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아영 May 17. 2020

아기고양이, 김도란씨

아기 고양이의 눈빛에서 지구를 만나는 것에 대해

은평구의 작은 골목, 녹번동과 불광동의 경계가 맞닿은 곳에 카페를 시작한 지 일 년 하고도 한 달이 되었다. 동료들과 함께 꾸리는 이곳은 '모두가 환영받는 공간'을 표방한다. 그리고 그 실천 중 하나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두 군데 마련하여 밥과 물을 챙겨 왔다. 해가 지고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적게는 열 마리, 많게는 열다섯 마리가 밥을 먹고 목을 축이러 다녀간다. 그 때문이었을까, 엄마 고양이가 우리 카페 곁에 아기를 낳기로 한 것은.


2주 전쯤, 카페 외벽 틈새에서 울고 있는 아기 고양이가 발견되었다. 고양이를 발견한 동료가 외벽 틈새를 한참 내려다보고 있는데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더란다. 엄마 고양이였다. 동료는 엄마 고양이에게 눈빛으로 꾸지람을 들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날, 나도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전날부터 계속해서 울어 댔다고 했다.


배가 고파 우는 것 같아 근처 동물병원에서 초유를 사다가 외벽 틈새로 접시를 줄에 달아 내렸다. 쏟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늘어뜨린 줄이 바닥에 도착했고 "됐다"를 외치기 무섭게 아기 고양이가 접시를 엎었다. 그리고 다시 울어 댔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그 외벽의 끝에서 고양이를 불러 보기로 했다. 쪼그리고 앉아 불렀다. "야옹, 야옹." 두 번 만에 아기 고양이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그렇게 고양이가 왔다.


꺼내어 마주하니 생각보다 더 작았다. 초유를 먹이고 보니 앞니가 뾰족뾰족했다. 엄마가 젖을 주기 힘들어지는 시기의 아기 고양이였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관절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엄마 고양이가 주변에 있으면 이 상황을 공유하고자 했지만, 그날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눈빛은 초롱초롱했지만 몸을 가눌 힘은 없는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선천적 구루병인지, 영양부족인지는 먹이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생명과 인연을 맺었다. 금金요일날 카페 트랜스(도란스)에서 만난 고양이 김도란 씨 이야기이다.


처음 만났던 순간의 김도란씨

길고양이들은 사람 눈치를 많이 본다. 밥을 먹을 때도 한껏 몸을 웅크리고 서둘러 먹는다. 사람만 사는 세상이 분명 아닌데, 사람만 사는 세상처럼 되었다. 사람만 사는 세상이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 아닌 다른 존재들의 삶을 이야기하기가 문득문득 어려워진다. 더 나은 삶을 누릴 권리를 따질 때 종의 차별은 없어야 한다. 사람과 동물이 같으냐고 묻는 목소리들이 있다. 물론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존중받아야 한다.


사람을 위해서, 사람을 통해서, 사람에 의해서 유지되는 세상의 한계는 코로나19로 여실히 드러났다. 사람들은 비인간 동물들이 겪는 질병에 대해서는 살처분으로 대응했고 그 과정에서 생물들, 생생히 살아 있는 존재들은 무생물인 것처럼 다루어졌다. 그 과정에 참여한 공무원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몇 년이 지나도 쓸 수 없는 죽어 버린 땅의 무더기가 이곳저곳에 쌓였다. 살처분으로 죽으나 도살장에서 죽으나 인간 중심 사회에서 비인간 동물의 삶은 삶이 아니다. 그리고 비인간 동물의 삶이 삶이 아닌 곳에서 인간 동물의 삶도 삶이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3주년을 맞아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는 획기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인간 안보'를 중심에 두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큰 이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선언은 단순해 보이는 인간 플러스 안보를 넘어서는 야심 찬 선언이다. 인간 안보의 핵심은 위협과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와 빈곤이나 기아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이다. 모든 물리적 폭력의 중단,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먹거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이 현 대통령 임기 3주년에 나왔다. 반갑지만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다. 실현 가능성보다는 지향과 의지의 표명으로 들으려 하지만 내심 기대하게 되는 마음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인간 안보만으로는 이미 충분하지 않다. 인간 안보는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인간 개발 보고서의 요점이었으며 그로부터 벌써 26년이 흘렀다. 인간들은 그사이 세계를 더 나빠지기 어려울 만큼 망쳐 놓았고, 좋은 구호들이나 계획들이 나타났다가 잊히고 또다시 새로운 협약과 선언이 나타났다가 잊히기를 반복했다. 인간 안보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지만, 지금, 이곳에 필요한 안보는 생명이 중심에 놓이는 안보다. 길고양이가 안전하지 않으면 사람도 안전하지 않고, 멧돼지·비둘기·들개에게 먹을 것이 부족한 사회에서 사람들 역시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대량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것도 모자라 대량으로 식물을 사육했고, 유전자 변형 식물들은 소리 소문 없이 우리 식탁에 오른다.




코로나19가 잦아드나 싶다가 다시 확산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것은 감염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감염된 이의 종교가 무엇이든, 성적 지향이 무엇이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누구라도 감염될 수 있다. 내가 감염자일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의 원인을 모르며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나는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 이야기에 동의한다. 삶의 틀거지 전체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코로나19, 19-a·b·c 또는 20, 21과 여전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인간 안보가 국정의 중심에 놓이는 2020년 5월, 공군기지를 겸할 것으로 보이는 제2제주공항은 민간 공항을 표방하며 계속해서 추진되고 있으며, 비자림로 확장 공사 역시 재개되려는 모양새다. 숲이 베이면 그 자리에 살던 생명들이 집을 잃는다. 그들이 집을 잃으면 머지않아 사람들도 집을 잃게 될 것이다.


비자림로가 베어지던 그때, 숲속으로 들어간 한 사람을 안다. 그 사람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산다. 내가 마음 깊이 존경하는 그이가 숲에 들어가며 말했다. "나는 한 그루 나무예요." 그이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에요." 나무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우리, 그 공동체의 감각이 이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것이다. 그 감각이 행정과 만날 때, 정치와 만날 때, 이 세계가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해내야 할 과제는 '만남'이 아닐까.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후, 불면 곧 흩어질 민들레 홀씨처럼 보송보송한 털에서, 우주의 행성을 닮은 아기 고양이의 눈빛에서 나는 지구를 만난다.


다리에 힘이 들어간 김도란씨 (만난지 7일째)




+

이 글은 뉴스앤조이와 함께하고 있는 연재 "모두를 위한 평화"에 기고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