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기도, 그저 아이로 머무르고도 싶은 30대 이야기
몇 주 전 주말,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있는데 옷장 안에는 깔끔한 옷이라곤 없는 것 같아 한국 다녀와서 쉬기 위해 하루 더 받아놓은 휴가를 쇼핑에 할애하기로 했다. 나이가 서른 하고도 몇 해인데 정장 같은 옷이 하나는 있어야지, 아직 시차에 여독에 영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직장생활도 어느덧 2년 차에 가까워 오지만 사무실 분위기나 하는 일 자체가 딱히 정장 차림을 필요로 하지 않다 보니 평소의 나는 늘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청바지에 티셔츠면 그나마 양반이지,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계속하다 보니 화상 미팅에 잡히지 않는 하의는 늘 잠옷 바지 그대로였다. 해외에 살아서인지 아니면 극도로 제한된 인간관계 탓인지 이 나이 먹도록 참석한 결혼식이라곤 한 손안에 다 꼽을 수 있다 보니 결혼식에 입고 갈만한 옷이 없다. 나이보다 정신연령이 어린 나는 아직도 면티나 후드티가 더 좋고 정장 비슷한 옷을 입은 거울 속의 나는 어쩐지 엄마옷을 훔쳐 입고 어른인 채 하는 미성숙한 인간 같아 보인다. 옷가게를 몇 바퀴를 돌고 돌아 겨우 골라 입어본 정장 상하의는 나에겐 너무나 안 어울린다. 스스로를 설득하고 타협에 타협을 거듭해 깔끔한 재킷 하나를 사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정장 비슷한 검은 바지 위에 입으면 나름 깔끔하겠지, 내가 가족도 아닌데 정장으로 쫙 빼입을 필요는 없을 거니 재킷 안에는 면티를 입자.
겨우 재킷 하나 사고 나서 생각해보니 깔끔한 구두도 없는 것 같고 제대로 된 가방도 없는 것 같다. 평발에다가 몇 년 전 발목을 삐끗한 이후로는 늘 운동화만 신었고, 딱히 명품이나 가죽 가방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내가 매는 가방은 죄다 에코백뿐이다. 나는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반쪽뿐인 어른인가 보다.
이번 여름 한국을 다녀온 가장 큰 목적은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직장도 자리를 잡았고, 조만간 집도 사고 제대로 된 한 사람의 몫을 하기 위해 한국의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를 하러 간 것이었다. 본인 명의의 한국 번호가 없으면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없다시피 하기에 해외에서도 계속 사용하도록 번호도 하나 만들고, 나는 존재도 잘 몰랐던 부모님이 관리해 왔던 내 명의의 은행 계좌도 내가 해외에서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준비하는 게 이번 한국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한 후의 부모님은 내심 후련한 기색이다. 결혼을 하든 말든 너 마음대로 하고 집을 사든 말든 그것도 네 마음이다, 그저 잘 살기만 해라, 마치 남 이야기를 하듯 홀가분해하는 부모님이 어색하기도 두렵기도 하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애 같다. 머리 아픈 일들은 여전히 외면하고 싶고,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다 가끔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면 내심 뿌듯하고 내가 어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게 어른이 가질 생각은 아닌데, 싶다. 어릴 때 보았던 서른 넘은 사람들은 모두 성숙한 어른으로 보였는데, 내가 아직 애 같은 이유는 사회가 변한 걸까 아님 그저 내가 부족한 탓일까. 어른이 되고 싶기도, 아이로 머물고도 싶은 나는, 언제까지 계속 성장통을 겪어야 하는 걸까? 아마 정답은 없으리라 본다. 서른을 넘어 마흔이 되고, 머리가 희끗해져 염색이 일상이 되어도, 여전히 나는 아이 같을 것 같고 성장은 여전히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이런 게 나 하나만은 아니겠지. 내 눈에 어른 같았던 이들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그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렇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묘하게 안도감을 준다. 그 안도감으로 못난 어른은 오늘도 성장통을 눌러본다.
2021,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