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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ee Jan 31. 2021

예리한 칼 한 자루

연마하기

결국 칼이 예리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칼을 연마하면 내 마음도 예리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마한 칼이 A4 용지를 저항없이 내질러 갈 때 그 기분은 언제나 뿌듯함과 짜릿함이 함께 한다. 그리고 이제 연장 탓을 할 수 없게 된다. 예리하게 연마된 칼로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그건 이제 오롯이 내 탓이게 된다. 그리고 그때, 내 탓만 할 수 밖에 없을 때 솜씨가 는다고 생각한다.


무딘 칼로는 절대로 프로가 될 수 없다 다짐하며 예리한 마음을 만드려 연마를 한다.     

숟가락의 어깨처럼 극적인 곡선이 있는 부분이 항상 뜯기는 경험을 하다가 예리한 칼로 똑같은 작업을 했을 때 멈춤없이 곡선을 따라갈 때 연마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제 한 번 연마를 좀 해볼까~?, 마음 먹으면 몇 가지 장애물을 만난다.     


장애물     

장비 장비그놈의 장비빨


칼을 연마하려면 숫돌이 필요한데, 그 숫돌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면도날 정도로 예리한 칼로 만들려면 최소 3-5천방의 숫돌이 필요하다. 초벌 숫돌부터 필요하다면 600, 1200, 3000, 5000. 최소 4개의 숫돌이 필요한데 쓸 만한 숫돌은 숫돌 하나에 3만원이 훌쩍 넘는다. 2만9천원짜리 칼 하나 연마하려 12만원을 써야하다니. 평잡기 숫돌, 숫돌 스탠드까지 산다면 배보다 큰 배꼽은 키보다 커진지 오래다.      

방법은 있다     


1만원으로 7천방까지 연마하기     

연마는 숫돌에서 해야한다는 고정관념만 깨면 된다. 한국에선 연마 방법을 검색하면 경험상 거의 99%는 ‘숫돌’ 연마방법만 나오기 때문에 연마를 시작하고 싶은 초보자의 입장에서 배꼽이 더 크네,,하고 연마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슬픈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동양권 문화에서는 숫돌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기 저기 찾아보니 서양권에선 대부분 사포(Sandpaper)로 연마를 하고 있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질 좋은 사포가 2천방까지 나오고, 3천방 이상의 독일제 사포도 장 당 1천원이면 산다.

#600, #1200, #3000, #5000 한 장 씩 사면 5천원 정도다. 

카빙나이프와 사포

평이 잡힌 나무 판자(숫돌 크기)를 구해 양면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사포를 붙이면 준비 끝. 작업대에 고정 시켜도 좋고 손에 쥐고 연마해도 괜찮다. 뭐가 옳은 게 아니라 분명 자신에게 맞는 위치와 길이와 자세가 있으니, 많이 해보면 그 조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팁 

    

1. 사실 읽어도 답 없음

일단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2. 각도가 생명

우드카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모라 카빙 나이프를 예로 들면 처음 상품이 나올 때 연마된 각도가 있다. 다행히 칼날의 경사면이 직선으로(V형)으로 되어 있어 평평한 사포에 ‘착’ 달라붙는 느낌을 예의주시하며 칼을 연마해야 한다. 사포는 종이다보니 각도가 살짝만 잘못돼도 칼에 종이가 찢긴다. 오히려 각도를 연습하는데 더 좋다. 칼날이 사포에 박히지 않게 예의주시하며 연마하기.     


3. 슬러리Slurry를 소중하게

사포 위에 2-3방울 물을 떨구고 연마를 하다보면 쇳가루가 물과 섞여 끈적한 액체가 생기는데 이것을 슬러리라고 한다. 시커멓고 칼날이 연마되는 모습을 가려서 처음에는 계속 씻겨 없애는데 사실 연마의 핵심은 이 슬러리! 슬러리가 제대로 생성되면 이제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의도한 각도로 사포에 착 달라붙어 알아서 연마가 된다. 그때부터는 그 흐름에 올라타면 끝.     


4.위아래, 앞뒤, 빙글빙글?

칼 연마 영상을 보면 45도 각도를 유지하고 위 아래로 움직여라, 라고 대부분 설명하지만 우드카빙 칼은 경험상 어떻게 움직여도 연마는 잘 된다. 나는 보통 위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좌우로 움직이며 연마하는데, 빙글빙글 돌면서 연마해도 큰 차이는 없었다.     


5.스트롭은 필수

사포로 어느 정도 연마가 됐다면 마무리 할 시간이다. 스트롭은 폴리싱작업인데. 잘 연마된 칼날의 상태를 가장 최상으로 높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판자에 가죽을 붙이고 그 위에 연마제(연마봉)을 뭍혀 칼등 방향으로 각도를 유지하며 20-30번 왕복한다. 가죽이 없다면 평평한 나무판자도 상관없다. 


 6.연마는 자주

무딘 상태까지 방치했다가 다시 날을 세우려면 긴 시간 연마에 시간을 뺏길 수 밖에 없다. 작업시간이 20시간 정도 쌓이면 그냥 3-5천 방 사포에 연마를 한 후 스트로핑을 하자. 5분이면 된다. 

스트롭, 연마제, 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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