 짧았다.
거의 울먹이는 아이와 어쩔 줄 모르던 나. 우리는 그렇게 한국 미용실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오늘 아침이었다.
"엄마. 이발해 주세요. 오늘 교장선생님이 머리 길이 검사한 댔어요."
"아니. 지금 학교 갈 시간이 다 됐는데 지금 잘라줘?"
"네. 빨리요."
그렇게 급하게 가위를 들었다. 12년 전 한국에서 한 미용과 교수님께 받아온 이발기는 이미 고장이 났고 남은 것은 잘 안 드는 가위뿐이었다.
나의 이발 실력은... 12년 전 인도에 오자마자 남편의 머리카락을 두 번 잘라 준 경험이 있다. 그 이후로는 잘라주겠다고 하는데도 그냥 인도 이발소 가겠다고 그랬다. 너무 어린이처럼 잘랐다나...
아들 둘은 어렸을 적부터 거의 내가 이발을 해줬다. 순수했던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도 사춘기가 오고 거울을 자주 들어다 보면서는 나에게 머리카락을 잘 맡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다시 그 기회가 온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급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이발기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빗과 가위로 자르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도 아팠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한테 머리카락을 잘리는 것보다는 울퉁불퉁해도 내가 잘라주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엄마. 오른쪽 좀 더 잘라봐요. 앞 머리는 최대한 덜 자르고요."
큰애가 이야기했다.
"엄마. 앞머리 좀 일자로 잘라봐요. 잘 안 맞잖아요."
둘째가 이야기했다.
나는 "어~ 알았어" 하면서 장인의 정신을 가지고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다. 하지만 초보가 이발기도 없이 가위로 남자아이들의 머리를 자르니 뒤쪽은 층층이 계단이 나있었고 앞쪽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의 엉성한 모습에 웃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잔소리를 하고 나는 아이들의 헤어스타일이 특이해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아이들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뒤통수를 보지 못하니 너무나 다행인가.
큰애 중3 작은애 중1.
나는 가끔 아이들의 그 절대적인 신뢰에 놀란다. 예를 들어 남편은 내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타지 않는데 아이들은 두려움 없이 탄다. 그것도 처음 내가 오토바이를 배우기 시작했던 7년 전부터.
그리고 상황이 급했던 탓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다른 인도 형들보다는 내게 이발을 부탁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는 사이.
나는 누구에게 그런 신뢰를 주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이들을 신뢰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