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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ee Apr 14. 2019

목적 없는 여정

14년도에 티켓까지 사놓고 취소한 적이 있었다. 구글지도에 판테온, 벼룩시장, 루브르-가야 할 곳들을 표시해 나의 지도를 만들었지만 비행기를 취소했다. 스리랑카에서 1년을 살면서 여기저기 너무 돌아다닌 탓에 이제 더 돌아다니기가 부담이고 귀찮기도 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났고 다시 티켓을 끊었다. 40일의 순례길을 향해.


3년을 일하고 1년을 쉬자. 첫 직장을 가졌으 때 일단은 상상했다. 직장은 너무도 좋았고 솔직히 포기하기 너무도 아까웠다. 수원은 너무도 좋았고, 칼퇴는 자유로웠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없었다. 그만둘 이유는 없었고 그렇다고 여행이 너무도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게,,왜 그만두고 나는 여행을 가는 걸까.


여행을 가기 위해 그만뒀다기보다 그만두니 여행이 하고 싶어 졌달까. 뚜렷한 목적 없는 여행. 직장을 가지고 오랜만에 대만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그때 깨달았다. 이제 여행을 대학생 때만큼 즐거워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원하는 것은 미지와의 조우로서의 여행이 아닌 자발적 고립의 여행이란 것을.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고립될 수 있는 곳.


중 교등학교 때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면 그 2박 3일 동안 지난 삶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정말 다시 태어났다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밤이 새도록 눈물로 기도했었다. 이제는 정말로 달라질 것 같았던 일상들. 마음가짐들. 하지만 당연하게도 수련회가 끝나면 똑같은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는 이러한 하룻밤 다짐이 얼마나 가볍게 증발되는지 스스로 겪었다.


수련회 증후군. 나는 이렇게 불렀다.


순례길도 마찬가지이다. 삶을 되돌아보고 싶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이 되길 원한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은 당연히 아니지만 정말 40일의 순례길이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큰 의미로 다가올까. 수련회와 마찬가지겠지.


다만 바라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원 없이 볼 수 있길. 길 위의 우연들을 받아들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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