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정확하게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알고 있다.
아플 것 같다가도 일정이 있으면 어떻게든 버텨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모든 일을 마치고, 다음 날이 쉬는 날이라는 것을 알면 결국 병이 난다.
꽤 오랜 기간 아프지 않아 방심했던 탓이었을까. 어김없이 쉬는 날을 앞에 두고 늦은 밤 병원으로 달려갔다.
'난 강한 사람이다. 난 이겨낼 수 있다'는 다짐으로 10분 거리의 병원을 걸어가겠다고 결정했다.
오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바닥에 드러눕고만 싶었다.
과거 열이 40도 올라 병원 바닥에 드러누웠을 때도 오직 이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자주 느껴봤던 이 고통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삶의 의지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다....'
찰나였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채워버린 나약한 생각이었다.
그 순간 2년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떠올랐다.
항암치료를 하고 오면 이틀은 힘겨워하시다가 열 흘은 견딜만하시다고 했던 아버지. 그렇게 꽤나 오랜 기간 항암치료를 받으시던 아버지는 중단을 선언했다.
'매일매일 아픈 것도 아니고, 이틀 힘든 건데... 이틀 힘들면 열흘 괜찮다며... 그 열흘이 있는데 왜 이틀을 못 견디겠다고 하는 건지...'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그렇게 치료 안 받다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냐고 따지듯이 묻는 내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땠을까.
우리를 만날 때면 진통제를 더 많이 드셨다는 아버지.
늘 아프지 않다고, 괜찮다고 했던 아버지.
항암치료를 받고 식사자리에 나와 우리가 먹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아버지.
더 많은 기억을 쌓고 싶어 진통제를 먹으며 가족들을 따라다녔던 아버지.
후회했다.
감히 겪어보지 않은 고통에 있는 그를 판단했음을.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선택에 나약하다고 평가했음을.
수십 번이 넘게 아파 본 작은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지가 사라졌던 나였다. 근데 아버지는 어땠을까.
반복적으로 찾아올 아는 고통에서 아버지는 무뎌지기는커녕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또 후회했다.
'힘든 시간 굳세게 버텨주셔서, 이겨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하지 못한 나를...
하루하루 새로운 시간을 겪을 때마다
과거의 후회는 늘어만 간다.
100세를 넘게 사신 김형석 교수님이 60세는 넘어야 인생의 후회가 적어진다고 하던데...
아직도 한참 남았다.
그래도 같은 후회는 반복하고 싶지 않기에 오늘의 마음을 글로 적는다.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못 참겠으면 제발 입이라도 닫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