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고 확신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개인적인 모임이 있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 누가 누가 더 쉬지 않고 말하나 대회를 하는 듯 끊이지 않는 대화의 장이었다.
내 앞에 한 남성분이 말한다.
"우리 동네에 보습학원이 하나 있는데 거기가 엄하게 가르치기로 유명한 곳이야. 막말도 하면서 애들을 빡세게 굴린대.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몰라.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된다니까. 우리 때는 얼마나 맞고 혼났냐... 지금 애들 너무 곱게만 자라서 큰 일이야! 그래서 내가 일부러 그 학원 보낸다니까! 욕도 먹고, 힘든 것도 겪어내 봐야 사회 나가서도 잘 버티지. 요즘 젊은 애들 똑똑한 건 알겠는데 아주 유리멘탈이잖아. 좀만 맘에 안 들면 냅다 그만두고!"
왜 이리 불편했던 걸까?
매일 혼나고, 학교에서도 많이 맞았지만 여전히 유리멘탈인 나의 모습 때문인 걸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던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입을 열었다.
"난 진짜 아닌 거 같은데!!! 그런다고 멘탈이 강해지나?! 아이들한테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 같아!"
나의 차가운 말투 때문이었는지 상대는 말을 멈추고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뱉어놓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고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곳은 토론의 장도 아니었고,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곳도 아닌 편안한 만남의 자리였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풀어내던 자리에서 듣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는 세상 차가운 무표정과 낮은 저음으로 '넌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어'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아차 싶었지만 그때부터 내 마음엔 먹구름이 드리웠고, 그가 이야기할 때면 '반박할 거리를 찾아봐! 쟤는 틀린 애니까'라며 어떻게든 그를 구석으로 밀어낼 방법을 찾았다.
쓰고 나니 나는 '오늘의 나쁜 년'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을 붙잡고 나쁜 년의 만행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온전히 나쁜 년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내 말이 옳다고 말할 남편을 기대하며 나쁜 년의 변호를 시작한다.
"오늘 있잖아~~~ (중략) 여보! 솔직히 생각해 봐. 요즘 젊은 애들이 멘탈이 약해서 일을 그만둔다고 생각해? 난 아니라고 봐. 그냥 그 사람한테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더 중요한 거야. 근데 회사에서는 그 가치가 구현이 안 되니까 그만두는 거고. 결국 자신의 가치를 구겨 넣고 살만큼 그 회사가 자기한테 가치가 없는 곳이니까 그만두는 거라고 봐. 여본 어때?? 꼭 치열함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꼭 힘든 일을 못 겪어봐서 그만두는 거라고 생각해?"
남편은 씩씩거리며 열변을 토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 말도 맞고, 그 사람 말도 맞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뭐... 너도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네 생각이 강하긴 한가 보다~ 너 근데 그렇게 네 생각만 옳다고 믿고 다른 사람한테 그런 거면 완전 꼰대된 거야."
'꼰대?? 내 귀에 들린 거 지금 꼰대?? 내가 꼰대라는 단어를 듣다니...'
꼰대로 불리고 싶지 않던 나는 곧장 2차 방어를 시작한다.
"여보~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다양해~ 서로 다른 의견을 공유하면서 관점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거야! 만약 내가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꾹 다물고 있으면 그 사람도 자기만의 생각에 잠식되는 거지."
혼자 나불나불 거리며 스스로를 변호하던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항복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어. 그리고 그걸 말할 수도 있어. 근데... 인정할게... 난 정중하지 않았어. 맞아. 인정해. 예쁘게 말하지 못한 건 내가 잘못한 거야..."
그랬다. 오늘은 내 안의 꼰대와 마주한 그렇고 그런 날이었다.
그럼에도 나란 인간은 나를 보호해주고 싶었는지 한마디를 덧붙인다.
"오빠 나처럼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꼰대는 안될 거 같지 않아?? 발전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