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낭만 혹은 최면
낭만의 대명사, 프랑스라뇨.
일단 더럽습니다. 공항에서 파리로 가는 열차를 타러 가는 그 첫 느낌. 던전으로 들어가는 그 발걸음.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다르게 모든 게 좁았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낮은 천장때문에 그랬다. 매표기계 앞에서 가짜 표를 팔던 불량배 놈들 때문에 그랬다. 열차 플랫폼은 어두침침했고 벽이란 벽은 모두 휘갈긴 페인트 낙서로 가득차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지키면 지키는 사람이 멍청이였고, 운전자는 길막이라도 당하면 마구 마구 화를 냈다. 속에 있는 울분과 화를 감추지 않는 사람들. 그게 바로 파리지앵이었다.
이런 실망은 사실 객관적으로 더러워서가 아니라 파리에 대한 온갖 환상과 로망때문이었으리라.
주변에선 모두가 에펠탑 이야기보다 파리에서 도둑을 조심해야한다고 당부를 했다. 때문에 나는 여행자의 호기심은 잠시 배낭에 넣어두고 배낭을 꽉 안고 군대에서도 소홀히했던 경계태세를 확릭하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파리 도둑 이야기를 많이 들은 탓에 나는 에펠탑보다 파리의 도둑들을 보고 싶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어 기둥에 자신을 몸을 묶었던 오디세우스처럼 도둑 당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손놀림과 입놀림을 보고 싶었다.
다음 날 주말 벼룩시장 구경을 끝내고 시테섬으로 향하려 지하철에 내려가니 말로만 듣던 가짜 표를 파는 도둑들이 보였다. 그 중 한 명은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태연하게 무시하며(하지만 도둑은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분명 간파했다) 기계에서 표를 사 개찰구로 들어가려했다. 개찰구 입구에 표를 넣고 들어가는 순간 내 뒤에 무언가 어둠이 붙어있다는 걸 느꼈고 삼발이로 된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그 어둠이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어둠을 잡으려 손을 주머니로 잡았지만 어기에는 텅빈 어둠만 있었다. 나는 이미 개찰구를 통과했고 뒤돌아보니 어둠의 실체가 나를 보며 무슨 일 있냐고 안부를 묻는 표정으로 두손을 으쓱했다. 나는 최대한 무섭게 '아이, 씨발'이라 말하며 째려보았다. 이미 개찰구를 경계로 나와 그의 세계는 단절되어 있었다.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 삼발이 개찰구때문에 나는 그 경계를 다시 넘어갈 수 없었다. 텅비어있던 내 주머니에 만약 핸드폰이라도 있었던 날에는 내가 그 돌아갈 수 없는 경계에서 아이 씨발을 외치는 순간 그는 이미 도망갔을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지키며 사이렌의 노래를 들었던 오디세우스처럼 모든 것을 지키며 파리의 손놀림을 보았다.
대체 우리는 파리의 무엇을 알고 있는걸까.
파리가 낭만적이라서라기 보다 파리는 낭만의 도시이니 우리는 거기에서 낭만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파리를 겪으려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낭만의 단서 1
생투엉 벼룩시장은 정말 낭만을 파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골동품들이 넘쳐났고 가격도 어디서도 보지 못한 가격이었다다. 살 수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인스파이어링이 있는 곳. 어디에 쓸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사고 싶은 것들이 넘쳐났다. 그곳은 낭만을 소비하는 곳.
낭만의 단서 2
시테섬 가까운 곳에 내려 퐁피두를 지나 테라로사에서 반했던 마리아주 teashop을 들리고, 베트남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반미를 먹고 조금 더 걸으니 센강이 보였다. 노틀담성당은 다 무너졌지만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무얼 보고싶어서 다 무너진 성당을 찾아왔는지 나는 몰랐다.
그렇게 센느강을 따라 알렉산더 다리까지 걸으며 도시 한 복판에서 강을 따라 걷는 건 낭만적 경험이다 싶었다. 서울에는 한강이 있었지만 일상이기보단 여가의 공원이 많았다. 자전거, 텐트 속 치맥. 도시와 동떨어진 공간이었다면 센강은 도시 한 가운데 있었다. 센강을 걷다 한 걸음만 바꾸면 르브르가, 오르셰가, 판태온이 있었다.
퇴근 길에 한강으로 걸어 가자, 하는 마음이 잘 안생기지만 센느강을 그럴 수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청계천이 있겠지만 청계천은 내 천일뿐이다.
에펠탑이 멀리, 조금 더 걸으면 닿을 곳에 있을 때 산책을 멈추기로 했다. 이제 해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붐비는 야외 푸드트럭에서 와인을 한 잔 사 마셨다.
"한 잔에 10유로 입니다."
그래 파리의 낭만도 지갑의 두께만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