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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Jan 01. 2024

개발자가 아닌 개발팀장으로서 1년을 마감하며

각종 이슈로 우당탕탕 흘러왔던 2023년

2022년 겨울에 개발팀장이 되며 대표님이 나에게 부탁하신 건 두 가지 정도였다. 팀원들을 잘 챙기는 것과 프로젝트 완수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썰물처럼 개발자 여럿이 그만두며 그 공백을 남은 인원이 채워야 했고 각종 시스템 이슈와 새로운 프로젝트들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콘텐츠 팀의 팀장으로 약 3년 그다음에 개발팀장으로 1년. 실무도 병행해야 하는 고달픈 스타트업의 팀장이지만 무엇보다 배운 것이 많았다.


내가 개발팀을 맡았을 때 팀워크는 고사하고, 4명 중 두 명은 멘털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다. 한 명은 우울증이 심했고, 시니어 개발자 한 명은 지금까지 수많은 개발자들이 만든 레거시들을 혼자서 어떻게든 굴려오며 스스로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진 상태였다. 나머지 두 명은 1년 정도 일한 주니어 개발자들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4월에 앱 서비스와 어드민 시스템을 새로 리뉴얼하는 프로젝트를 3개월 만에 끝내야 하는 과업이 주어졌고 나에게는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서도 개발자들과 새롭게 팀워크를 맞추는 미션이 생겼다.


내가 첫 번째로 체계를 잡은 것 중 하나는 출근 후 아침 시간과 퇴근 10분 전 마감회의를 매일 진행한 것이었다. 서로 팀워크를 맞춰보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팀장으로서 내가 오늘 할 일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얘기했다. 요새 내가 일이 없으면 일이 없다고 얘기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솔직하게 먼저 물어보았다. 그리고 스케줄 관리 측면에서 좋은 방법이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오늘 할 일의 상태를 공유하다 보니 다른 사람 눈치도 자연스레 보게 되니까.


개발자가 아닌 개발팀장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 뿐이었다. 일정 관리, 건강과 심리 상태 체크, 근태 관리, 타 부서 요청을 걸러주는 것 등.. 오전 오후에 회의를 할 때마다 모르는 개발 용어나 이야기가 나오면 주눅도 들었다. 팀장인데 그들의 업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모르는 건 다시 한번 물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는 sql공부를 혼자 하기도 했는데 이런 모습을 개발자들이 좋게 봐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앱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되었고 오늘 부대찌개 콜? 할 정도의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팀워크가 갖춰졌다.


그리고 12월 31일.

새해를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시청하는데 카톡 소리가 들려 휴대폰을 켰다. 팀원 중 가장 막내팀원에게 온 카톡이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의 빈자리를 메꾸는데 필요한 대체제?라는 생각을 했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들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들과 나에게 돌아오는 성과가 내 맘에 썩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들을 남자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래도 회사에서 너만 할 수 있는 일을 너에게 요청했을 거야. 넌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고 많은 위안을 받았었다. 그래, 이런 순간들이 나에게 언젠가 도움이 될 거야 하고 마음을 다잡아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막내팀원에게 이런 연락을 받으니 아, 개발팀장은 모르겠지만 팀장이라는 직책으로 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구나 하는 기분 좋으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이 들었다.


2024년에는 개발팀에 새로운 채용이 예정되어 있다. 개발팀장에만 날 가두지 말고 일단 팀장으로서 내가 할 일에 집중해야겠다. 당장 내일은 채용공고를 올리고 새로운 프로젝트 일정에 대해 가안을 잡는 일을 해야 한다. 내일도 일할 세상 모든 팀장님들, 팀원분들을 응원합니다.


지금은 남의 회사를 돕지만 나중엔 나의 일을 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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