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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Nov 07. 2022

라면 2

천상의 식당에서 먹는 인도 카레 라면

남편과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22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곳.

그곳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작은 핸드폰에 우리 집 주소를 넣고 남편과 새벽 일찍 여행을 시작했다. 인도에는 내비게이션이 따로 없고 모 인터넷사에서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을 사용해야 한다.

한국의 내비게이션 앱들은 최고의 성능으로 막히는 길까지 자세히 알려 주며 빠른 길을 안내해준다. 그런데 인도에서 사용하는 앱은 잘 안내하다가도 갑자기 이상한 좁디좁은 길로 안내해 버린다. 때로는 부러진 다리로 때로는 길도 없는 강가로 안내한다. 그래서 긴장의 끊을 놓치면 안 된다.

그날도 시골마을의 좁은 골목길로 길을 인도하는 바람에 남편과 나는 식은땀을 뺐다. 간신히 큰 도로를 찾아 달리는 길. 시간은 벌써 아침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새벽 일찍 출발했기에 남편도 나도 배가 고픈 상태였다.

남편이 말했다.

"여보. 근사한 식당 찾아서 아침 사줄게. 기다려 봐."

"근데 지금 시간에 식당이 문을 열었으려나?"

걱정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걱정 말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마을에는 식당이 보이지 않았고 작은 시내 식당들도 문을 다 열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제 7시가 넘었는데 벌써 문을 열 리가 없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주위의 식당을 찾느라 바쁜 남편 그리고 나. 어느새 우리는 마을을 지나 한적한 지방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낮은 돌산들이 있었고 왼쪽 바나나 농장 안에는 바나나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시원한 날씨와 함께 드라이브 하기 딱 좋은 길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말했다.

"우리 저기 가서 라면 끓여먹고 갈까?" 남편이 보고 있는 곳은 바로 돌산이었다.

"아니. 괜찮아. 나 밥 안 먹어도 돼요. 배 안 고파."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걱정이 많은 사람. 겁이 많은 사람.

일단 낯선 곳에서 아침을 먹는다는 것에 긴장을 했고(혹시나 험악한 인도 사람이 나타날까 봐)

돌산이지만 산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그리고 요리할 도구를 다 가지고 저 돌산을 오르는 것은 더 싫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어디서나 밥을 해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었고 인도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돌산 바로 밑에 차를 주차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돗자리와 요리 세트를 들고 산을 올랐다. 산이라고 해 봤자 아주 낮은 돌산이었다. 남편은 신이 나서 올라가고 나는 혹여나 이상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주위를 살피며 돌산을 올랐다. 남편은 큰 돌들 사이에 바람 덜 부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밖에 나오면 남자가 요리해야 하는 거라면서.

돌산에는 나무들은 거의 없고 작은 들풀들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가던 도로가 보이고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은 손으로 잡을 것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어느새 나에게 있던 두려움과 걱정들은 다 사라지고 탁 트인 하늘과 산들만 보였다.

콧등을 스치는 바람, 푸른 숲과 바나나 나무들로 그려진 풍경,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바위들로 둘러 쌓인 돌산. 그리고 인도 카레 라면.

남편은 말했다. "천상의 레스토랑이네."

나는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며 남편에게 물었다.

"얼마 짜리? 100만 원짜리?"

"아니. 가격을 측정할 수도 없는..."


남편과 나는 라면을 다 먹은 후에도 한참 돌산 위에 앉아 있었다.

돌산 위에서 사랑하는 이와 먹는 라면의 맛, 이것이 행복이라면 우리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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