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할 땐 잘할 줄 알았지
어릴 때부터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걸 좋아했다. 디테일보다는 흐름과 맥락, 원리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고, 사람 사이의 분위기나 관계를 빠르게 읽는 편이었다. 그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은근히 도움이 됐다. 일을 잘게 쪼개기보다는 일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를 보는 게 편했고,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를 듣고, 흐름을 정리해 전달하는 역할이 익숙했다. 그래서 파트장을 달게 되었을 때 그 역할이 내 적성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임지는 일도 익숙하고, 방향을 잡는 데서 오는 성취도 있었으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자리에 앉고 나니까 좀 달랐다. 역할이 달라지면서 주변에서 기대하는 태도도, 말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의견’이 아니라 ‘파트장의 말’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생겼고, 그건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힘들었던 것은 나이와 경력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한동안은 내가 왜 이 나이에, 이 정도 경력으로 이런 직급을 맡게 되었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아직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였으니까. 이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한 모든 직장생활 이래 나를 따라다니는 고민이기도 하고.. 그래서 괜히 더 조심스러워지고, 모든 상황에 더 세심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동료들의 피드백 하나하나에도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졌고,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정말로 이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계속해서 자문하게 되는 시기였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의 범위는 분명히 넓어졌지만, 그에 비례해서 팀원들의 신뢰를 얻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느끼는 무거운 책임감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만.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내가 무엇을 부담스러워하고, 어떤 상황에서 위축되며, 반대로 어떤 지점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좋은 리더'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리더는 되지 않겠다는 기준들은 조금씩 세워지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이런 고민은 꼭 공식적인 리더 역할을 맡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타이틀이나 직책을 맡게 되었을 때, 그 역할이 나를 규정하도록 두지 않고 그 안에서도 나다움을 지켜가는 방법을 찾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나도 여전히 그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너무 조심스럽게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급하게 모든 것을 단정 짓고 싶지도 않다. '리더'라는 단어 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와 기대를 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은 내가 맡은 역할 안에서 더 좋은 동료가 되고 싶고, 팀원들과 더 오래, 더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방법을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결국 진정한 리더십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매일매일의 작은 선택들과 태도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때로는 흔들리고 의심하게 되더라도, 그것 또한 성장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