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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커리어

끝에서 시작으로

by 희경

”희경님, 편하실 때 연락 주세요! “

너와 함께 한 지 5개월 즈음 회사 이사님께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너와 산책 중에 통화하려고 전화를 드렸지. 다름 아닌 육아 휴직이 끝난 후 나의 계획을 묻는 전화였어. 막연하게 생각했던 문제였지만 이사님과 대화를 하고 집에 와 고민해 보니 나의 생각은 또렷해졌단다. 원래 엄마가 결정은 빠르긴 해.


육아휴직에 들어설 때 내가 다니던 회사는 사무실을 이전했는데, 대중교통으론 가기가 힘든 곳이고 출퇴근 시간에는 길이 더 막히는 곳이라 현실적으로 어린이 집에 너를 맡기고 출퇴근을 하기엔 어려운 조건이야. 아빠는 지방으로 출장이 잦고 엄마는 장롱면허라 운전도 미숙하고, 그렇다고 돌이 막 지난 너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는 않고. 어쨌든 맞벌이 부부의 현실은 항상 어려운 상황이란다.


나의 커리어와 너의 돌봄을 저울질했다고 하면 너무 서운하게 느껴질 것 같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할게. 10년 가까이 나의 커리어를 쌓아 왔는데 단박에 놓치기엔 나도 아쉬웠지. 그래도 고민한 시간은 반나절도 안될 만큼 짧았다. 생각이 거듭될수록 나의 미래보단 너의 미래에 정성을 쏟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는 데 결론을 내렸어. 아마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지 않을까 해.


그렇다고 해도 아빠만 독박으로 돈을 벌게 하기엔 가혹하지 않니?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전문성을 갖춘 업무 스킬이 있는데 썩히기엔 아깝다 생각이 들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시도해보려고 해. 만약 안된다면 집 근처 파트타임을 해서라도 너와의 시간은 포기하지 않으려 할 생각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요즘엔 엄마의 부모님 시대와는 다르게 인터넷으로 뭐든 사고팔 수 있는 시대지. 누구나 자기 일을 시도하고 그걸로 수익도 낼 수 있는. 그래서 너의 낮잠 시간 동안에 다른 일을 해보려는데 네가 잘 도와줄 수 있으려나? 네가 짧게 낮잠을 자더라도 낮잠 핑계 대지 말고 노력하라는 신의 뜻으로 여겨야겠지?


오늘 하루도 너와 아빠가 함께 한 시간으로 나의 하루가 꽉 채워졌단다. 잘 자렴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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