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콜H Sep 12. 2023

풋살, 이토록 땀내 나는 시스터후드

여자 풋살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필연적이다. 


살면서 이런저런 운동은 많이 시도해 봤다. 태권도, 스쿼시, 복싱, 러닝, 필라테스, 주짓수, 요가, 웨이트 트레이닝. 어릴 적 오래 했던 태권도와 스쿼시를 제외하고는 3개월을 넘긴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작년 퇴사 후 시작한 요가가 10개월째, 4개월 전쯤 러닝을 시작했고 PT도 2개월 차다. 


나열해놓고 보니 모두 혼자 하는 운동이다. 상대 선수(?)가 있는 종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해나가야 하는 것들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사람을 모아서 시간을 맞추고 팀 스포츠를 하는 게 쉽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다 최근 동생을 따라 여자 풋살 매치에 게스트로 참여했는데, 순식간에 빠져버렸다. 12년 간 혹독한 직장생활과 술, 담배에 찌들어 바닥난 체력임에도 미친 듯이 뛰었다. 힘들긴 해도 괴롭지 않았다. 즐겁기만 했다. 



목에서 피맛이 나고 다리가 내 마음대로 안 움직여도 신이 난다. 쓰러져 쉬고 싶다가도 공이 내 근처로 굴러오면 미친 듯이 뛴다. 우리 팀이 골을 넣으면 환호성을 지르며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우리 팀이 골을 먹으면 괜찮다고 어깨를 툭툭 치며 파이팅을 외친다. 모두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엄청난 유대감이 생긴다. 



아무도 헛발질을 한다고, 중요한 공을 놓친다고, 골을 먹었다고 욕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상대 팀이 골을 넣어도 환호성을 지른다. 처음 축구를 해본 초심자가 공을 잡기라도 하면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한다. 잘했다고, 멋있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이런 땀내 나는 시스터후드는 처음이다.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웠다. 




초등학생 시절 공놀이와 뛰놀기를 좋아하던 나는 함께 할 친구가 없어 늘 남자아이들과 놀았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축구를 하고, 야구가 유행하면 캐치볼을 하고, 슬램덩크가 유행할 땐 농구를 했다. 하지만 5학년, 6학년쯤 되자 갑자기 모든 게 달라졌다. 남자애들은 힘이 세지고 달리기가 빨라졌다. 내가 팀에 끼면 민폐 플레이어가 됐다. 공을 놓치면 나도 욕을 먹고 나를 끼워준 애들도 같이 욕을 먹었다.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니까. 



그렇게 나는 운동장에서 점점 쫓겨났고, 다른 여자 아이들은 땀 흘리며 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공도 무서워했다. 대신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했다. 애들이 몇 년 동안 공기놀이와 고무줄에 내공을 쌓는 동안 축구, 야구, 농구를 했던 나는 그들의 리그에서도 뛸 수 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나는 다시 공을 차고 던지며 운동장을 누비기를 포기했다. 남녀공학 학교에서 운동장은 남자아이들의 것이 된다. 뺏은 것이 아니다. 여자 아이들이 내어준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그늘진 스탠드에서 체육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니까. 땀을 흘리면 화장이 번지니까. 냄새가 나니까. 공이 무서우니까. 



그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잠들어있던 모든 세포가 깨어나는 걸 느꼈다. 


함께 하나의 골을 향해 달리는 기분, 골을 넣었을 때 함께 나누는 희열,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는 위로와 격려,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응원하는 쾌감, 팬티까지 다 젖어버릴 만큼 힘들게 달린 후 나눠 마시는 1.5리터짜리 음료수의 시원함. 


아주 오랫동안 그 행복을 잊고 살았다. 


아, 팀 스포츠는 이렇게 멋진 것이었지. 이렇게나 짜릿한 경험이었지. 



그 이후 만나는 여자 사람마다 축구를 해보라고 말한다.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이 말도 안 되는 즐거움을, 미친 듯이 도파민이 솟구치는 경험을 말이다. 해봤는데 싫으면, 안 맞으면 안 하면 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살면서 이 경험을 한다. 해보고 싫으면 안 하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란 여자들 대부분은 그런 경험을 할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 해보지 않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운동장을 내어주고 나면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축구가 아니어도 괜찮다. 땀 흘리고, 넘어지고, 몸을 부대끼는 어떤 팀 스포츠라도 좋다. 못 해도 괜찮다. 팀의 구멍이 돼도 된다. 그런 초심자들을 받아줄 동호회는 넘친다. 우리가 축구로, 농구로 먹고살 것이 아니지 않은가. 


모든 운동은 좋다. 요가도 러닝도 웨이트 트레이닝도 다 매력이 있다. 클라이밍, 사이클링, 발레, 폴댄스, 필라테스, 그리고 서핑 같은 레저 스포츠까지. 아마 내가 시도해보지 않은 다른 운동들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을 거다. 체력이 좋아지고 몸매가 좋아지고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꼭 팀 스포츠를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써본 적 없는 세포들이 깨어나고 이전에는 연결된 적 없던 뉴런들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정말 짜릿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새로운 활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도 예정된 매치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시작하는 나처럼!





#여자축구 #여자풋살 #풋살 #팀스포츠 #운동 #취미 #취미추천 #시스터후드 #결속력 





작가의 이전글 굳이? 서른에? 네, 괜찮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