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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25. 2023

우연한 곳에서 얻은 여유

가끔은 목적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보. 나 오늘 자이가온(Jaigaon)에 가서 차 수리를 하고 와야 할 것 같아. 브레이크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아.”

남편이 말했다.

“나도 같이 갈까요? 당신이 꼭 같이 가고 싶으면 말해요. “

나는 남편의 말동무나 되어줄까 싶어서 물었다.

“당연하지. 같이 갑시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자이가온 시내로 향했다. 자이가온 시는 부탄과 인도의 국경으로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가끔 장 보러 부탄으로 넘어갈 때 들리던  곳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탄 경계 5킬로미터 까지는 아무런 비자 없이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인도의 복잡한 거리와 경적 소리를 피해 조용하고 평온한 거리를 만끽하러 부탄을 들르곤 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이후로 콘크리트로 만든 멋진 거의 공항과 비슷한 입국심사 때문에 비자를 받아야 해서 감히 장 보러 부탄을 가지는 못하지만.(부탄은 하루에 여행 경비 포함해서 250달러를 무조건 내야 해서 장보러 가기에는 조금 비싼 곳이 되었다.)

그래도 자이가온 도시는 내가 사는 시골보다는 도시였기 때문에 남편 따라가서 나름 도시의 맛을 느끼고 필요한 것들을 쇼핑하고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우리 집 차를 수리해 주는 서비스센터가 자이가온 지역에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구글 내비게이션을 켜고 달렸다.

자이가온 시내야 워낙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은 나와 대화를 나누며 편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시내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유턴을 하라는 것이다.

“엥? 자동차 서비스센터가 다른 곳에 있나?”

남편은 내비게이션을 다시 확인하고 길을 따라갔다. 꼬불꼬불 마을 길을 지나더니 이제는 마른 강을 지나란다.

결국 강바닥을 지나 괴상한 길을 지났더니 자동차 서비스 센터가 나왔다. 시내 중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남편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자동차 센터가 이렇게 시골에 있어요?”

남편의 물음에 직원은 말했다.

“시내에서 이렇게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게 힘들어서요. “

“아니. 그래도 전 자동차 수리 맡기고 시내에서 볼일 좀 보려고 했는데. 참 이거. 암튼 빨리 수리해 주세요.”

아쉬워하는 남편의 말에 직원은 다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가까이 식당 있으니까 점심이라도 먹고 오세요. “

앗! 그러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

남편과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동차 수리센터에서 나와 넓은 도로 옆 길을 걸었다.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이 한적한 도로는 우리가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길이었다.

멀리 이정표를 보고 알았다. “Thimpu” 팀푸. 부탄 수도로 가는 길이었다.

다행히 가까이에 좋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졸 모모” 라는 만둣국을 먹고 “툭바”라는 얼큰한 티베트 국수를 먹었다.

“와. 여기 이런 곳이 있었네.”

“다음에 애들 데리고 와도 좋을 것 같아요.”

조용한 도로 옆으로 가끔 부탄으로 물건을 싣고 가는 트럭들이 보였고 부탄 산 중턱에는 산신령이 나타날 것만 같은 구름이 걸려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야외에 걸려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전히 시간이 남아 도로 옆을 걸었다.

남편은 항상 그렇듯 내 가방을 메고 길을 걸어갔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같이 걸었고 웃었고 부탄 산을 쳐다봤으며 그 산 중턱에 있는 사원을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엉뚱한 곳 그러니까 산 바로 옆에 위치한 자동차 서비스 센터 덕분에 시내 쇼핑은 못했지만 오랜만에 우리는 여유로운 데이트를 했다.

나는 항상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은 삶을 살기를 좋아한다. 악기를 배우고 글을 쓰고 요리를 하면서 강의를 듣고 달리기를 하면서 동기부여 영상을 듣고. 짧은 시간에서도 무엇인가 목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은 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도 내게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도와 부탄 사이 어느 도로길을 남편과 말없이 걷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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