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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Nov 11. 2022

케렌시아

내가 쉴 수 있는 시간, 장소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애정, 애착, 귀소 본능, 안식처’ 등을 뜻하는 말로, 투우(鬪牛) 경기에서는 투우사와의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을 말합니다.


케렌시아. 처음 듣는 단어였다. 

그 단어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의 싸움 중에 내가 쉴 수 있는 영역. 쉴 수 있는 장소. 쉴 수 있는 시간.


바쁜 일정이 다 끝나고 남편도 나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는 주말이었다. 집안 정리를 마치고 나는 컴퓨터와 핸드폰 그리고 책을 들고 집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인 오피스에 들어왔다. 남편도 이미 오피스에 와 있었다. 서로 짧게 인사하고(아주 사무적으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았고 또 내가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 오피스는 우리에게 독서실 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았다. 포근한 인테리어도 없었고 따뜻한 차도 없었지만 노래 하나로 내가 꼭 한국 어느 아담한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틀어 놓기를 좋아한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나는 책을 읽는다.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다 보면 내가 인도에 있는지 한국 어느 카페에 있는지 아니면 그 책 속 주인공 옆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책의 묘미겠지.

그리고 글을 쓴다. 밀린 일기를 쓰기도 하고 써야 할 글을 쓴다. 

음악이 흐르고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의 눈은 빠르게 움직이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빠르게 움직이고 그렇게 이야기를 쓰고 에세이를 쓰고 나의 생각을 쓴다. 

그 순간 나는 인도도 아닌 한국도 아닌 나만의 시간 케렌시아에 있는 것이다. 

'케렌시아' 단어가 참 고급지면서도 우아하다. 

오늘도 점심을 일찍 먹고 오피스로 뛰어왔다. 일을 시작하려면 삼십 분은 넘게 남았는데 나는 조용한 이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케렌시아에 대한 이 글을 쓴다. 나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글과 음악과 책이 있다면 어디든지 괜찮다. 내 에너지는 다시 충전될 것이고 상한 마음은 치유될 것이며 그리움과 외로움은 글 속으로 스며 들것이니. 

케렌시아! 오늘도 그렇게 오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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