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 잘하는 사람이 많은 회사가 성공할까?

이젠 진짜 아닐 것 같은데

by 오르 Orr

일 잘하는 사람이 많은 회사는 성공할까?


한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렸던 질문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일도 잘 굴러가고 성과도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일 잘하는 사람을 선별하고, 그들을 기준으로 조직을 설계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건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누가 와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일까? 실무를 하다 보면 갈수록 더 분명해지는 게 있다. 이제는 무언가를 잘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유일해지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실무 기술은 툴이 대신하기 시작했고, 예전 팀에 한 명쯤은 꼭 붙잡고 있어야 했던 고수의 기술들도 점점 쉽게 복제되고 있다.


덕분에 일 자체는 쉬워졌다. 그런데 그렇다고 모두가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흐름 속에서 어중간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평가받기 어려워진다. 물론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다. 툴이 아무리 고도화돼도, 앉아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으면 일이 안 굴러간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냥 앉아 있기만 하는 사람은 이제 필요 없다. 툴은 점점 손을 덜어주고 있고, 그럼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결과는 아예 달라진다. 이제 중요한 건, 도구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도구를 통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판단하고,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흐름 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툴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기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시대. 여기서 잘하는 사람으로 살아남으려면 어떤 역량을 가져야 할까?


예전에는 데이터 분석을 하려면 SQL을 짜거나, 로그 데이터를 직접 내려받아야 했고, CRM 메시지 하나를 보내더라도 템플릿 설정부터 발송 조건까지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꽤 달라졌다. 마케터도 앰플리튜드를 켜서 유저 행동 흐름을 확인하고, 브레이즈에서 세그먼트를 나눠 인앱 메시지를 설정하고, 루커스튜디오로 차트를 그리고, 구글스프레드에서 앱스크립트 몇 줄을 붙여 자동화를 돌릴 수 있다. 예전에는 이 중 몇 가지는 개발자 또는 데이터 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을 텐데, 지금은 툴이 알아서 허들을 많이 낮춰준다. 기술을 배우는 게 능력이었던 시대에서, 지금은 누구든 쓸 수 있게 만드는 구조가 실무의 기본이 되고 있다는 걸 자주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너럴리스트 vs 스페셜리스트 구분도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어지간한 영역은 다 연결돼 있고, 대부분의 직무는 조금만 배우면 기본은 다룰 수 있게 되어 있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중에서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다. 개인의 스페셜함은 기술력보다는 맥락을 읽는 힘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이걸 하고 있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정서적인 가치를 전달할 줄 아는 사람. 도구를 쓰는 것도 결국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인데,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잘 헤아리지 못하면 결국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반응이 없다.


그래서 기술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람, 맥락을 먼저 이해하는 사람, 그리고 맥락에 맞게 연결하고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남는 것 같다. 얼마 전, 날씨에 따라 CRM 카피를 자동화하는 실험을 해봤다. 일본 기상청 API를 연결해 전국 지역의 날씨 정보를 스프레드시트에 자동으로 업데이트했고, 3일 뒤 날씨를 기준으로 적합한 카피를 작성해 브레이즈에 연동했다. 예전에는 데이터팀이나 개발팀의 도움이 필요했을 작업이지만, 이제는 마케터 혼자서도 연결 구조를 만들고, 원하는 타이밍에 맞춰 자동으로 CRM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앰플리튜드에 익숙해지면서, 굳이 복잡한 분석 요청을 따로 넣지 않아도 웬만한 코호트 분석이나 싱크 작업은 직접 셋업하고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팀 내 의사결정도 더 빠르고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최근에는 통계 분석도 전보다 훨씬 가볍게 접근하고 있다. 예전에는 p-value 또는 신뢰구간, 표본수 계산 단어에 주눅부터 들었겠지만, 이제는 자연어로 A와 B의 전환율 차이가 유의미한지 알려줘, 이 그래프의 경향성은 어떤 의미야 질문만 해도 LLM 기반 분석툴이 정리된 결과를 제시해준다. 통계 분석도 점점 대화형으로 바뀌고 있다. 툴은 누구에게든 열려 있지만, 그 툴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빨리 캐치하고 연결하는 사람이 결국 일을 만든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결국 느낀 건, 회사 환경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최근 MGS 발표를 통해 들은 사례가 인상 깊었다. 타겟 추출부터 메시지 작성, 발송, 분석까지 모든 CRM 과정을 머신러닝과 LLM을 기반으로 누구든 쉽게 활용할 수 있게 구조화해놨다고 했다. 심지어 마케터가 직접 세그먼트를 만들고, 추천 콘텐츠를 설정하고, 실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환경까지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또 어떤 곳은 실험을 설계하고 가설을 수립할 때 도움이 되는 사내 AI GPTs가 있어 구조적인 실험설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라도 기본 이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구조를 짜둔 조직. 그런 환경이 있기에 더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가능하고, 일하는 사람의 창의성도 자연스럽게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 잘하는 몇 명이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가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실험이 누적되고, 그 안에서 인사이트가 축적되는 구조. 이제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낸 회사가 더 오래 가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닐까.


그래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 잘하는 사람이 많은 회사가 성공할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은 누구든 다룰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고, 실무는 그 기술 위에 새로운 관점을 얹어야만 의미가 생긴다. 결국 중요한 건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든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빠르게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하는 회사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놓은 조직이 앞으로 살아남고,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발팀이 피곤해하는 마케터