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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ee May 19. 2019

첫 번째 까미노를 마치며

780km/34일


#나는 대체 왜 왔을까


780km가 끝났다. 어제부터 성당 앞에 도착하면 무슨 기분이 들까 궁금했다. 그리고 성당이 보이는 순간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허무하군. 오히려 다시 질문했다. 대체 나는 왜 걸은 걸까.


34일을 들여 780킬로를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끝이 났다. 엄청난 성취도, 휴머니즘적 도전도, 혼돈했던 마음의 평화도 없었다. 버스로 8-9시간이면 갈 거리를 34일을 쓰며 나는 대체 왜.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는 허무함뿐이었다.


사람들은 이 길을 까미노( El Cammino)라고 부른다. 이 길을 산티아고라고 부르진 않는다. 사람들이 이 여정을 까미노라 부르는 것은 산티아고라는 종착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까미노의 의미는 바로 까미노(길) 위에 있기 때문. 나도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이게 그냥 허세로 가득 찬 말로 다가왔다. 그런데 종착지에서 드는 허무감과 그럼에도 즐겁고 행복했던 여정이 겹치면서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까미노는 인생과 같다’는 진짜 허세로 가득 찼다고 믿었던 말도 어느 정도는 이제 동의한다.


내가 까미노가 삶과 비슷하다고 느낀 이유는,


목적을 가지고 길의 여정을 떠나지만 사실 목적이 없다는 사실. 생각의 정리, 미래의 구상, 힘들었던 삶의 보상, 회복 등. 이러한 크고 작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오지만 막상 길 위에 서면 일단 걸어야 한다.

실존주의.

본질, 목적, 이유보다 일단 상황에 던져진 존재들이 된다. 그냥 일단 이 길 위에 던져졌고,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정말 크게 다치지 않는 상황이라면 (사실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들 걷는다.


메세타 고원을 걸을 때 특히 그랬다. 800킬로의 중간 지점인 그곳에선 포기하기엔 아깝고, 앞으로 가기엔 대체 무슨 이유로 앞으로 가야 하는지 몰랐다. 하루 종일 언덕도 없는 평평한 길만 걸으며 보리밭을 보며 걷는 일에서 대체 어떤 이유와 목표를 찾을 수 있었을까.


길 위에 던져진 존재.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그 명령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 한 가지 닮은 점


종착지에서 허무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음 앞에서 혹은 그토록 바라던 간절한 꿈을 위해 참고 견뎌내던 그 여정들은 정말로 그 꿈으로 모두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일까. 산티아고 대성당은 정말 갑자기 훅 튀어나왔다.

오히려 까미노에선 아니다ㅡ라고 대답했다. 까미노 위에서 그 여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 종착지에서 느낀 건 오히려 그 과정의 중요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한국 (남성) 사람들 중 체력을 뽐내려는 건지 하루에 35킬로 이상씩 걸으며 20일 초 중반에 산티아고를 끝냈다는 무용담을 많이 듣는다(실제로 엄청 많았다). 35킬로씩 걸으면 해도 뜨지 않는 새벽에 출발하고 마을에 도착해선 지친 몸 때문에 마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진다. 결과만을 위한 여정은 많은 것을 놓친다.


사실, 이 모든 느낌도 내가 믿고 싶었던 진실을  더 확고한 진실로 만들려는 합리화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믿으니까 이렇게 이해하는 걸까. 이런 게 나이를 먹는 거고 고집만 세지는 건 아닐까 무섭기도 하다.


# 꼭 이 여정을 다 걸어야 할까

꼭 그렇게 하라 당부하고 싶다. 지역이 바뀔 때마다 나라가 바뀐 것 마냥 주변이, 환경이 바뀐다. 느낌의 변화 과정도 정말 큰 순례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기에 될 수 있으면 모든 과정을 걷기를 당부하고 싶다. 어렵다면 애초에 시작할 때 찬스카드의 개수를 정하고 시작하면 어떨까. 도시 간 점프 카드, 동키(짐만 보내기) 카드, 호텔 숙박 카드 등.


# 쏘 메니 코리안 히어

아마 걷게 된다면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을 것이다. 좀 짜증 났다. 내가  보기엔 서양인이 훨씬 많은데 왜 맨날 한국인이 제일 많다고 난리들인가.


그래서 찾아봤다. 까미노에선 매년 통계를 내고 있어 쉽게 볼 수 있었다. 18년도 통계는 이렇다.

스페인 사람보다 외국인의 순례 비율이 전체의 55%로 더 많았다. 외국인의 중에는 이탈리아 사람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독일, 미국 순이었다. 한국의 비율은 3%. 고작 3%.


그저 생김새가 다르니 동양인이 잘 보이고 그러니 많다고 말하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서도, 항상 물어보는 질문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까미노에 많이 오니?’ 하는 질문에는 어느 정도 편견과 다른 시선으로 동양인을 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함을 느낀다.


너네랑 똑같은 이유로 여기에 온다.라고 대답하면 기대했던 대답을 해주지 않는 기분이랄까.


한국에서 어떻게 외국인들을 대할 것인가. 요청 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을 수 도 있다 생각했다. 선의와 이방인의 느낌은 전혀 다르니 말이다.


#

기회가 된다면 3번이고 4번이고 다시 와 보고 싶다

1. 아름다운 풍경을 일상처럼 보는 건 다른 여행에선 정말 어려운 일. 그것도 매일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2. 이렇게 값싸게 유럽에서 한 달 이상 지낼 수 있는 방법은 까미노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함(동유럽은 가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3. 와인을 이렇게 쉽게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와인 맨날 마시는 것만으로도 까미노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


# 여행이 예전처럼 즐겁지는 않다.

취향이 견고해질수록 여행이 그리 즐겁지는 않아지는 것 같다. 이건 이제 내가 언제, 어디서 행복해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안다는 뜻이니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 세계가 이제는 고정되어있다는 슬픈 이야기로도 들린다.


언제나 여행이 지금 즐거운 이유는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썬칩 먹으면서 왕좌의 게임이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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